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6일 월요일

[맹초] 23세 사춘기





















 "싫어."


 아직 잠이 덜 깬 눈을 부비 우며 잔뜩 찌푸린 인상으로 퉁명스레 말했다.


 "응? 아침 먹기 싫어? 그럼 토스트 구워줄까?"

 "싫어."


 다시 한 번 단호히 말했더니 초아 언니의 고운 미간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볍게 좁혀진다.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갸웃거리던 얼굴이 이내 밝게 웃는다.


 "그럼 과일 주스라도 갈아줄까?"

 "싫어. 싫다니까? 싫습니다!!"


 완전히 떼쓰는 것이 분명한 태도로 손발을 버둥거리며 버럭였다. 그리고는 퍽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성큼성큼 문을 열고 나서자니 뒤에서 어안이 벙벙한 시선이 날아와 꽂힌다. 그 시선을 피해 달아나듯 욕실에 들어가 기대어 서자 그제야 탄식처럼 낮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애도 아니고 맨날 밥 먹으라 마라...."


 질풍노도 23세 권민아의 오늘 아침 기분은 최악 입니다!!





 23세 사춘기
                   written by. 녀놘




 사춘기라는 건 말이야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낸 의견이 아닌 것에는 설사 그것이 맞는 답이라고 해도 아니라고 말하게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일단 무조건 적인 부정을 하고 보는 단계랄까. 어떠한 답에도 일단은 삐딱선을 타고 바라보면서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에 대해 만들어가는 시기.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사춘기라고 한다는데 듣고 있다 보면 그건 아마도 딱 지금의 내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아침도 안 먹고 나왔다고요?"

 "응."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더니 입술 끝으로 포크를 살짝 물어 쥔 채 설현이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건 그냥 땡깡 부린 거로 밖에 안 보이는데요."

 "뭐?!"


 숟가락을 턱하니 내려놓고는 살벌하니 쏘아보는데 설현이는 그러던지 말 던지 신경도 안 쓰고 태연히 자기 눈앞에 놓인 음식을 입안으로 몰아넣는데 열심이다. 저게 진짜 내 학교 후배 맞는 건 가?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내가 그래서 땡깡 부린 거라고?"

 "그렇잖아요.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부러워 죽을 지경인데. 나도 누가 집에서 꼬박꼬박 깨워주고 밥 차려주고 해주면 소원이 없겠네요. 이런 말 하긴 뭐 하지만 솔직히 언니 지금 너무 호강에 겨운 거 아니에요?"


 허 참...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더니. 하긴 내가 지금 애를 불러다가 좋은 소리 듣기 기대한 게 잘못 이었지. 아, 밥맛이 다 떨어지려 그러... 지는 않는 모양이니 일단 먹고 봐야겠다. 이 망할 놈의 위장 같으니라고. 누굴 닮아서 이렇게 정직한 거야! 흑흑흑. 역시 아침은 먹을걸 그랬어. 이 풀 길 없는 스트레스 먹어서라도 달래야 갰다. 전투적으로 다시 숟가락을 집어 들고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설현이와 함께 음식들을 처리하는 데 열중하기로 마음먹는데 저 요망한 것이 또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입 안 가득 음식을 오물거리며 말한다.


 "아무튼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잖아요. 오늘이라도 집에 가자마자 초아 언니에게 잘못 했다고 그러세요."

 "내가 왜! 야 진짜 네가 내 입장이 아니니까 그런 거야! 네가 당해 보라고!"

 "그러니까 그게 호강에 겨운 소리라니까...."

 "맨날 아침마다 늦잠 한 번 자지도 못 하게 꼬박꼬박 깨우고, 밥 먹는 것도 자유가 없다니까? 나갈 때도 뭐 놓고 가는 것은 없냐면서 이건 챙겼냐 저건 챙겼냐 꼬치꼬치 물어보고 집에 좀 늦게 갈라치면 어디냐 느니 마중 나가준다느니 얼마나 갑갑하게 구는 데!"


 들고 있던 숟가락을 막 흔들면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설현이가 자기 앞으로 튀는 침이며 음식물에 기겁을 하며 물러나서는 나를 심각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민아 언니. 지금 초아 언니랑 같이 산지 얼마나 됐죠?"

 "3년 조금 넘었다! 왜!"

 "이제 완전히 가족이 되었구만...."

 "뭔 소리야!"

 "언니는 사춘기 있었어요?"


 느닷없는 설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만 조금 뻥져 버리고야 말았다. 뭔가 핵심을 찔려 버렸달 까... 살짝 누그러진 내 모습을 보고는 설현이는 지그시 턱에 손을 괸 채로 관찰하듯 나를 바라다보았다. 평소에는 순박하고 장난기 가득하기만 하던 눈이 어째서인지 이럴 때는 은근히 농염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 관능미에 원숙함까지 묻어 나와서 보고 있기가 겁이 난다.


 이제는 얘까지 나를 가르치려 드네. 하아... 그 시선에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보통 사춘기는 중학교 즈음을 전 후로 온다고는 알고 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돌이켜 봐도 사실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워낙 느긋하고 태평한 성격 탓인지 딱히 막연한 불안감이나 걱정, 불만도 없었던 것 같고 사춘기라는 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그 시기는 지나가 버렸다. 그게 나쁜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사람에 따라 늦게 오는 사춘기도 있다던데 언니 지금 딱 사춘기 온 거 아니에요?"


 사춘기... 사춘기라....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해 겪는 성장통의 시기. 고개를 돌려 가게의 밖을 바라보니 초여름의 길거리 위로 눈부신 햇살이 비추고 있다. 금빛으로 너울대는 햇살의 잔영들... 문득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에 쫓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나는 아려오는 머리를 감싸 쥐고는 나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사춘기일지도 모르겠다...."





 -


 "오늘 아침도 안 먹고 갔는데 점심은 제대로 먹었어?"

 "응."

 "또 아무거나 대충 먹은 건 아니야? 밥 종류로 제대로 챙겨 먹었지? "

 "으응."


 부엌에서 들려오는 초아언니의 말소리에 모니터 앞에 앉은 채로 발을 까닥이며 건성으로 대충대충 대답을 넘겨 흘렸다. 심드렁하니 딱히 재밌는 것도 없는 인터넷을 까닥까닥 마우스로 클릭해가며 시간을 때우고 있자니 어느새 초아언니가 상을 펴들고는 와서 음식을 차린다.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익숙해서 그저 모른 척 뚱하니 외면하고만 있었다. 


 "밥 다 됐다. 어서 먹어."

 "싫어."

 "얘는...."


 내 심통 맞은 말에 그저 살포시 웃으며 초아 언니를 날 끌어다가 기어이 상 앞으로 앉혀 놓는다. 그 짧은 시간에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제대로 된 집 밥이 상 위로 차려져 있다. 하지만 어째서 이걸 보고 있자니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자마자 내 밥부터 챙긴 탓에 말끔한 정장차림에 그저 소매만 걷어붙인 채로 앉아 있던 초아언니는 내 맘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내가 어서 먹기만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다.


 "언니는 밥 먹었어?"

 "오늘 낮에 너무 많이 먹었나봐. 난 괜찮아."


 나보고는 먹으라고 하면서 자기는 뭐가 괜찮다는 거야. 입을 부루퉁히 내밀고는 삐죽이다가 예쁘게 잘 요리되어 있던 계란 프라이 하나를 조각내고는 집어 들어 대뜸 초아언니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거라도 먹어."

 "난 됐어."

 "먹으라니까."


 거절하는 초아언니의 입 앞으로 끈질기게 들고 서 있었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초아언니가 마지못해 입에 받아 넣고는 손을 내저은다.


 "이제 나는 됐어. 너 먹어."

 "그러지 말고 더 먹어."


 못 돼 먹게도 오물거리고 있는 초아 언니의 입으로 계란 프라이 하나를 집어 들어서는 집요하게도 다시 가져다주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계란 프라이 조각을 보고는 초아 언니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진다. 


 "나는 됐다니까 그러네."

 "빨리 먹어."

  "정말 나는 됐어."


 기어이 초아언니의 언성이 미세하게 높아지는 것을 듣고 나서야 나는 만족한 듯 젓가락을 거두었다. 거 봐. 자기도 자꾸 누가 옆에서 먹으라고 간섭하면 싫어할 거면서.... 잘못 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철없는 복수심의 만족감에 으쓱해져서는 나는 기분이 약간 상한 듯 한 초아언니를 앞에 두고 우쭐해져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이 풀어진 언니가 다시 자상한 얼굴이 되어서는 내 먹는 꼴을 흐뭇하니 바라보다가 또 한 마디 거든다.


 "그러지 말고 이것도 좀 먹어봐."


 에이... 진짜. 분명 방금 전까지도 집어 먹었던 반찬인데 마치 내가 전혀 손도 안 덴 것처럼 먹어 보란다. 내가 알아서 잘 먹고 있는데...!


 "먹고 있잖아!"

 "아, 알았어. 미안해. 안할게."


 한껏 성깔이 난 목소리로 빽 소리를 질렀더니 움찔 놀란 초아언니가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문다. 하여간... 어째서 밥 먹는 거조차 내 맘대로 하질 못 하는 거야. 난 애가 아니라고. 차라리 진짜 혼자 살았으면 좋겠어... 왠지 입맛이 뚝 떨어져서는 보란 듯이 초아 언니가 방금 먹으라고 했던 반찬만 슬슬 피해서는 깨작이며 음식을 집어 들었다.


 처음 언니와 만난 건 멀리 부산에서부터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자취방을 구할 때 부터였다. 어쩌다보니 혼자 지낼 수 있는 원룸이 아니라 룸메이트가 있는 곳으로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분담하며 절약해볼까 찾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수소문 끝에 초아언니와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 언니는 나보다는 세 살 위로 이미 졸업반이었기에 3년여가 넘게 지난 지금은 이미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 갓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도 지금은 엄연한 졸업반이 되었을 만큼 시간은 흘러 있다. 첫 대면부터 워낙 엄마처럼 자상한 사람이라 언니는 언제나 나를 배려해주고 신경써주었다. 그것이 처음 몇 달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타지 생황에서 고맙기도 하고 의지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모든 게 다 간섭 같고 억압받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언니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어?"

 "그렇잖아. 이제 직장도 구했고 돈도 벌고 있으면서 이 좁은데서 언제까지 이러고 둘이 부닥거리고 살려고 그래."


 이런 말을 하면 상처받을 거란 것을 뻔히 알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해 버렸다. 흘깃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조금 슬픈 표정이 되어 버린 초아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떠한 말을 해도 어떠한 행동을 해도 그저 다 받아주고만 있는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를 사람... 하지만 어쩐지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애 취급 받고 있는 것 같아 짜증이 솟구친다. 나에게 어떤 싫은 소리도 못 하고 당하고만 있는 모습에 점점 더 마음은 짓궂어져 간다. 괴롭히고 싶어.


 내가 점점 더 그럴수록 초아언니는 내 눈치를 살피는데  전전긍긍으로 더 속을 썩이고 있었다. 내 기분이 어디가 안 좋은 건지, 왜 그런 건지, 자기가 실수한 것은 없는지 속으로 오만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더 답답해진다. 나는 언니의 그런 시선이 싫은 거란 말이야. 날 좀 그만 내버려 둘 순 없는 걸까? 난 더 이상 애도 아니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내 멋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볼 자유가 있단 말이야. 난 다른 것에 화가 나 있는 게 아니라고! 나는 언니가 나에게 대하는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줘야 할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다음 달에는 내가 따로 집을 알아볼게."

 "민아야...."


 진짜야... 지긋지긋해. 이제 그만 나도 자유로워지고 싶어. 초아언니의 시선을 싹 무시하고서는 오물오물 거칠게 밥을 집어 삼킨다. 체하지 않고는 베길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소태 씹는 것 같은 밥을 꾸역꾸역 넘기며 나는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혔다. 내가 꼭 나가고야 만다. 진짜!






-


 그 날로 부터 벌써 일주일여가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갔다 오고 나서 빈둥대며 컴퓨터 앞에 앉은 채 나는 남모를 한숨만 푹푹 쉬어대고 있었다. 짜증이 나서 나가겠다고 호기롭게는 외쳤다만 막상 집을 새로 구할 생각을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져서는 온통 귀찮기만 할 뿐이다. 뭐 앞으로 다음 달까지는 열흘 정도 남았으니 그 안에 어떻게든 되겠지. 에라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 되어버려서는 나는 애써 그 문제를 외면하며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인터넷만 딸깍 거리며 보고 있었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하긴 생각해보면 초아언니가 그리 잘못 한 게 있나도 싶다. 사실 설현이 말대로 오히려 배배꼬인 쪽은 나일지도 모른다. 아니,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는 내 잘못인가? 하지만 막상 그렇게 인정해 버리려고 하면 또 무슨 자존심인지 버럭 화가 솟구쳐 오른다. 나는 애가 아니란 말이야! 그렇다. 여기서 봐도 저기서 봐도 나는 엄연한 성인이다. 초아 언니가 내 엄마인 것도 아니잖아. 어째서 그렇게 하나같이 꼼꼼히 챙겨주려고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관심 받고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이 경우는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냔 말이다. 아... 나는 억울해. 누가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 속 시원하니 소리 지르고 싶다.


 "근데 이 언니는 지금이 몇 신데 아직도 안 와?"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10시가 훌쩍 넘었다. 보통 회식 같은 게 있으면 미리 말하는 편이고 그러지 않다면 7시 전에는 꼬박꼬박 들어와서 내 밥부터 챙겨주기 마련인 사람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연락도 없고 들어오지도 않는다. 덕분에 습관처럼 언니가 챙겨주는 밥을 기다리다가 결국 오늘은 지금까지 저녁도 못 챙겨 먹고 있었다. 


 밥 먹으라고 재촉하는 사람 없어서 마음 편하네. 뭐! 애꿎은 시계만 부루퉁하니 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랜만에 해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그렇게도 고대하던 혼자만의 시간이다! 그런 사실을 인지하자 기분이 들뜬다. 급 기분이 좋아져서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집안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이 놓여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사이 잠깐 언니가 없다고 집안에 들어오면서부터 여기저기 던져 버렸던 옷가지들이 주워 다가 정리해주는 손길을 못 찾아 아직도 그대로 나뒹굴고 있고 가방도 저만치 팽개쳐져 있다. 머리를 말리겠다고 들고 다니던 드라이기는 컴퓨터 책상 옆까지 따라와서는 아무렇게나 방치 되어 있고 드라이기를 가져다 두려고 돌아보니 화장품들은 뚜껑이 열려 있는 것이 태반이었다. 잘한다. 나새끼. 잠깐 혼자 있다고 티란 티는 다 내고 다녔구나.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대충 방을 돌아다니며 옷가지를 주워 다가 옷걸이 위로 던져 넣고는 뭐라도 먹어야 갰다 싶어서 부엌으로 터덜대며 걸어갔다. 그리고는 한참을 조리대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나는 고심하게 되었다. 과연 이 혼자만의 자유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근사한 요리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 오랜 궁리 끝에 손에 라면 봉지를 집어 들고는 끓일 물을 렌지 위에 올려놓았다. 자알~ 한다. 자취 3년인데 그동안 초아언니가 해준 밥만 쳐묵하고 있었더니 할 줄 아는 요리가 뭔지 모르겠다. 초아 언니가 맨날 밥상 차려줄 때는 집밥 말고 다른 것 좀 제발 먹고 싶었는데 막상 혼자 차려 먹자니 귀찮아 죽겠다는 심정이 되어 버렸다. 그냥 굶어 버릴까? 된.장.


 끓는 물에 스프를 주섬주섬 뿌려 넣고 있는데 저만치 컴퓨터 앞에서 휴대폰이 울려대기 시작한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또 뭐야! 짜증을 확 내며 뛰어가 받아 들었더니 화면에 초아언니의 이름이 크게 씌어 있다. 뭐야... 오늘 못 들어온다고 전화 한 건가? 밖에서 맛있는 거 먹나 보네. 쳇...


 "네? 언니?"

 "혹시 이 휴대폰 주인 분과 아시는 분인가요?"

 "네. 그런데 누구신지...?"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움찔하며 반문하였더니 뜻밖에도 병원이름을 말한다.


 "교통사고로 이송되셨는데 보호자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교통사고라니 무슨 소리야?! 알겠다는 말만 정신없이 내뱉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친년 마냥 달려가며 생각해보니 얼마나 급했던지 뭘 어떻게 다쳤는지 얼마나 심각한 건지도 묻지 못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의 칠칠치 못 함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제발 별일이 아니기를 기도하였다. 바로 몇 분전만 해도 귀찮다고 얼굴도 보기 싫었던 사람이 이렇게 또 간절히 보고 싶어져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병원의 응급실에 들어서서는 초아 언니를 찾아 갔더니 하얀 침상위에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칭칭 두른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니 울컥 눈물부터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물기가 그렁그렁한 얼굴로 다가가 섰더니 머리에 붕대를 두른 하얀 얼굴이 돌아다보고는 미소 짓는다. 


 "왔구나."

 "어떻게 된 거야!"


 가냘픈 손을 끌어다 쥐고는 화내듯 소리쳤더니 다른 한 손이 올라와 내 눈가를 매만져 준다.


 "걱정하지 마.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대. 며칠 정도만 입원해 있으면 퇴원할 수 있다고 하셨어."


 놀랬잖아. 이 여자야! 잔뜩 험상궂은 얼굴로 못나게 찌푸린 채 여기저기 살피는데 말로는 괜찮다지만 여기저기 감고 있는 붕대며 상처의 흔적들이 보고 있기 가슴 아프다. 이 연약한 몸에 어디 힘이 있다고 또 강한 척이야. 자꾸 내 머리를 쓸어주며 괜찮다고 도리어 나를 위로해주는 모습이 못났다. 진짜. 이럴 때라도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칭얼대고 어리광이라도 부려보란 말이야.


 "언니가 아마 당분간은 집에 못 들어 갈 텐데 어쩌지? 저녁은 챙겨 먹었어?"

 "지금 그게 문제야?!"

 "반찬이랑은 냉장고에 남은 게 조금 있고, 밥은 해야 되는데 며칠만 해 먹을 수 있지? 전기밥솥에 물만 잘 맞춰주면 돼. 아니면 시켜서라도 꼭 먹어. 언니 가방에 지갑 있으니까 카드 빼다가 써."


 정말 끝까지 애취급이다. 지금 걱정 받아야 되는 사람이 누군데 이 언니는 또 내 걱정부터 하는 걸까..., 남의 마음은 하나도 몰라주고 그저 어떻게 하면 내 잘 될 지만 고민하는 우리 언니. 도대체 내가 뭐라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이러다 정말 화병이라도 생길 거 같다. 흥분감에 달아오른 열기를 주체하지 못 하고 나는 눈이 뒤집혀 져서는 그대로 쉴 새 없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떠들고 있는 초아언니의 입술 위로 입을 갖다 박아 버렸다. 귓속에서 웅얼거리던 초아언니의 목소리가 한순간 사라진다. 부산스럽던 응급실은 그 짧은 순간만큼은 나에게 완전한 정적으로 바뀌었다. 좋다. 이 고요함. 


 천천히 숙였던 고개를 들어 초아언니를 바라보자 놀라 크게 떠진 눈동자가 깜박이며 제대로 내 눈동자를 마주치지 못 하고 방황한다. 그 색소 옅은 눈 밑으로 말 하는 법을 잊은 듯 한 입술이 벙긋거리며 어쩐지 좀 전 보다 윤기가 도는 모습으로 살짝 벌어져 있는 것도 보았다. 교통사고는 지금 당한 거 같은데? 그 혼란스러워 하는 얼굴을 부여잡고는 나는 초아언니가 나를 똑바로 마주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리고는 또박또박 정성껏 말해 주었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걱정 좀 그만해. 난 이제 어른이란 말야. 어!른! 그러니까... 이 답답한 언니야. 빨리 나아서 내 곁에 돌아오기나 해."


 살랑 하고 언니의 눈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금빛의 머릿결을 쓸어 넘겨주며 나는 밝게 미소 지어 주었다. 그래. 어디 안 가고 기다릴 테니까. 빨리 좀 와라. 우리 언니야. 돌아오면 이제부터는 엄마랑 딸 말고 다른 것도 좀 해보자. 


 왠지 키득거리고 웃음이 터져 나와서는 나는 아직까지도 뻥져있는 언니를 품에 끌어안고 히히덕거리며 한참이나 엄숙한 응급실 안에서 분위기를 망치고 앉아 있었다. 


 괴로웠던 권민아의 23세 사춘기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마도 지독한 해피엔딩으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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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세 사춘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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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달에는 굳이 글을 쓸 마음이 없었는데 충동적으로 쓰게 되어 버렸네요. 엄마 초아와 반항아 맹아. 뭔가 쓰면서 슬퍼졌다고 합니다. 맹아는 행복해 진 거 같아서 다행이에얌. 맹초 흥해라. ㅠㅠㅠ 정말 덕질 제멋대로 한다고 느낍니다. 몰라. 내 덕질이야.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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