2015년 5월 31일 일요일

[주류주] 언령(言靈)























 말에는 힘이 있다. 말에 영적인 힘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언령(言靈)'이라고 한다.


 나른한 온기가 가득한 공기, 여리게 돋아난 풀잎들... 주변은 온통 봄의 기운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무료하기 그지없는 심정으로 멀뚱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통.통. 하고 방금 전 발에 감싸고 온 통깁스를 두들겨 보니 새삼 그 이물질 그득한 느낌이 불쾌해진다. 아아... 이 좋은 봄날에 나는 무엇 하고 있는 것일까? 완전히 축늘어진 모양으로 병원에 마련된 작은 공원에서 신세를 한탄하며 나는 당장이라도 내 발에다 대고 "나.아.버.려.라.", "뛰.어.라." 따위의 명령을 내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몸에 말로써 명령을 내린 다는 것은 주체와 객체가 혼동되는 두려운 일이다. 개탄스러운 마음에 머리를 감싸 쥐며 한숨을 쉬고 있자니 문득 심술에 가까운 장난기가 샘솟는다.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니 공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기 위해 나와 있었다. 어딘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과 그런 환자들을 병문안 온 방문객들 또는 간호사나 의사들까지 모두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모습을 천천히 살피다가 나는 문득 한 여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만치 구석진 자리에서 병문안 온 사람이 없었던 것인지 간호사의 손에 끌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성. 길게 내려앉은 머리 뒤로 보이는 여자의 얼굴은 생동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초췌하고 유악한 분위기 였다. 주변의 온기와 떠들썩함도 모두 그녀에게는 닿지 않는 듯 그저 멍하니 자신의 발끝만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어쩐지 안타까워서 나는 인심을 써주듯 그녀를 타깃으로 잡았다. 내 몸에는 하지 못 하더라도 타인이라면 얼마든 가능하다. 그 우쭐함과 우월감에 작게 미소를 지었더니 방금까지의 칙칙한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어차피 이 공원에 들어오고 난 직후 나는 이곳의 모든 사람에게 "나를 신.경.쓰.지.마."라고 일러둔 터였다. 폐부 깊숙이 숨을 빨아들이고는 일순간 토해내듯 충분히 그녀에게까지 날아가 닿도록 소리쳤다.


 "거기 여자. 일.어.나.걸.어."


 장내는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감싸는가 싶더니 이내 풀어지며 다들 제각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들 그들의 일상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오직 나만이 그만 경악으로 부릅떠진 눈을 하고는 반쯤 일으켜져 세워진 몸을 앉히지 못 하고 엉거주춤하니 서 있고 말았다.


 "어째서....?"


 의문과 당혹감이 가득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이미 말을 내뱉은 지는 수초가 흘러갔지만 여자는 여전히 휠체어에 앉은 채 일어나 서지 않고 있었다. 그럴 리가... 


 나는 다급히 옆에서 지나치고 있던 한 사내를 붙잡아다가 대뜸 "웃.어."하고 외쳤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쩔 줄 몰라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남자의 모습에 나는 기묘하게 일그러진 시선으로 저만치의 그녀를 다시 돌아보았다. 여전히 자신의 발끝만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 있는 여자.


 그렇다... 그녀에게 내 '언령(言靈)'이 통하지 않은 것이다.






 언령(言靈)
                  written by. 녀놘




 이 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꽤 오래전의 꼬맹이 시절부터 였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부모님과 함께 어딘가의 시골마을로 여행을 와 있었다. 푹푹 찌는 무더운 열기 속에서 나는 챙이 넓은 모자와 하늘거리는 작은 드레스를 입고는 멍하니 서서 한 점을 바라보고 굳어 있었다. 더러운 흙바닥 위로 언제부터인가 이제 막 태어난 지 얼마 되어보이지도 않는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죽은 듯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벌써부터 죽음의 냄새를 맡은 파리 떼가 윙윙 거리며 모여들어 서는 눈꺼풀도 깜박이지 못 하고 늘어져 있는 강아지의 주위를 비정하게 맴돌고 있다. 그 굉장한 광경에 꼼작도 못 하고 선 채 어느 순간 나는 그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듯 소리쳤다. "강아지야. 일.어.나."라고.


 그러자, 거짓말처럼 강아지는 벌떡 일어나 서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의 나는 그 모습에 그저 뛸 듯이 기뻐서 내가 강아지를 구해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뿌듯함을 느끼며 그대로 강아지를 품에 안고는 부모님에게 달려가서 그 사실을 그대로 떠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웃어넘기시던 부모님들도 내가 계속 고집처럼 떼를 쓰며 얘기하자 조금씩 표정이 굳어지시더니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시며 다시는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며 조금 나무라기도 하셨던 것 같다. 그 때 부터였다. 내 인생이 뒤틀려 간 것은...


 나는 내 말에 힘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떠한 조건이나 제약도 없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두려운 힘이었고 한동안은 나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지내기도 했다. 내게 유년시절의 기억이란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교실의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전부일 것이다. 


 단 한 번. 나는 내 힘을 사용했던 적이 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침울해 있을 때 나는 몇 번이고 눈치를 살피다가 굳게 마음을 먹고는 내 힘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친구도 없이 마치 교실에 방치된 무기물처럼 붕 떠 있던 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나면 내가 갑자기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칭찬받고 사랑받으며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일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헛된 생각의 결과가 단숨에 나를 주변에 있던 모든 반 친구들로부터 두려움과 공포에 가득찬 시선으로 둘러싸이게 만들어 버렸다. 조용했던 교실에 내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즉각적으로 아이들이 겪고 있던 문제는 말끔히 해결되었지만 교실은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로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내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은, 인간 외의 기분 나쁘고 혐오스러운 것을 보는 것 같은 눈동자들이 나를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불신과 의혹이 담긴 눈길들... 나는 그 시선들에 완전히 압도당한 채 주춤거리며 더 뒤로 갈 곳도 없던 구석진 내 자리에서 도망치려 발버둥 쳤다.  


 더듬거리던 손이 등 뒤로 가로막은 차가운 돌 벽을 집고 나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대로 언제까지고 평생 나는 저 혐오감 가득한 시선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임을. 그러자 오기처럼 무언가 속에서 울컥 솟구쳐 올랐다. 나는 잘못 한 것이 없다. 잘못 된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아닌가?! 어떻게 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비명처럼 "쳐.다.보.지.마."라고 외쳤던 것과 그 말 직후 아이들이 한순간 동작을 멈추더니 이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내게서 시선을 비켜가며 평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빠르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며 서로 웃고 떠들며 내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아이들 속에서 마치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원래대로의 고독한 상태에 남겨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보다가 이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하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였다. 그래. 나는 잘못 한 것이 없어. 미개하고 덜떨어진 너희들이 나빠. 끅끅 거리고 온 몸을 들썩거리며 눈물을 글썽인 채 나는 떠들썩한 아이들의 교실 구석에서 적막하게 소리쳐 웃고 있었다. 


 그 뒤 나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니. 반대로 오직 나만이 남은 세계라고 하는 쪽이 더 그럴 듯 할까? 나는 그동안 두려워해 왔던 나의 힘을 마음껏 사용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남들에게 해를 끼칠까봐, 남들의 시선에 비난 받을까봐 움츠려 들지 않았다.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나를 무시할 것을 명령했다. 그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못 하도록 철저히 나 자신을 방어한 채 내 누릴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다.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 한 어린 나이였지만 어려운 것은 없었다. 그간 나를 쭉 두려워하고 남들로부터 숨기려 애쓰며 냉대하던 부모님들과도 더 이상 걱정할 것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같은 공간 안에서 살고 있지만 같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 언령 이후로 부모님은 내가 옆에서 지나다니건 물건을 만지던 간에 인식하지 못 하였다. 그저 내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가볍게 언령의 힘으로 명령하면 잠시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순순히 내가 말한 것을 가져와 주는 식이었다. 학교나 밖에서의 생활도 다를 것 없었다. 평소에는 누구도 나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필요한 것을 명령하면 그들은 무엇이든 간에 내 앞에 그것을 가져다 내놓았다. 이미 나는 신이 되었다. 비천한 인간 무리에 운명의 잘못으로 잘못 떨어지게 된 신. 그 누구도 이제 나를 업신여기지 못 하리라.


 그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나는 지금 여기 이렇게 교복 차림으로 발에 깁스를 칭칭 감고는 목발 차림으로 엉거주춤하니 서 있다. 아까 전부터 망설이며 열지 못 하고 있는 병실의 문 앞에서 나는 애꿎은 입술만 잔뜩 깨물고 있었다. 머뭇머뭇 거리며 한참을 주저한 끝에 나는 문을 움켜쥐었다. 어쨌든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다.


 덜컥 하고 열린 병실의 안에는 널찍한 공간과 함께 큰 사이즈의 침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의 위로 좀 전의 여자가 여전히 생기 없는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곁에서 마침 환자를 체크하러 와 있던 간호사가 나를 돌아보고는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신.경.쓰.지.말.고.나.가."


 내 명령에 간호사는 잠시 멈칫하다가 순순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간호사가 병실을 빠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 그제야 침대 위의 여자도 나를 알아차린 건지 무표정했던 얼굴에 조금 놀란 눈을 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보.지.마."

 "..........."

 "일.어.나."

 "..........."


 역시 제대로 눈을 마주보고 명령했는데도 내 언령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대뜸 머리를 쥐어뜯고 비명을 내지르며 이대로 달아나 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졌다. 많이 잊혀졌다고 생각했지만 언령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다시금 어릴 적의 공포가 떠오르려고 한다.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거지? 대놓고 이렇게 앞에서 이상한 말을 내뱉었으니 이후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도망가 버렸을 때 별 미친놈을 다 봤다고 가볍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어째서 당신한테 내 말이 통하지 않는 거지?"

 "........."


 하지만 어리석게도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앞서고 있었다. 설령 도망간대도 일단 어찐 된 건지 이유는 제대로 알고 싶다. 어쩌면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언령을 가진 사람은 아닐까? 유일하게 나라는 신만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세상에서 또 하나의 신을 만난 건지도 모른다. 나는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 아까부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여자의 입술이 벌어지기만을 초조히 기다리고 있었다.


 "..........."


 무언가 대답을 기대했 것만 한참이나 후에 여자가 건넨 것은 연습장 하나와 필기도구 였다. 나는 나만큼이나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눈을 반짝인 채 나에게 그것들을 내밀고 있는 여자의 손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여자는 애초부터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귀머거리 였다.


 허탈감과 실망감에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와 동시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몸의 힘이 빠지며 그만 나는 여자의 침대 옆으로 놓여져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쩐지 이대로 한동안 일어서지 못 할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의구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던 여자는 급히 무언가를 연습장에 쓰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당신은 누구세요?'하고 어딘지 서툰 글씨로 쓰여 있다. 그걸 멀거니 보고 있었더니 조바심을 이기지 못 한 건지 여자가 다시 연습장을 자기 앞에 들고 가서는 또 무언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서 내 앞에 내놓는다.


 "이미주....?"


 고개를 갸웃거리며 쓰여 있는 글씨를 읽었더니 연습장을 쥔 채로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가리켜 보인다. 그러고는 내게 다시 끈질기게도 연습장을 내밀어 준다. 여자의 집요한 시선에 고개를 돌려 회피하며 나는 머뭇거렸다. 이름이라... 수년전 어린 시절 이후로 내 삶에는 어떠한 타인과의 대화도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새삼 자기소개를 누군가에게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 이대로 달아나버리고 싶다는 충동과 수백 번도 더 고민하다 나는 이기지 못 하고 결국 여자가 내민 연습장을 건네받았다.


 '류수정'. 나마저도 낯선 그 이름을 적어 여자의 앞에 내밀자 여자는 몇 번이고 그것을 눈으로 읽어 내리다가 나를 바라보고는 옅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쩌면 저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가 지어낸 웃음은 아닐까 나는 어렴풋이 생각하게 되었다.   




-


 방금 전 회진을 위해 들어왔던 의사를 통해 나는 이미주라는 이 여성에 대해 대략적인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 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장애란다. 태어나면서부터 각종 면역력 부족으로 인해 복합적으로 몸에 질병의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것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부유한 집안의 배경 탓에 어렸을 때부터 온갖 치료와 약물로 진행을 막고는 있지만 현재에 와서는 소리도 들을 수 없고 말도 못 할 뿐더러 걷지도 못 하는 처지인 듯 하다. 혼자서는 거동도 못 하는데다가 외부 병원균에 민감하고 피로감도 쉽게 느끼는지라 여자는 태어나서 평생을 이곳 병실에서 갇혀 살았다. 


 의사와 간호사들을 돌려보낸 후 나는 여자가 누워있는 병실을 새삼 둘러보았다. 아늑한 원목 느낌의 고급 특별실에는 창 하나와 함께 여자의 침대와 그 옆의 의자 하나 정도가 풍경의 전부다. 잘사는 집안 딸내미의 사치스러운 병실치고는 지독히도 쓸쓸한 분위기였다. 여자의 나이는 스물 둘. 그 긴 시간동안 여자는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왔던 것일까....


 "아무튼 내가 더 신경 쓸 이유는 없어."


 누가 들어달라는 듯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돌아보았더니 여자는 여전히 내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조금 민망해져서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누군가 내 얼굴을 이리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낯선 일이다.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은근 슬쩍 피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에게 왜 내 언령이 통하지 않았는지는 알게 되었다. 내가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벌인 일도 여자의 상태를 보았을 때는 딱히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냥 이대로 더 이상 엮이지 않고 돌아서는 편이 나에게는 여러모로 편할 일이었다. 언령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다. 내가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상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계속해 나를 과거의 악몽에 빠져들게끔 만든다.


 "그만 좀 빤히 바라보면 안 돼?"

 "........"


 뭐라 말하든 들리지 않나 보다. 머리를 헝클이고 진저리를 치며 그녀의 곁에 놓여 있는 연습장과 필기구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세요?' 라고 적혀있는 글자가 눈에 거슬린다. 여자는 내가 무언가 말이라도 걸어줄 것처럼 잔뜩 기대한 채 검고 긴 머릿결 아래로 예쁘게 생긴 두 눈동자를 빛내며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여자는 알런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의사의 말을 들어봤을 때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던 그녀를 그녀의 집안에서는 쉬쉬하며 숨긴 채 살아가고 있던 게 분명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만나러 오지 않은 채 그저 병원 측에 버려두다시피 맡기고 있는 실정이니 그녀는 지금껏 병원 관계자 외에는 누구와도 접촉을 못 했을 터였다. 그렇다면 여자에게 나는 처음으로 대면한 타인이라는 소리가 된다. 그게 어떤 기분인지 어쩐지 이해 못 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지내간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아니까...


 충동적으로 여자의 옆에 있던 연습장과 필기구를 집어 들었다. 하얀 연습장 위로 아무렇게나 그녀보다 세 살 적은 내 나이와 다리가 다쳐서 깁스를 하느라 잠깐 병원에 입원했다는 내용을 간단히 적어 내렸다. 연습장을 돌려 보여주니 여자는 받아 들어서는 제 눈앞에 가까이 가져가 꼼꼼히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머뭇거리고 펜만 만지작거리다가 무언가를 서툴지만 정성스레 써서 내게 내보였다.


 '또 찾아와 줄 수 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 한 건지, 펜을 쥐는 손에 힘이 없는 것인지 결코 잘 썼다고는 할 수 없는 엉성한 글자가 나를 향하고 있다. 왠지 욕지기라도 밀고 나올 것 같은 기분이라 조금 신경질적으로 그 연습장을 빼앗아 들고는 힘주어 노려보고 있었다. 또 찾아와 달라니... 제 정신이야? 연습장 위로 슬쩍 시선을 치켜올려 훔쳐보자 여자의 새까만 눈동자가 무언가의 열망으로 반짝인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지금껏 가족도 친지도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홀로 살아온 그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실례도 유분수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자는 내게 다시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걸까? 그렇게나 사람이 만나고 싶나? 웃기는 생각이다. 온실의 화초처럼 자랐으니 사람이란 것들이 어떤 건지 아직 모르기 때문일 거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처럼 그렇게 기세 좋게 생각한 주제에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응'하고는 짧게 써 주었다.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뭐 이것도 잠깐이다. 괜한 짓으로 다리를 다치지만 않았어도 이따위 병원에 찾아올 일도 없었을 텐데... 한숨을 쉬며 깁스된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이리 된 거 이 깁스를 풀 때까지만 머물 기로 하자. 어차피 한동안은 여기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어쩌면 내 인내심이 그 정도는 꾹 참고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대답을 전해 읽은 여자는 동그랗게 커진 눈을 하고는 눈에 띄게 환해진 얼굴로 미소를 지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의 품안에 꼭 끌어안긴 연습장이 못내 부담스럽다. 역시 관둘 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씁쓸하게 웃으며 어기적 목발을 집고 일어섰더니 여자가 내 움직임을 따라 작게 몸을 일으키다가 이내 힘없이 다시 침대로 쓰러져 내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우둑 커니 멈춰 서서 지켜보자 여자는 괜찮다는 듯 기분 좋은 숨을 한 차례 내뱉으더니 내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고는 이 잠시간의 대화로 피곤했던 건지 그대로 눈을 감는다. 나른한 오후. 햇살이 잔잔히 내려앉은 그녀의 입 꼬리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다. 기분 나빠.... 나는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절뚝이며 그대로 병실을 나섰다.


 다음날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야 여자를 찾아갔을 때, 여자는 밤사이부터 지금껏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손에 꼬옥 연습장을 쥐고는 웃으며 반겨 주었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며 들고 있던 연습장을 내게 내민다. '안녕하세요.' 라고 또박또박 써 있는 인사말을 읽고는 기분이 조금 묘해져 버렸다. 퉁명스레 연습장을 건네받아서는 나는 '안녕.'하고 짤막하게 대답을 써주었다가 마지못해 밑에다가 '내가 동생이니까 편하게 말해.'라고 덧붙여 주었다. 내 대답을 전해 읽고는 여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이다. 전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지만 이제 보니 꽤 잘 웃을 수 있는 여자였다고 생각했다. 비록 웃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냥 미소도 아니라 그것도 꽤나 시원시원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띨 줄 아는 여자다. 웃을 때마다 고르게 드러나는 치열들이 매력적 이였다.


 여자는 여전히 내가 무슨 말이라도 걸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표정으로 어제와 같이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시선을 외면한 채 가만히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핀다. 그러다가 문득 깁스를 하고 있는 내 발에 시선이 멈췄나 보다.


 '다리는 왜 다쳤어요?'


 존댓말을 하는 건 버릇인가? 아니면 애초에 반말이라던가 하는 것에 대해서 교육을 못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여자가 건넨 연습장의 내용을 읽어 보다가 여자가 가리키는 바대로 나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왼쪽다리 전부를 칭칭 감으며 불성 사납게 자리 잡고 있는 깁스. 깁스 말이지? 글쎄... 뭐랄까. 확실히 밝히기에는 별로 기분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심술 맞게 깁스 한 발을 바닥에 통통 찍어대다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냥 계단에서 넘어졌어.' 대충 둘러대듯 적어놓고 내밀어 주자 여자는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대로는 내가 더 버틸 수가 없을 거 같다. 나는 기지개를 켜듯 벌떡 일어나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여자의 병실을 살폈다. 그 흔한 텔레비전이나 책 한 권도 찾아볼 수가 없는 텅 빈 병실. 애초에 듣지도 못 하는데다가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고 있기에는 너무 피로감을 빠르게 느끼기에 여자에게는 그런 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인 듯 했다.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지내온 건지... 어제 오후에 여자가 병원의 공원에 산책을 나왔었던 것을 기억하며 나는 여자에게 나갈 것을 물어 보았다. 밖에 나가면 이 어색한 침묵의 시간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 여자를 보고는 나는 지체 없이 간호사를 불러다가 여자를 휠체어에 앉히고는 산책로에 가도록 언령으로 지시를 내렸다. 조심히 휠체어에 옮겨 앉는 여자의 곁에서 주섬이며 목발을 들고 따라나서려하자 여자가 그런 나를 조금은 신기하다는 듯이 본다. 하기사 어제도 의사들이며 간호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며 설명을 듣고 이것저것 시켰으니 지금의 상황에서도 약간은 이상하다고 느낄 법도 하겠다. 어쨌든 그녀에게 이 병원은 나고 자란 고향이자 집 같은 곳이었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런 불안감에 잠깐 빠졌으나 여자는 이내 그 시선을 풀고는 목발로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는 나를 걱정해주기 시작했다.


 공원에 도착하자 주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자리를 차지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적당히 구석지고 관심 받지 않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고 멈춰 서서 나는 여자를 데리고 온 간호사를 돌려보냈다. 비록 언령으로 지배하고는 있다지만 역시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다. 공원에 마련되어 있던 벤치 위로 아무렇게나 걸터앉고는 돌아보자 여자는 벤치 옆에 세워진 휠체어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는 여전히 웃어 보이고 있었다. 왜 나만 보면 저렇게 웃는 거야....? 괜스레 인상을 구기며 외면하고는 고개를 젖혀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였다. 어찌되었든 확실히 나오기를 잘했다. 최소한 이곳에서는 그 갑갑한 공간에서 계속 저 여자와 눈 마주치고 어색한 시간을 보낼 걱정은 없을 것이다. 그저 멍하니 이렇게 오고가는 사람들을 시선에 흘려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 때 어깨를 가볍게 톡톡 치는 연약한 손길에 고개를 돌리자 여자가 내게 자기 무릎 맡에 올려둔 연습장을 가리켜 보였다. 잠깐이지만 스쳤던 여자의 손은 병색이 완연히 느껴질 만큼 기운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것이어서 어쩐지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시선이 자꾸만 그녀의 손으로 향한다. 여자는 내가 그녀의 말대로 연습장을 바라봐주고 있는 거라 생각했는지 이내 무언가를 그 위에 적기 시작했다.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이 위태롭게 하얀 연습장 위를 흔들거리며 유영한다. 


 '어젯밤부터 계속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오늘 만나게 되면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할지 고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결국 안녕하세요라는 말 밖에 적지 못 했네요.'


 거기까지 적은 여자가 더 이상은 적기가 힘이 들었는지 잠시 펜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를 돌아보고 한심하지 않냐는 듯 실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까 전 여자가 내게 내밀어주었던 그 힘주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어낸 '안녕하세요'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취미는 뭐에요? 좋아하는 건? 사는 곳은 어디에요? 부모님은 뭐 하시죠? 나 어때요? 나는 고개를 도리질 하고는 여자의 티 없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주 픽 하니 헛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어쩐지 잔뜩 굳어 있던 몸에서 바람이라도 빠지듯 긴장이 풀려나가는 기분이라 허탈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아무것도 못 적었으면 좋겠네."

 "..........?"


 여자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목덜미 뒤로 팔짱을 끼고 벤치에 기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더니 알아듣지 못 한 여자가 내 입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무슨 말을 했던 건지 의아해 하며 갸웃거린다. 딱히 더 설명해줄 맘이 없던 나는 그저 웃으며 그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농담이라지만 아무튼 정말로 처음부터 그렇게 질문을 해댔다면 질색 이었겠다. 여자가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침묵의 미덕을 지켜주기를 기원하며 나는 속으로 키득거리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자는 내가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자 이내 포기했는지 순순히 다시 휠체어에 몸을 깊숙이 뉘이고는 나를 따라 멍하니 공원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의미한 타인의 모습들을 눈에 담고 있는 여자의 눈동자는 어딘지 깊게 잠겨 있다.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마치 무기물 같았던 분위기는 많이 사라져 있지만 여전히 여자에게서는 생기 없이 메마른 건조함이 풍겨져 나왔다. 하루의 일과라고는 깨어나서 맛이란 게 느껴지지 않는 맹한 미음 같은 것을 몇 숟가락 떠먹고 하루 종일 독한 약에 취해 침대에 기절한 듯 누워 있다가 때때로 이렇게 공원에 산책 나오는 것이 전부인 여자가 과연 스무 해가 넘는 지난 시간동안 이렇게 공원에 앉아 생각하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의외로 별 생각이 없는 걸지도 모르지... 라고 어깨를 으쓱이며 위안하듯 떨쳐버리려 했다.


 '무슨 생각 해?'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여자의 연습장을 가져다가 적어서 보여 주었다. 일부러 괜찮지 않냐는 듯 창으로 푹푹 찔러대고 있는 것 같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기다렸더니, 여자는 내가 건넨 질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무언갈 적어 내밀어 주었다. 


 '병원 밖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고 있었어요.'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을 병원 안에 갇혀 지냈던 사람으로써는 참으로 모법적인 답변이다. 나는 한숨과 함께 왠지 심드렁해 져서는 뭐라고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내가 아는 한 바깥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 어딜 가도 온통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그 하등하고 열등한, 그런 주제에 어리석고 남을 헐뜯지 못 해 안달난 것들로 가득찬 세상이란 곳은 결코 좋은 곳이 못 되었다. 지금껏 이곳에 이렇게 홀로 살아온 게 어쩌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병원 밖은 말이야.....'

 '꽤 아름다운 곳이 많아. 산이라던가 바다라던가....'


 내가 적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지어내면서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걸까? 글을 적는 손이 어지럽다. 마치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것 같다. '수정아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야.', '수정아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아.', '수정아 세상은....'


 "됐어. 아무튼 그런 줄이나 알아."


 글을 적던 펜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떨리는 손을 얼른 들키지 않게 가져다 숨겼다. 붙잡고 있는 손 아래로 펜을 쥐었던 손이 불안히 떨고 있다. 뭐라고 떠들어 댄 거야...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모두 거짓말이야. 그럼에도 어쩐지 곧이곧대로 적어주기가 망설여진다. 아직 아무것도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 한 여자에게 괜스레 그런 얘기를 해주고는 싶지 않았다. 


 불안히도 흔들려대고 있는 내 눈동자를 보지 못 하고 여자는 내가 적어 내려준 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산, 바다, 꽃, 푸른 빛 따위의 사람에 관련 된 것이라고는 한 줄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그 단어의 나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여자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요.'


 뭐가 고맙다는 거야?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스레 바라보았더니 활짝 웃는다.


 '저 밖이 아름답다고 말해줘서요. 처음이에요. 바깥에 대해 들은 건.'


 짧은 신음성이 속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 어쩌면 여자에게는 바깥세상이 실제로 어떠한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나갈 수 없을 테니까. 그것을 그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여자가 평생을 꿈꾸며 그려왔을 바깥 세상에 대한 그림에 지금 아름답다라는 색이 덧입혀졌다. 아마도 세상을 가장 혐오하고 있을 나에 의해... 모순이다! 어쩐지 극심한 자기혐오마저 밀려온다.


 "난 이만 가겠어!"


 벌떡 일어나서는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은 채 쿵쿵대며 뒤돌아 가버렸다. 등 뒤로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랐는지 휠체어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를 꾹 틀어막고는 더 걸음을 빨리했다. 진작에... 진작에 그냥 도망칠 걸 그랬어. 부질없는 후회만을 거듭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 날, 조금 이른 아침부터 여자를 찾아갔다. 지난 날 여자를 공원에 혼자 버려둔 채 떠났던 것 때문에 못내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나는 죄책감을 조금 간직한 채 조용히 여자의 병실 문을 열어 보았다. 투명한 아침빛이 내려앉은 병실에서는 다행히도 여자가 침대 위에 기대앉은 모습으로 어제처럼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부탁할 게 있어요.'


 머뭇거리며 곁에 다가가 앉자 여자는 묘하게 달뜬 얼굴로 내게 연습장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부탁? 무슨 일이야? 아직까지 제대로 눈도 못 마주친 채 조마조마하고 있던 나는 그녀가 연습장을 다음 장으로 넘기며 보여준 말에 잠시 벙쪄 버리고 말았다.


 "책을 읽어 달라고?"


 진심이냐는 듯이 눈으로 묻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불쑥 내 앞에 두꺼운 책 한 권을 들이민다. '바다의 신비'라고 짧게 적힌 책 제목을 떨떠름하게 지켜보다가 속으로 작게 투덜거렸다. 들리지도 않으면서 뭘 읽어 달라는 거야? 마지못해 책장을 넘기자 첫 페이지부터 꼬맹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온갖 화려한 바다 생명체들과 아름다운 주변 풍경들의 그림이 펼쳐졌다. 더듬더듬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글들을 대충 읽으며 책을 넘기고 있자니 침대 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여자가 몸을 꿈틀대며 내가 앉은 의자 곁으로 다가오려 애를 쓰는 것이 보였다. 정말 신경 쓰이게... 나도 모르게 세로로 눈썹이 접혀서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어쩔 수 없이 여자의 곁으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여자가 잘 볼 수 있도록 그녀의 앞에 책을 펼쳐 들고는 다시 한숨 섞인 소리로 따분히 읽어 나가려 하자 여자가 갑자기 빙긋 웃더니 자신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댄다. 뭐... 뭐 하는 거야?! 그 뜻밖의 접촉에 놀라서는 움찔하고 어깨를 빼지도 못 하고 어쩌지도 못 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자 여자가 예쁘게 생긴 눈동자를 들어 올려 나를 올려다보고는 어서 읽어 달라는 듯 눈빛을 보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어제의 일로 양심에 찔리는 것만 없었다면 단박에 싫다고 거절하였을 터인데 지금은 그러지도 못 하겠다.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것을 참으며 어쩔 수 없이 글을 읽어 나가자 여자는 만족한 듯 책에 집중했다.


 사람이 죽을병에 걸려 아프면 몸 안의 무언가도 전부 다 빠져 나가는 것인지 여자의 머리는 너무도 힘없고 가벼워 현실성이라고는 없었지만 누군가가 내 몸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편하고 불안해 죽을 것만 같아 숨이 거칠었다. 중간 중간 어색한 심호흡을 삼키며 읽다가 문득 여자를 내려다보니 들리는 것도 없을 텐데 여자는 꽤나 진지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수초, 말미잘들과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 보글거리며 피어오르는 공기방울과 그 옆의 신비한 바다 생명체들의 그림들이 나올 때마다 여자의 시선이 반짝이며 그것들을 따라 간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모양새다. 


 잠시 여자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린 탓이었는지 책을 읽는 것을 멈추고 있자 여자가 나를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그 얼굴을 어색히 바라보다가 나는 그제야 여자가 확실히 내가 읽어주고 있는 것에 귀 기울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들리지는 않지만 내가 입을 뗄 때마다 한숨과 함께 가볍게 흔들리는 자신의 머릿결이라던가 살짝 기대고 있는 어깨를 통해 전달되는 내 몸의 떨림 같은 것으로 여자는 내가 읽고 있는 글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전달 받고 있었던 모양이다. 소리가 빠져버린 적막한 그녀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들이 언어가 되어 흘러 다니고 있는 것일까? 연한 파스텔 색의 붉고 노랗고 푸른 동그란 고리 모양의 형상이 공기 중을 수놓는다. 묘한 상상을 하다가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책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나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었다.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착실히 여자에게 전해져 닿고 있다. 잔잔한 울림 같은 작은 파동 같은 것들이 미약한 온기를 품고 그녀와 나 사이를 가득 메우며 퍼져 나가고 있다. 한참이나 후에 여자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을 보이고서야 나는 책장을 덮고는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수없이 펼쳐졌던 무수한 바닷속 모습에 심취했던 듯 여자는 그 이미지나 소리들을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것처럼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음미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게 연습장을 끌어당겨 무언가를 써 내밀어 준다.


 '정말로 바깥은 아름다운 것이 많은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아름답다라... 설마 어제 오후에 내가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던 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걸까? 왜 오늘 갑자기 바다에 관련된 책을 읽어 달라고 했는지 그제야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무슨 기분일까?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기분에 개운하리 만치 노곤 노곤한 느낌이다. 피곤해.... 이만 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절뚝이며 일어나 서자 여자가 그런 내 모습을 눈으로 쫓다가 머뭇거리고는 연습장에 무언갈 써 보여 주었다.


 '함께 바깥에 나갈 볼 수 있게 되는 시간이 오면 좋겠어요.'


 며칠째 온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던 봄의 햇살이 그녀가 있는 침대 위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섣불리 입을 떼지 못 하고 연습장을 잡은 그녀의 손가락이 꼼지락대고 있는 모습과 불편하게 꽁꽁 동여매어진 채 절뚝이는 내 다리를 번갈아 보고 있다가 그녀를 향해 힘없이 웃어 보였다. 한 마디 말만으로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나는 괴물인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자도 한 마디 말이면 살려낼 수 있다. 매일 새로운 해가 뜬다지만 어떤 삶의 목표도 없이 그저 멍하니 시간을 지리하게 보내고 있던 나는 어느 날 그래서 정말 내가 괴물인 건 아닐까 궁금한 마음에 소파위에 벌렁 드러누워 있다가 다짜고짜 2층 정도 되는 건물의 난간에서 뛰어 내려 보았다. '난 괴물이니까 상관없어!' 따위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 결과로 지금은 이렇게 꼼짝없이 불편한 통깁스를 발에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저 여자와 마주 보고 대하하고 있는 이 순간은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내 언령이 통하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 어쩐지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잘 자."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미소를 지어주고는 이내 눈을 감는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다 나는 조용히 병실의 문을 닫고는 돌아섰다.






-


 병원에서 지낸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변한 것이라고는 조금 가벼운 깁스로 바뀐 내 다리와 움직이지도 못 하고 항상 꼼짝없이 누워 지내는 여자를 내가 미주 언니라고 호칭하게 바뀌었다는 것 뿐이다. 그동안 지내오면서 나는 미주 언니가 실은 어쩌면 천성이 유쾌한 사람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쩐지 방심하고 멍하니 곁에 앉아 있다 보면 의외의 장난을 친다던가 유치한 농을 던지는 식이 많다. 단지 체력이 버텨주지 못 하고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 탓이지 만약 정상적인 가정에서 정상적인 몸으로 태어났다면 언니는 분명 지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때때로 창백한 햇살을 받으며 홀로 병실의 한 가운데 앉아 있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 그래서 나는 우아하고 화려한 꽃 하나가 검은 빛으로 쓸쓸히 시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곤 한다.


 이제는 완전히 하루의 일상이 되어 버린 언니와의 독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만히 침대 곁에 걸터앉아 조용한 목소리로 책장을 넘기며 읽어 주고 있는데 문득 다 쉬어 메말라 버린 듯 한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다보니 어느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언니는 무언가를 갈망하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또 밖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연습장 위로 글을 써서 보여주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요새는 늘 이런 식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언니는 부쩍 더 바깥 세상에 대해 궁금해져 버린 것 같다. 그리고는 나에게 떼를 쓰듯 나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적어 보여주고는 했다. 그럼 언제나 나는 애매한 표정으로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기가 바빴다. 어찌되었든 내가 해주고 있는 모든 말은 거짓말이다. 이 병원에 내가 틀어박힌 것도 벌써 꽤 오래 되었다. 언니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며 바깥을 상상하자 벌써부터 잊고 있던 불쾌감에 입맛이 쓴 기분이 들어왔다. 온갖 화려한 색채로 반짝이며 빛나고 있는 세계. 이 병원의 밖에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없다. 바깥은 온통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매캐한 회빛의 도시였다. 그리고 사람들이라는 증오스러운 것들이 있다. 넘치고 넘쳐서 온갖 것을 더럽히며 증식하고 있는 인간들... 나는 언니가 되도록이면 그 모든 것들에게서 최대한 격리 된 채 그녀 자신의 환상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기를 바랐다.  


 '자꾸 그러면 앞으로는 책을 안 읽어 줄 거야.'


 단단히 협박하듯 일러주자 언니는 짧은 한숨을 포옥 내쉬더니 알겠다는 듯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도 바깥에 나가보고 싶은 것 일까? 자꾸 신경 쓰이게 왜 그러는 거야. 어느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 되어 언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괜히 못 된 바람을 불어넣어 준 건가 싶기도 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는 여전히 다른 생각에 가득차서는 읽어주는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오늘은 그만 읽자."


 탁 소리 나게 책을 덮고는 일어서자 언니가 의아한 눈길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부글부글 열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참 편하기도 하지. 저렇게 안 들리는 척, 순진한 척 어리광을 부리며 맘 편히 살 수 있다는 게 화가 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만 사실 언니는 이미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배신당하고 외면당한 채 버려져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서 버려진 채 언니의 부모는 넘쳐나서 주체하지 못 하는 돈의 일부를 적선하듯 병원에 던져주는 것으로 언니를 기억 속에서 말끔히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태어나면서 20년이 넘게 생활한 병원의 사람들은 중환자에 활기라고는 없고 정상적인 생활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못 하는 언니를 그저 매달 주어지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주머니 정도로 취급하게 되어 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이 좁아터진 병원 안에서도 이 정도다, 바깥 세상에 나간다면 언니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혐오스러울까... 나는 한차례 오한처럼 두려움에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밖에 나가고 싶어 한다고? 뭔가 단단히 잘못 되어도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건 거의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일 것이다.


 이제는 반깁스 형태의 가벼운 붕대로 감고 있는 내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거의 다 나아가고 있다. 이제는 절뚝거리면서도 목발 없이 어느 정도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언니와 있기로 다짐했던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는 이런 헛된 생각 같은 건 끝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답답한 마음에 쓸쓸한 병실의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언니가 사실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 이다. 비록 요즘 들어 부쩍 웃는 일도 많아지고 행동거지에도 생기가 살아나고는 있지만 언니의 몸으로는 바깥에 나갈 수 없다. 병원이라는 새장 안에 갇혀 있는 날개조차 자라나지 못 한 새. 그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더 간절한 걸까? 나는 애초에 바깥에 나갈 수 없는 언니에게 그나마 즐거운 꿈이라도 꿀 수 있도록 바깥을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그게 오히려 나가지 못 하는 언니에게 잔인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 하였다. 이 병원에 오고부터 처음 며칠간을 제외하고는 나는 근 한 달여를 언령이라는 것에 대하여 잊고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고 일어나 언니와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고 공원 가를 거닐고 하는 생활을 계속 하였다. 지금 이 순간들만이 내 지난 인생들에서 유일하게 내가 괴물이 아니라 사람임을 자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와 만나고부터 언니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그저 고독한 병실에서 하염없이 메말라가는 존재가 아니란 걸 느끼고 있었다. 그냥 지금까지처럼 계속 이대로만 느끼고 만족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처음으로 느껴보는 행복이다. 이 이상으로 많은 것을 난 바라지 않는다. 제발 날 더 이상 신경 쓰게 만들지 마. 그러니까....


 "나.가.지.마."


 창가에 기대 고개를 돌려 언니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조용히, 음산하게, 씹어 뱉듯 내뱉은 말에는 내 의지가 진득이 묻어 있다. 짧은 문장 속에서 그것은 복합적인 의미가 되어 실제로 구현되는 힘을 갖는다. 내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 포기하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일. 어떻게든 매달리고 갈망하는 일 앞에 나의 언령은 내가 의식하지도 못 하는 새에 본능처럼 새어나왔다. 아무리 잊으려 한 들, 외면하려 한 들 그것은 곧 나 자신의 일부인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 순간, 나를 바라보던 미주 언니의 눈동자가 조금 크게 부릅떠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벌어진 입사이로 쇳소리 같은 미약한 신음소리를 흘리며 미주 언니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가슴을 부여잡고는 쓰러지는 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어... 언니?"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다급히 뛰어가 안아들자 어느새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채 미주 언니는 미약한 숨소리만을 괴롭게 내뱉으며 혼절해 있었다. 어째서...? 설마 내 언령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 내 언령은 언니에게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마치 커다란 망치에 뒤통수라도 맞은 것처럼 얼이 빠져서는 나는 다급히 의사와 간호사를 호출하였다. 황급히 뛰어온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악을 쓰며 어떻게 된 상태인지 알아내라고 언령을 남발한다. 분주히 이리저리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실릴 것이 들어오고 정신없는 소동이 이어지다가 언니의 발작 같은 증세도 조금 완화되고 나서야 다시 병실에 눕혀져 나는 그제야 사람들을 물리고는 조용히 언니의 침대 곁 의자에 걸터앉았다.


 어느새 창밖은 어스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잠든 것 처럼 누워서 미동도 하지 않는 언니의 곁에서 나는 멍하니 어둠 속에서 하얗게 떠올라 있는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의사들 말로는 극심한 스트레스성 발작 증세라는데 뇌에 어마어마한 자극이 몰려서 정신을 잃은 거라고 했다. 지켜봐야 알겠지만 워낙 심각했던 만큼 얼마간의 기억을 잃거나 정상적으로 사고하는데 문제가 올 수도 있겠다고도 했다. 참,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들 지껄이지....


 모두 내 탓이다. 그대로 어디론가 도망가 숨고 싶은 것처럼 나는 내 얼굴을 끌어안고 웅크렸다. 그저 본능처럼 내뱉었던 언령에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던 미주 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어느새 언니는 나의 말이 그대로 전달될 만큼 나와 가까워져 있었던 것이다. 나가지 말라는 말. 그 말뜻에 담긴 숨은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의사는 분명 언니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고 했다. 언니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나와 꿈꾸었던 바깥세상의 아름다웠던 상상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 일까? 나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 나와 나눈 대화... 나와 처음 만날 날. 그 모두가 언니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 인생 전부를 통틀어도 비교할 수 없던 언니와 나의 지난 한 달이 그렇게 지워지고 있다.


 왜지? 어째서인지 눈물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저 옥죌 듯 미어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나는 소리 내어 나오지도 않는 울음만 억억거리며 토해내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내 언령에 따라 이리저리 바쁘게 난리 통을 피우는 중에 계속해 쉬지 않고 "나.아.라.", "취.소.되.어.라." 따위의 언령을 나는 미친년처럼 발작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내 언령은 나가지 말라는 처음 언령 외에 어떤 것도 언니에게 전달되어지지 못 하였다. 이상할 것도 없다. 그 이유를 나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언니가 이곳에 남아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외에 어떤 것도 나의 진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언니가 지금보다 더 건강이 악화되든, 바깥 세상에 대한 희망도 없이 예전처럼 생기 없이 시들어가든 간에 나는 미주 언니가 이곳에 남기를 바라고 있는 것 이다. 괴물. 괴물이다. 나는 그야말로 괴물이다!


 어느새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던 손들과 혐오감 가득한 시선들이 내 주위를 빙글빙글 에워싸며 돌고 있었다. 그들의 비웃음 가득한 소리가 점차로 뒤섞여 내 고막을 찢을 듯 유린한다. 그 가운데 웅크려 주저앉은 채로 나는 귀를 틀어막고 눈을 꼭 감은 채 악을 질러댔다. 아니야! 아니라고!!! 내 탓이 아니야!


 눈을 떴을 때 어느새 밝아 온 아침 햇살과 함께 가녀린 손 하나가 느리지만 부드럽게 내 머리를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보자 초췌한 모습의 미주언니가 나를 보고 힘겹게 웃어 준다. 깨어난 거야? 언니의 웃는 낯을 보자 그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죄인처럼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를 보듬어 주던 언니의 손을 움켜쥐었다.


 '수정아. 나 나가고 싶어.'


 그동안 내게 배웠던 말투로 언니는 연습장에 글을 써 내게 보여주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하고 나는 울던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나를 잊지 않았구나. 희미한 기억 속에, 아직 언니는 나와 함께 밖에 나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언제 지워져 버릴지 모를 기억이지만 그래도 그것은 남아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는 언니의 휠체어를 가져와 너무도 가벼워진 언니를 안아 올려 앉혔다. 언령은 더 이상 취소할 수 없다. 언니가 나가지 않기를 바라는 괴물로서의 나는 언니를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한 달간 언니와 지내왔던 나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언니에게 그 기억이 남아있다면 나는 그 마지막 순간만큼은 언니를 위해 이 바깥으로 나가줄 수 있을 것 같다. 


 외출 준비를 하면서 지켜보자 언령이 뇌에 작용하고 있는 탓인지 언니는 마치 어린애와 같아져 있었다. 마치 백치가 된 것 처럼 순순히 내 팔에 끌려오고 묻는 말에 의미 없이 벙긋이 웃으며 그저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만 알고 즐거워하고 있다. 그 모습에 몇 번이고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휠체어를 끌고 병원의 건물 밖을 나가자 병원의 정문 밖으로 조금 야트막한 내리막길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 길과 그 앞으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도로와 도시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바깥의 모습에 벌써부터 숨이 막혀 오는 것 같다. 나는 머뭇거리며 뒤로 내빼려던 발걸음을 다잡고는 언니의 무릎 맡에 있던 연습장에 글을 적어 보여 주었다.


 '정말로 나가고 싶어?'


 내게 묻는 말과도 같은 질문을 써서 내밀자 언니는 그 글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나는 심호흡과 함께 휠체어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는 천천히 아직 성치 않은 다리를 절뚝이며 병원 밖을 나섰다. 


 도시의 봄은 그리 온화하지는 않다. 조금 뿌연 하늘과 답답한 공기. 정신없이 내달리는 수많은 차들과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어떤 대화와도 어울리지 않게 이곳은 그리 아름다운 풍경은 되지 못 하였다. 기왕이면 매일 책에서 보던 산이나 바다처럼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언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어떻게든 이 모든 것을 기억에 간직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만약 다음번에 언니와 새로 만남을 가질 때, 그 때도 내가 언니에게 병원 밖이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면 그때는 꼭 언니를 건강하게 만들어서 밖에 나가게 해줄게. 그럼 산에도 가고 바다에도 가고 하면서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 많이많이 보자."


 들리지 않을 말을 언니의 뒤에서 내뱉는다. 이제 곧 언니는 나와의 기억을 전부 잊을 것이다. 내 언령이 바란 데로 모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난 한 달의 시간을 나는 언니를 붙잡은 채 또 되풀이 하게 될런지도 모르겠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쳇바퀴처럼 그것이 반복되는 상상을 해보았다. 자신이 괴물인 것을 잊기 위해 나는 가장 괴물다운 방법을 생각해 냈구나....


 그 때 였다. 무언가가 휠체어의 바퀴 밑에 걸리면서 잠시 툭 튀어 오른 순간 나는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리다 그만 휠체어를 잡은 손을 놓치고야 말았다. 내 안의 생각에 너무 침체되어 정신을 팔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나는 당황한 채 한동안 언니를 태운 휠체어가 야트막한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굴러 내려가다 점점 저 앞의 차도를 향해 가속도를 내고 있는 것을 거짓말처럼 지켜보다가 튕기듯 일어나 쫓기 시작하였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일.어.나! 걸.어!"


 아이처럼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인지 미주 언니는 휠체어를 꽉 붙든 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얼결에 되는 데로 언령을 마구 내뱉었지만 이 급박한 순간에도 언령은 어느 것 하나 진실 되지 못 한 것인지 언니의 귀에 다가가지 못 했다. 욕설과 비명이 속에서 터져 나온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내 자신을 갈가리 찢어 흩뿌리고 싶어진다. 이 상황이 와서까지 나는 언니를 그리도 붙들고 싶은 것 일까? 


 울음이 터져 나온다. 나는 자꾸만 부옇게 번지는 시야를 마구 손으로 부비 우며 저만치 멀어져 가는 언니를 향해 계속 절뚝거리며 달려 나갔다. 제발 멈추란 말이야. 가지마! 다 내 잘못이란 말이야! 이렇게 끝내 버리지 말라고!


 "언니가 죽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어! 언령이고 뭐고 그런 거 됐으니까! 바보야! 일어나!"


 언니를 태운 휠체어는 어느새 무서운 속도로 차도를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도시의 차들은 이후에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지 못 한 채 도로를 내달리고 있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서는 저주스러운 나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언령이라는 괴물.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세상에 환영받지 못 한 혐오스러운 생명체. 정신없이 뛰느라 어느새 퉁퉁 부어올라 아픔을 호소하고 있는 깁스된 다리를 보고 나는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가 소리쳤다.


 "언니를 구.해.!!!!"


 자기 자신에게 언령을 쓰면 어떻게 될지 나는 어려서부터 꺼려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본능적인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질의 것 이었다. 주체와 객체의 혼동은 치명적이다. 언령을 쓰는 본인이 언령에 지배당한다는 것은 어딘지 헛구역질이 난다. 하지만 이제와 그딴 건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기분이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 저주받은 것! 너도 내 자신의 일부라면 제발 한 번쯤은 나에게도 도움을 주란 말이야!!


 순간, 몸이 튕겨져 올랐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뭔가 귓가를 스치는 어마어마한 바람의 소리라던가 째질 듯 한 자동차의 소음. 둔중하게 덮쳐오던 충격 같은 것들이 불분명하게 뒤섞여 있을 뿐이다. 


 "수정아... 수정아!"


 새하얀 세계에 나는 떠 있었다. 바닷속인 듯 저 멀리서 일렁이는 파도의 움직임과 부수어지는 햇살의 반짝임이 보인다. 처음 느껴보는 것 같은 안락함.... 하지만 어디에서부턴가 자꾸만 들려오는 어딘지 낯설지 만 그리운 소리에 계속해 이끌려 나는 천천히 표면 위로 부유하고 있었다. 이윽고 밝은 빛이 한 차례 시야를 가득 비추었다고 생각한 순간, 눈을 뜨자 미주 언니가 나를 품에 안아 들고 내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언니.... 목소리..?"


 내가 손을 들어 올려 언니의 입가를 매만지자 정신없이 나를 안아들고 내가 깨어난 것에 감사하던 언니가 그제야 흠칫 놀라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목과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말... 할 수 있게 된 거지?"


 내가 묻고 나서야 잠시 충격에 빠진 사람처럼 멍해있던 언니의 눈에서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받은 사람처럼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내 울음을 쏟아내며 내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언니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내 옆으로는 앞부분이 크게 찌그러진 차 한대가 도로 위에 멈춰서 있다. 멍하니 깁스되어 있던 발을 내려다보자 언제 풀려 버린 건지 멀쩡한 맨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구해준 걸까? 언령이....? 주변으로 점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어 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로 풀기 복잡한 심경이 되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정아....."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나를 꼭 껴안고는 흐느껴 우는 품에 나는 미주 언니를 마주 안아주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구나.




 언령이....

 .....길고긴 저주가 끝났다.






-

 자기 자신에게 언령을 쓴 대가였을까...? 그 날 이후로 언령의 힘은 사라졌다.


 언령이 사라지고 난 일상은 거짓말처럼 평온해져 있었다. 그 누구도 내 언령의 힘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 하는 듯 이제는 학교에서도 집안에서도 나를 그저 평범한 아이로 대해준다. 마치 나 혼자 저 멀리 외딴 시공간을 살다 돌아온 기분이다. 그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적응하고자 한동안은 바쁘게 보내야만 했다. 갑자기 말을 걸어오게 된 학급의 친구들이나 아무렇지 않게 잔소리를 하시고 평범한 일상 얘기를 꺼내시는 부모님들 속에서 보통의 고등학생이 느끼는 학업의 스트레스나 교우관계 따위에 끙끙대며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끔씩 버릇처럼 나오는 명령조의 말투로 주변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든다는 것 빼고는 완전한 소시민의 모습이다.


 미주 언니는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어 퇴원하게 되었다. 미주 언니네 집안에서는 갑자기 잊고 살고 있었던 혹 하나가 버젓이 살아서 돌아오는 바람에 역시 달갑지는 않아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딸이긴 하니 번듯한 집에서 그동안 못 했던 호화를 누리며 살게 해주고는 있지만 그저 그뿐이고 식구로 인정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미주 언니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자신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것, 말하고 들을 수 있고,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 그런 하나하나가 미주언니에게는 그저 기쁨일 뿐인 것 같다. 보고 있으면 천성이 착한 건지 바보 같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나는 벌써 한참을 교복 차림의 모습으로 공원 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꽤 이른 시간에 나와 있던 탓에 손에는 하도 꼼지락 거려서 볼품없이 구겨진 게 아닌가 하는 포장된 선물이 들려 있었다. 미주 언니와는 한동안 만나지 못 하였다. 서로 바뀐 일상에 적응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사는 곳도 영 가깝지 못 해서 중간 중간 연락이 오고간 것 외에는 만날 기회를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짓고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 까? 입술만 깨물며 서성이고 있는데 저만치서부터 듣기 좋은 목소리로 "수정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자 최근 배우기 시작했다던 커다란 첼로 가방을 들고서 걸어오고 있는 미주언니의 모습이 보인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지?"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언니는 건강을 회복한 탓인지 이제는 나와 이렇게 마주 서도 별로 작아 보이지 않았다. 생기를 머금은 채 활짝 핀 꽃. 눈부실 정도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는 모습이 어쩐지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했다. 수수하게 보이지만 결코 값이 적게 나가지 않을 게 분명한 옷이며 등에 맨 첼로 가방 같은 것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못 보고 지낸 사이에 언니는 여러모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내일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계획도 없이 죽어버린 눈동자로 멍하니 누워있던 모습이 아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어쩐지 저만치 나와는 멀어져 버린 듯 한 모양새의 사람이다.


 "응. 나야 뭐...."


 얼른 손에 쥐고 있던 선물을 등 뒤로 감췄다. 꾸깃꾸깃하니 엉망인 선물이 부끄럽다. 들을 수 있게 된 뒤로 음악에 빠져 첼로를 연주하고 싶게 되었다는 언니의 말에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고르고 골라 샀던 첼로 연주 CD이다. 하지만 이딴 거 도대체 알게 뭐야. 금세 침울해진 기분이 되어서는 나는 입술을 비죽였다.


 어쩐지 처음 언니를 만났던 그 날 처럼 도망치고만 싶은 마음이다. 할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뭐였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이것저것 물으며 웃고 있는 언니에게 애매한 태도로 고개만 끄덕이고 웃어주며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고 보니 수정아. 나중에 꼭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면 얘기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어?"


 멈춰 선 나에게 다가온 미주 언니는 수줍은 듯 웃더니 말해주었다.


 "고마워. 일어나라고 해주어서."

 "무슨..."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날 휠체어에 앉은 채 굴러가고 있을 때 뒤에서 나에게 일어나라고 해주는 네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아. 바보야 일어나라고...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아마 나,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 말도 하고 들을 수도 있고. 어쩐지 다 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다음에 만나면 꼭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왠지 얼이 빠져서는 언니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바보야 일어나라고? 그게 들렸다는 걸까? 그건 언령으로 내뱉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설움에 받쳐서, 악에 받쳐서 온전히 내 목소리로 뱉어낸 것 이었다. 그 진심이 통했다는 얘기야? 수정이라는 한낱 인간으로써 내뱉은 내 말이 정말로 언니에게 전달되었다... 그런 소리일까? 방금까지도 도망치려고만 하던 내가 무슨 용기였는지 머뭇거리던 손을 뻗어 언니의 어깨를 잡아 끌어당기고 마주 보았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오른다.


 "언니.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들어줘."

 ".....?"

 "........좋아해요."


 봄은 막바지를 알리고 있다. 어느새 더워진 햇볕이 쨍쨍거리고 공원의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어 붉어진 언니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언니만큼이나 발갛게 달아올라 있던 나는 언니의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번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진심은 전해진다.




 말에는 힘이 있다. 그것을 '언령(言靈)'이라고 한다.




.


.


.


.........언령(言靈) (fin)







 12일 12시 12분에 첫 줄 씀.... 대박 - _-;

 5월의 글이 끝났습니다!! 애초에 스타트가 늦었던 만큼 더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마감 임박해서는 예상외의 일들이 겹치면서 사실상 거의 포기 분위기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마감을 지킨 건 기적이 아닐까 싶은....

 아무튼 과거 5월에는 '지구 최후의 날' 따위의 유치하고 신나는 글이나 쓰고 앉았던 사람이니 만큼 이번에도 가정의 달이니까 엄청 유치하고 신나고 그런 걸 써야지! 하며 신나있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 안의 주류주는 엄청 달달하고 신나고 막 유쾌한 기분이라서 글도 그런 분위기로 쓸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요... ㅠㅠㅠ

 지수가 승소했다는 기사와 함께 반면에 그 이후로도 계속 되는 댓글 논쟁을 보면서 역시 사람 말은 무섭다는 것, 사람은 자기 세상에서 밖에 살지 못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거기에 돌아다니다가 어떤 분이 '시들어가는 꽃은 미주른쪽을 위한 단어' 라는 명언을 하셔서 어처구니없게 거기에도 영향을 받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 느낌들이 합쳐져 결국 이렇게 탄생 되었습니다. 네. 맞아요. 또 망글입니다.

 다음에는 꼭 재밌고 유쾌하고 그런 글을 써야겠다 후회하며 마칩니다. 벌써 봄이 다 지나가네요... 즐거운 덕질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