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31일 월요일

[주류주] 마법소녀 류수정~★




















 밤하늘의 달이 차다. 산길을 따라 내달리는 숨결에 하얀 서리가 맺혀 흩날렸다. 아직까지도 계속해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메스꺼운 느낌에 미간이 절로 찡그려진다. 이것은 분명 악귀다. 그것도 무척이나 고약한 원한을 품고 있는 녀석일 것이 틀림없다. 나무사이를 정신없이 헤치며 달리고 있던 사이 어느새 그 역겨운 기운이 흘러나오는 곳에 가까워졌는지 기운은 한층 더 강해져 있었다.


 아슬하니 산비탈을 타고 내려와 야트막한 언덕위에 다다르자 그제야 저만치 아래에서 그 정체의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달빛 아래에 드러난 그것은 아름다운 새하얀 털을 반짝이고 있는 맹수 같은 것이었다. 묘하게 여인처럼 고운 선을 하고 있는 그것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을 번뜩이며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 그 모습에 나는 적잖이 놀라고야 말았다. 요즘은 어지간하면 보긴 힘든 영수다. 사람의 원귀 같은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조금 혼란스러워 졌다. 뭔가 이상하다. 화가 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속이 뒤집힐 듯 한 메스꺼움은 이 녀석의 것은 아니다. 


 의문과 함께 조금 시선을 돌리던 나는 그대로 그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흉폭하게 모습을 취한 영수의 앞으로 누군가 여자애 하나가 마주 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어울리지 않는 프릴과 레이스 따위로 장식된 깜찍한 드레스가 시선을 잡아 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꼭 잡아든 기다란 막대는 누가 보아도 요술봉이다. 그래. 분명 어릴 적 만화에서나 보았던 마법소녀들의 그 요술봉 같은 그런 생김새다. 별 모양이나 날개 모양 같은 게 유아틱하게 장식된.... 


 주의를 기울이자 뒤 쪽의 수풀 너머 캠코더 하나를 들고는 그 모습을 찍고 있는 긴 흑발의 여학생 하나가 있다는 걸 발견하였다. 그제서야 나는 대충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이미주. 내가 또 꿈을 꾸고 있구나. 어릴 적 텔레비전 속 만화에서 이런 류의 내용을 한 마법소녀물을 봤던 기억이 난다. 이건 어릴 적 결핍된 추억에 대한 반항심일까? 이제와서 이 나이에 뭐 하러 이런 꿈을 꾸고 있는지 기가 찰 노름이다. 신내림을 받기 전에 어릴 적 종종 시달리곤 했던 귀신들린 꿈을 오랜만에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정리되자 이미 성인이 되어 버려 꿈도 희망도 메말라버린 스무 살의 머리가 꿈에서까지 힘들게 이 산속까지 뛰어와야 됐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실에 투덜대며 마저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마법소녀인 게 분명한 여자애의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울려 퍼졌다.


 "후긴이 명한다! 봉인!"


 막 발길을 떼려다가 얼결에 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마법소녀의 앞에 있던 령이 괴로워하며 소녀가 세워든 지팡이의 앞으로 밝은 빛으로 화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더 굉장한 광경이어서 나는 살짝 멍한 상태로 돌아가려던 것도 잊고 그 눈이 부실정도로 밝은 빛의 향연이 계속 되는 것을 눈가를 찌푸리며 지켜보았다. 어느새 어둠이 다시 찾아오고 일을 끝낸 마법소녀는 작게 안도의 한숨 같은 것을 내쉬더니 수풀 너머 있던 여자에게 다가가 가볍게 미소지어 주고는 그대로 함께 두런두런 거리며 밤중의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래. 누가 봐도 마법소녀임이 틀림없는 아이가 그런 소녀 옆에 항상 따라다닐 것 같은 캠코더를 든 여자와 함께 유유히 산길을 내려간다.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가 살짝 볼을 잡아 꼬집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아이씨. 아프잖아! 얼얼한 볼을 매만지며 나는 두 여자가 내려간 산길을 꽤나 오랫동안 멀거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잠깐... 꿈이 아니야?


 "뭐.. 뭐냐고 이건....!"






마법소녀 류수정~★
                              written by. 녀놘






 "미주야. 미주야..."


 뭐지? 아련히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뜬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새까만 암흑뿐. 눈을 뜨는 것과 감는 것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느끼고 나는 당황스레 주변을 더듬었다. 


 "미주야..."


 누구야! 도대체?! 짙은 안개 너머 속삭이듯 탁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우뚝 몸이 멈춰 섰다. 들어본, 낯익은 목소리다. 빛 한 점 없는 어둠속을 덧없이 두리번거리고 있자 저 너머로 무언가 소리가 들려온다. 천천히, 천천히. 바닥을 힘겹게 쓸어 넘기는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 쓰윽. 턱. 쓰윽. 턱.


 귓가를 막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몸부림치지만 어째서인지 몸이 옴짝달싹도 하질 않는다. 그저 완전히 질려 버린 숨소리만이 가파르게 허덕이고 있다. 이윽고 내 발목을 잡아채는 억센 손아귀에 나는 반사적으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관여하지 말아라!!!!!!!"


 핏줄이 얼키설키 모여든 눈을 부릅뜬 채 내 얼굴가를 향해 튀어오르는 피투성이의 얼굴에 나는 그대로 비명과 함께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헉!"


 튕기듯 허리를 일어나 세운 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꿈속에서부터 이어지고 있는 듯 한 거친 숨만을 토해내고 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식은땀이 가득한 얼굴에 마른세수를 문질렀다. 아침부터 이런 꿈이라니... 욕지기라도 한바탕 해주고 싶은 것을 억누르며 침상 옆에 있던 액자를 돌아보았다. 무언가의 예지몽이나 경고의 메세지를 받을 때는 알고 있는 친한 지인들이 꿈에서 좋지 못한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진 속에 자리한 젊은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을 물끄러미 쏘아보며 나는 인상을 구겼다. 도대체 무슨 소리가 하고 싶으셨던 걸까? 아버지는....


 찌뿌둥한 몸을 휘적거리며 간신히 내방을 빠져 나오자 평범한 가정주택의 거실이 맞이한다. 불과 이 년 전까지만 해도 이름난 무당의 집이었다고 하기에는 그 흔한 제사상 하나 조차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나름대로 유명한 무당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제일 먼저 내가 한 일은 집안에 무당 느낌 나는 물건이란 물건은 죄다 내다 버리거나 태워 버리는 것 이었다. 그만큼이나 완강히 무당일을 거부했던 내가, 배운 건 못 속인다고 지금은 무당일을 해서 간신히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이다. 지금 생각해도 이 상황에 입맛이 씁쓸할 따름이지만 연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달랑 홀로 남겨져 버린 고등학생 여자애 하나가 먹고 살려면 그 외에는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어려서부터 이 일 외에는 배운 것도 경험한 것도 극히 적다. 다만 그래도 아버지처럼 점이며 굿 해가며 사람들 속여다가 큰돈을 벌어먹는 일만은 하기 싫어서 물어물어 가며 뒷소문으로 의뢰가 들어오는 정말 제대로 된 강도 높은 퇴마업만을 일거리로 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기에 사람을 현혹할만한 겉치레 따위는 더 이상 집안에는 필요 없다. 


 습관적으로 전화기의 부재중 녹음 메세지 재생 버튼을 누르고는 현관 앞에 쌓여 있던 우편물 뭉치를 들고 와서 벽에 기대 대충 거들떠보기 시작했다. 전기세며 수도세며 각종 돈 내라는 서류들과 광고 전단지 외엔 딱히 특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 마침 전화기의 스피커에서도 녹음된 메세지가 없다는 안내음이 짧게 들려와 나는 들고 있던 우편물 뭉치를 대충 탁자 위에 던져놓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키며 소파위에 걸터앉았다. 뭐 보통은 이렇다. 퇴마업을 하고 있다지만 대부분의 나날은 이렇게 하릴없는 백수와도 같다. 남들 다 다니니까 별 의미 없이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는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중퇴해 버렸다. 스무 살이 된 올해에 이르러서도 내 삶은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친구도 없고, 취미도 없다. 그나마 한 번 의뢰가 들어오면 꽤 큰 금액의 보수를 받기에 아직까지 생활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그 외의 나날은 지루함에 찌들어 가는 중이었다. 


 오늘은 또 무엇을 할까? 뒹굴 거리며 소파위에 널브러져서는 애꿎은 머리카락만 손으로 돌돌 말아가며 장난을 치다가 밥이라도 일단은 챙겨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엉기적 일어나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한다. 나갈 준비를 한다는 건 귀찮은 일이지만 밥을 차려 먹어야 된다는 귀찮음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집 주변의 음식점이라도 찾아갈 생각에 쪼르르 집 밖을 나섰더니 아직 끝나지 않은 늦바지 여름의 햇살이 따갑게 반겼다. 어젯밤만 해도 입김이 새어 나올 만큼 추웠던 것 같은데 아무리 강한 영기로 인해 주변이 싸늘해졌었던 거라고는 하지만 이 온도의 차이는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여자애.... 진짜 마법소녀 같은 거였을까?"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니 절로 미간이 찡그려 진다. 도저히 현실 같지 않던 광경이었다. 퇴마업이라는 평범치 않은 일을 하는 자신이지만 마법소녀라는 건 어쩐지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정말 꿈이 아니었을까 바보처럼 잠깐 의심도 해보았다. 워낙에 실제 같은 귀신들린 꿈도 자주 꿔봤던 터라 꿈과 현실의 구분이 혼동스럽다. 


 "아니.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명색이 퇴마사다. 이런 것에 쉬이 마음이 현혹되어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건 안 될 말이다. 볼을 짝짝 소리 나게 치고는 척척 걸어 나가고 있자 길가 평상에 모여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중 한 분이 알아보시고 인사를 건네신다.


 "아가. 점심은 챙겨 먹었냐?"

 "네. 이제 먹으러 가는 길이예요."

 "그랴. 굶지 말고 다녀라."


 약간 성난 것 같은 높은 목소리의 무심한 말투에서 뚝뚝 정이 묻어 나오는 것이 느껴져 나는 활짝 웃으며 다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옛날부터 집안이 무당집이어서 그런지 이 마을에 오래 사신 분들은 한두 번씩은 우리 집에 도움을 받으신 적이 있다고들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그런 것도 옛말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저렇게 몇몇 어르신들은 나를 보고는 귀한집네 딸내미라고 신경을 써주신다.


 귀신들린 아이, 저주받은 아이 등등 온갖 별명을 얻으며 초, 중, 고를 전부 남들의 쉬쉬하는 눈길 속에서 억눌려 살아왔던 나에게는 저 사소한 말 한 마디가 항상 너무나 고마웠다. 그랬기에 나는 그 악몽 같은 과거들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텨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휘적휘적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때울 음식점에 들어가서는 대충 메뉴를 주문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에 가로 막힌 바깥은 청명한 하늘을 하고 있다.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결 느긋하게 풍경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슴까지 탁 트이게 만드는 밝게 빛나고 있는 여름날. 이 년 전 신을 받아들이고 나서는 귀신들도 내 주위에서 슬금슬금 다 피하는 눈치라 기분 나쁜 것들을 같이 볼 확률도 줄어들어 버렸다. 어렸을 때만해도 하굣길에 귀신을 보고 홀로 울면서 도망치거나 웅크려 앉아있는 일이 많았는데 그 덕에 기억을 되짚어 봐도 내 유년시절의 여름날이라는 건 제대로 된 추억이 없었다. 이제야 제대로 마음 편히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왠지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귀신까지도 날 피하네..."


 쓸데없는 생각을 피하려 고개를 내젓고는 어젯밤 일을 다시 떠올렸다. 인적이 드문 산 속에서 영수를 봉인하던 소녀. 복장이야 어찌되었던 사실 의문이 드는 것은 그녀의 행동이었다. 왜 그 아이는 영수를 봉인한 것 일까? 퇴마를 하다보면 자주 인과라는 것에 대해 느끼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선행이나 악행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지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퇴마라는 것도 본디 인과에 따라서 령들이 인세에 남아 더 해를 끼치지 않고 가야될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돌려보내는 일을 뜻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의 영수는 봉인을 당하거나 소멸당해야 하는 업을 쌓은 령은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그 지역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지냈을 터줏대감이다. 그 때 소녀의 일행과 마주했을 당시는 무척이나 노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시무시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런 악귀 같은 모습을 잠시 취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그 소녀 일행이 그 영수를 건드려 몰아세우지만 않았더라도 그런 식의 대응을 취했을 터가 없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하는 거야...?"


 어제의 그 마법소녀의 얼굴이 떠오른다. 둥그런 얼굴에 선하게 생긴 큰 눈을 반짝이고 있던 아이. 인과라는 것은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무시무시하여 계속되어 인과를 무시하다가는 어쩌면 존재의 소멸까지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아이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아무튼 시간은 많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바람에 잠시 상념에서 깨어나 젓가락을 집어 들고는 크게 한 입 음식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천천히 기다리기로 하자.







-


 다행인 것인지 불행인 것인지 예상은 들어맞았다. 며칠의 시간이 흐른 후, 인적이 드문 새벽녘이 되었을 때 나는 잠결에 또 심한 메스꺼움을 느끼고 깨어났다. 저번의 그 느낌과 꼭 들어맞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충 옷을 챙겨 입고는 어두운 밤길을 내달렸다.


 무당이라고는 하나 나는 일종의 점괘나 예지능력 보다는 강신술에 더 능통하다. 온 몸에 신력을 받아들이자마자 기운이 넘쳐흐르면서 발을 한 번 박차고 나갈 때마다 단숨에 사 오장 정도 되는 거리를 좁혀 나갔다. 주변의 풍경이 쏜살같이 뒤편으로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메스꺼운 기운의 근원을 찾아 달리고 있자 어느새 인지 으슥한 마을 어귀의 공터 같은 곳에 다다랐다. 


 무언가 공사를 벌이고 있었던 흔적들이 산재해 건축물의 자제 같은 것들이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있는 그곳에서 예의 그 마법소녀가 캠코더를 들고 있는 여자와 함께 한 령과 마주하고 있었다. 얼핏 봐서도 이번의 령도 일반적인 악귀와는 거리가 먼 이 부근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없는 령이었다. 흰 한복에 지팡이를 짚은 초로의 등이 굽은 노인의 모습을 한 령이다. 저번의 의상과는 다른 옷이지만 여자아이는 이번에도 마법소녀임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산뜻한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는 마법봉을 꺼내어 들고 있었다. 조금 이질적인 기운이지만 그 마법봉에서 강한 기운이 모여들고 있다.


 "후긴이 명한다! 봉....!"


 이런! 벌써 봉인이야? 지체할 틈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주먹을 움켜쥐어 신력을 잔뜩 밀어 넣고는 령과 마법소녀의 사이로 뛰어들어 지면에 냅다 후려쳐 버렸다. 단숨에 지면이 산산조각으로 파열되며 놀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피어오르는 흙먼지들을 대충 손으로 휘저어 내며 돌아보자 뜻밖의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마법소녀가 나를 바라다보았다.


 "누구... 세요?"


 여자아이의 질문에 살짝 난처해져서 뭐라 대답은 못 하고 쏘아 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앳되고 선한 인상이다. 이 불쾌하고 이질적인 메스꺼운 기운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찌되었든 일부러 못된 짓을 하고 다닐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수정아. 괜찮아?"


 캠코더를 들고 찍고 있던 아이가 황급히 달려와 마법소녀를 살피는 통에 시선을 돌렸다. 밤하늘을 그대로 녹여낸 듯 길게 찰랑이고 있는 머릿결. 새하얀 얼굴 위로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상냥해 보이는 이목구비.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아이가 다가오자 메스꺼움이 배로 더 늘어나는 기분이라 나도 모르게 작게 인상을 찡그리고야 말았다. 아무튼 이 마법소녀의 이름이 수정이로구나. 수정이라... 맑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너희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 거야?"


 어찌되었든 경고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따지듯 물었더니 수정이라고 불렸던 마법소녀가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다시금 나를 바라다본다. 


 "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째서 악귀도 아닌 령을 봉인하려고 하는 건지 묻고 있는 거야."

 "네?"


 내 말에 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진 마법소녀가 옆에 서있던 아이를 돌아보자 잠시 그 시선을 마주보고 있던 긴 흑발의 아이가 이윽고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어준다. 그것에 다시 기운이라도 얻은 냥 마법소녀는 나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힘주어 말했다.


 "저건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행하고 있는 악귀임이 틀림없어요. 그래서 봉인하려는 거예요. 그러는 당신은 누구시죠?"

 "무당이다. 왜!"


 내 대답에 마법소녀의 표정이 또 한순간 얼떨떨해진다. 뭐야. 황당하기로는 악귀를 잡고 다니는 마법소녀가 더 이상하거든?


 "아무튼 악귀라면 내가 더 잘 알아. 뭔가 잘못 알았나 본데. 저건 악행을 저지른 령이 아니라고."

 "하지만...."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는 모양인지 소녀의 표정이 어지럽다. 그 표정에 악의라고는 없어서 어쩐지 나까지 혼란스러워 진다. 설마 무당의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와 다르게 마법소녀의 입장에서는 저 령이 악귀일수도 있다거나 그런 것일까? 복잡한 마음에,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고 있는데 그 때 마법소녀의 곁에 있던 흑발의 여자아이가 소녀를 깨우듯 흔들어 내 뒤편을 가리키더니 소리쳤다.


 "수정아, 령이 도망치려해! 이러고 얘기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어서 봉인해!"


 아차 싶은 생각에 뒤돌아보니 내가 마법소녀 일행을 막아서고 있던 사이에 령은 어느새 도망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조용히 읊조리듯 중얼거리며 밤공기 사이로 웅웅거리는 령의 소리가 퍼져 나간다. 흔적을 완벽히 감춘 채 완전히 이 자리에서 사라질 생각이다. 그것을 본 마법소녀가 지체 없이 늘어뜨려 놓고 있던 마법봉을 고쳐 쥐고는 내 앞을 가로지르려 하였다. 머릿속에 불똥이 튄다. 에라.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확실하게 인과를 거스르는 행동이다. 무당이 되어서 그런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어딜 가려고!"


 양 주먹 가득 신력을 끌어 올려서 마법소녀의 진행 방향을 향해 휘둘렀다. 제대로 맞으면 콘크리트 벽도 무사하지 못 할 무시무시한 위력의 펀치다. 위협만 가할 생각으로 적당히 팔을 내뻗었는데 생각보다도 마법소녀는 싸움에는 익숙한 모양새인지 그 찰나의 순간에도 반사적으로 내 기척을 느끼고는 그대로 물 흐르듯 팔 사이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내 공격에서 빠져 나가 버렸다. 


 "뭐?!"

 "방해하지 마세요!"


 내 공격을 피해낸 마법소녀가 다급히 소리친다. 그래도 역시 내가 이렇게 버티고 있는 이상 쉬이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인지 내 앞을 마주하고는 마법봉을 들어 올려 나를 똑바로 겨누었다.


 "자꾸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인과를 거스르지 못 하게 하려는 거야!"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히던 마법소녀가 이내 마법봉을 휘두르며 내게 접근해 왔다. 마법소녀가 짧은 영창을 끝마치자 달려들던 소녀의 주위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밝은 구체 같은 것들이 생겨나더니 이내 쏜살같이 나를 향해 쏘아졌다. 정상적인 싸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하다. 나를 향해 쏘아져 오는 빛덩이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는 온 몸에 신력을 돋우었다.


 애초에 퇴마업을 하고는 있다지만 남들 하는 것처럼 부적이며 주문을 외워가며 령의 원한을 살살 달래듯 위로해주는 것에는 소질이 없었다. 말주변도 없는데다가 내 본심을 남에게 내비추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위로 대신 힘으로 강제 성불을 시키기로 마음먹어 왔다. 속으로 아무리 딱하게 여기고 있다 해도 일단 인과에 맞게 강력한 신력을 바탕으로 쥐어 패서 성불을 시키고 본다. 그런 돼먹지 않은 터프한 방법으로 지금껏 퇴마일을 해왔기 때문에 맷집이며 깡만은 자신할 수 있었다.


 온 몸에 옥빛으로 눈에 띌 만큼 신력이 모여 들자 그대로 양손을 들어 올려 막아 세우고는 마법소녀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거리가 좁혀지자 금세 빛덩이들이 다가와 온 몸을 강타한다. 신력을 몸에 두르고 있는 것이 효과는 있었는지 큰 타격은 없지만 한 대, 한 대 맞을 때마다 욱씬욱씬 거리고 골이 띵하니 울려오는 게 썩 좋지가 못 하다. 이를 악물고는 마법소녀에게 최대한 접근하기를 기다려 기회가 보이자마자 아이가 입고 있던 하얀 원피스의 멱살 부근을 잡아채고는 그대로 바닥에 빙글 내리 꽂아 버렸다.


 "어?"


 묵직한 충격음이 이어져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 공기를 낚아챈 듯 한 손의 허전함은 또 뭐지? 이상하다 알아채기도 전에 뒤통수에서 찌릿하니 위험신호가 느껴져 본능적으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엎드리기가 무섭게 밤공기를 가르며 작열하는 새하얀 빛이 이어진다. 돌아보니 침착한 표정의 마법소녀가 마법봉을 내 쏜 포즈 그대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난이 아니다. 역시 방금 전 것은 허상이었나? 생각보다도 더 까다로운 상대다. 아니, 애초에 마법소녀 같은 거랑 싸워야 된다는 게 너무하다.


 "너 생각보다 꽤 하는 구나?"

 "......놀란 건 저예요."


 하긴...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싸우는 무당이라는 것도 저 아이의 상식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겠다. 그럼 이렇게 된 거, 어차피 피차일반이라면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불리한 조건이긴 하지만 제대로 한 번만 접근해서 일격을 날릴 수 있다면 내 쪽에서도 승기는 있다.


 자세를 가다듬고 싸울 채비를 하자 마법소녀도 다시 봉을 고쳐 쥐고 나를 신중히 관찰하였다. 순진하고 어리게만 보이던 아이의 얼굴이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다. 어차피 단판 승부다. 나는 있는데로 다리에 신력을 돋우고 자세를 낮추었다가 그대로 소녀를 향해 내쏘아 졌다. 단숨에 사, 오장도 좁힐 수 있는 신법이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들자 소녀는 당황한 와중에도 침착하게 거리를 벌리며 나를 향해 마법의 영창을 외웠다.


 곧이어 사방에서 그물망을 짜는 것처럼 촘촘히 허공을 수놓으며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내게 빛이 쏘아져 들어왔다. 가까스로 몸을 비틀며 그것들의 사이를 뚫고 지나치다가 한 순간 크게 회전하며 땅을 한 번 짚고는 그대로 발길질을 해 소녀가 서 있는 방향으로 흙무더기를 날려 보냈다.


 예상외의 행동이었는지 소녀가 황급히 팔을 들어 올려 모래를 막아 세웠다. 매우 짧은 동작이었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 기회를 포착한 나는 소녀의 시야가 가리어진 그 잠깐의 사이에 소녀를 향해 그대로 내쏘아지며 주먹 가득 신력을 끌어 모았다. 그리고 그대로 짧게 허리의 힘을 이용하여 주먹을 내질렀다. 가볍지만 막강한 힘이 실린 주먹이라 제대로만 맞는다면 무사할리 없다. 하지만 소녀의 몸은 이번에도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주먹을 통과시키며 빛으로 화해 사라져 버렸다. 또 다시 허상이다. 허나 여기까지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다.


 뒤편에서 나타나는 인기척을 느끼며 주먹을 휘둘렀던 반대편 손을 그 쪽을 향해 펼쳤다. 조금 전 땅을 짚을 때 한 손 가득 움켜쥐고 있던 모래가 그대로 소녀를 향해 날아가 그 아이를 덮어 씌웠다. 어차피 방금 전은 나도 페이크였다. 짧은 비명성을 듣고 이번에는 제대로 진상에 적중 당했음을 알아챈 나는 소녀를 향해 달려 들었다. 눈에 모래가 들어가 당황한 것인지 소녀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두 번이나 똑같은 수법으로 순진히 대응한 소녀의 탓이다. 진흙탕 싸움이라면 내가 더 우위에 있다.


 하지만 마법소녀에게는 아직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내 주먹이 막 내리꽂히려던 찰나에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긴의 진정한 모습이여. 이곳에 드러나라!"


 순간 엄청난 기운과 함께 광풍이 불어나와 그대로 나를 날려 버렸다. 한참을 밀려나와 간신히 버티며 바라보자 눈을 뜨기 힘든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소녀의 가녀린 등 뒤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검은 새의 날개가 돋아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날갯짓을 했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소녀는 밤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이제부터가 진짜에요."


 얼굴을 굳히며 나를 응시하는 마법소녀의 말에 절로 마른침이 꿀꺽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불길한 보름달을 배경으로 밤하늘에 떠 있는 소녀의 모습. 거대한 검은 날개를 펼쳐든 그 모습에 지끈 머리가 아프다. 정도가 있지 이런 거라면 싸울 방도가 없다. 어쩌면 이쪽에서도 숨겨둔 마지막 패를 내보여야만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수정아. 됐어. 이제 그만 돌아가자."


 그 때 마법소녀와 나의 팽팽했던 긴장감을 뚫고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캠코더를 들고 있던 그 흑발의 여자아이다. 여자아이의 말에 마법소녀는 주저하는 눈길로 나와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작게 중얼 거렸다.


 "하지만 아직...."

 "아니야. 됐어. 어차피 령은 벌써 사라져 버렸어. 이제 이곳에 볼일은 없어."


 그러고 보니 나와 마법소녀가 싸우던 새에 어느새 령은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마법소녀가 천천히 땅 위로 내려오더니 날개를 거두어들인다. 날개와 함께 커졌던 메스꺼움과 긴장감도 일순 미비해져서 나는 한시름 놓은 것처럼 한숨을 내쉬고는 마법소녀의 일행을 바라보았다. 


 "야, 너희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또 다시 막으러 와주겠어."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이쪽도 참고 있지 않겠어요."


 마법소녀를 이끌고 골목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흑발의 여자아이가 나를 돌아보고는 싸늘히 내뱉는다. 그 뒤를 안절부절하며 수정이라던 마법소녀 아이가 뒤따라가고 있었다. 저 캠코더를 든 여자아이.... 평범한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풍기는 메스꺼운 기운도 그러하고 마법소녀와의 관계를 봐서도 평범한 아이는 아닌 듯 하다. 


 어느새 홀로 남겨져 버린 외딴 공터에서 나는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이 많아짐을 느꼈다. 저 아이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이 일에 과연 내가 간섭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한동안 고민하던 나는 세차게 고개를 내젓고는 옷가지들에 묻어 있던 흙먼지들을 적당히 툭툭 털어대며 그대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겼다. 고민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고민보다는 일단 몸으로 부딪히는 것을 먼저 해보는 게 좋다는 것을 나는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오늘따라 밤길을 걷는 기분이 쓸쓸해서 괜스레 울적해지고 있었다.





-


 "끄흐응...."


 절로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채로 뒤척이며 간밤에 무리하게 신력을 사용한 대가를 온 몸으로 실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도저히 손가락도 하나 까딱하지 못 할 만큼 컨디션이 엉망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하루 종일 이렇게 쥐죽은 듯 있어야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꼼지락 거리며 머리 위로 덮어져 있던 이불을 더 끌어올리고 있는데 뜻밖에도 현관 너머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지? 의아한 생각에 덮어썼던 이불을 걷어내고는 멀뚱한 눈으로 방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집에 일 년 열두 달을 통 털어도 누군가 찾아오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가끔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 찾아오는 배달부 정도가 전부랄까? 그나저나 하필 왜 이런 타이밍이야... 왠지 욕지거리가 나올 것만 같아서 그냥 무시하고 없는 척을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풍겨오는 메스꺼운 기운에 나는 퍼뜩 아픈 것도 잊고 일어서고 말았다. 그 아이! 마법소녀에게서 느껴지던 그 기운이다.


 어기적거리며 기듯이 나가 문을 여니 예상대로 현관 앞에는 그 마법소녀 아이가 말쑥한 교복차림을 하고는 단정히 서 있었다. 어느새 해가 중천을 지났는지 아이의 뒤로 보이는 풍경이 여름의 햇살로 반짝이고 있다. 


 "여긴 어떻게 찾아 왔어?"

 "안녕하세요. 불쑥 찾아 와서 죄송해요. 전... 수정이라고 해요. 류수정."


 차분하게 내려앉은 목소리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빠르기로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여 주었다.


 "이미주야. 알다시피 무당이고.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왔다고?"

 "아...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실례가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서 어젯밤의 기를 쫓아서 찾아 왔어요. 지연 언니만큼은 아니어도 저도 어느 정도는 기운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지연언니? 항상 같이 다니는 그 캠코더를 든 긴 흑발의 여자아이를 말하는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수정이란 아이가 그런 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하니 불안한 손끝을 매만지고 있다. 이 아이에게도 쉬운 발걸음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근데 너 복장을 보니 학생 아니야? 지금 이런 시간에 돌아다녀도 괜찮은 건 아니지?"

 "그건.... 하교 후에는 지연언니와 함께 가야 되니까 혼자 오려면 학과 시간 중에 나올 수 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제가 빠진다고 딱히 학교에서 누군가 신경 쓸 리도 없고...."


 뒤에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중얼거려서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아무튼 이 아이가 나에게 뭔가 궁금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마침 묻고 싶은 것이라면 나도 잔뜩 있었다. 딱히 거절할 말도 생각나지 않아서 아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살짝 비켜서 주었다. 들어와도 좋다는 무언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챈 아이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라며 정중히 말하고 조심히 들어온 아이가 거실로 쭈뼛 거리고 들어서는 것을 본 후에야 현관문을 닫고는 돌아섰다. 밤사이 완전히 헝클어진 머릿결을 괜스레 신경질적으로 빗어 넘기며 우리 집의 거실에 이질적으로 생겨난 가냘프게 생긴 등을 보고는 물었다.


 "뭐라도 마실래?"

 "네? 아... 고맙습니다."

 "별 건 없으니까 기대하지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뭐라도 있을까 싶어 주방 쪽으로 가 보았는데 깨닫고 보니 정말로 내어줄만한 것이 없었다. 애초에 차나 커피 따위를 마실 만큼 집에서 우아함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었고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경우도 거의 없기에 냉장고도 텅텅 비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얼마 전 사둔 음료수나 잔에 가득 따라다가 거실로 나서기로 하였다. 다가가며 바라보자 소파 한 켠에 멀뚱히 앉은 채 아이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집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왜? 무당이라는데 집이 무당집 같지 않아서 실망이야?"

 "네? 아니에요. 그런 거..." 


 아이의 옆자리에 앉으며 농을 던지자 아이가 배시시 웃는다. 참 꾸밈없고 화사한 웃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온 몸의 욱신거리고 어질거렸다던 것도 있고 나는 소파에 편안히 등을 기대며 수정이라고 하는 아이를 향해 무심결에 미소를 지어 주었다.


 "사실 무당이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겨우 2년 정도?"

 "2년이요?"

 "그래. 듣고 보면 시시한 이야기지.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딱 2년 정도가 지났거든. 신을 받아들인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야."

 ".......저, 그런 얘기를 꺼내시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뭐가? 아니야 그런 거. 정말 별 거 아닌 일이었어. 우리 집은 대대로 오랜 시간동안 한 신을 내리물림하며 모시고 있는 가문이거든. 그래서 과거에는 꽤 중요한 자리의 뒤에서 암약하기도 하며 활약하기도 했다던 모양이야. 문제는 우리 아버지대부터였지."


 어째서 내가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다. 보통이라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남에게 내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던 나였다. 어째서 이렇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체조차도 알 수 없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는 것 일까...?


 "시대가 변했어. 요즘은 사명감 같은 것이 밥 먹여주는 시대는 지났거든. 아버지는 그런 것을 일찍부터 알아차리셨는지도 몰라. 그래서 아버지는 신내림을 받고는 그 길로 크게 무당집을 열어서 고액의 돈을 받고 점괘를 쳐주는 일을 시작하셨어. 이래봬도 우리 가문의 신은 꽤나 높은 신격이라 점괘는 용했고 소문은 금세 퍼졌나갔지. 나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고위급 인사들까지 암암리에 예약을 하면서까지 줄을 서서 아버지의 점괘를 받아갈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어."


 그 때는 내 나이도 이제 막 여섯 살의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시절이었다. 풍족한 집안 살림과 매일 웃음이 끊이지 않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외동딸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나는 그렇게나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신내림이라는 건 받기 전에는 죽도록 못 살게 괴롭히면서 막상 받고 나서는 언제 어느 순간 갑자기 확 하고 사라질지 모르는 허망한 것이거든. 아버지의 무당일이 나날이 커져만 가던 때에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에게서 신이 떠나 버리는 일이 발생했어. 아버지는 손바닥 안에 올려 두고 환히 보고 있던 것만 같던 앞날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어 버렸지. 그건 마치 일반인이 갑자기 장님이 되어 버리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아버지는 당연히 충격에 빠지셨고 믿을 수 없게도 알고 보니 그건 모두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어. 대를 물려 내려오는 신내림이 어린 내게 때 이르게 찾아와 버렸던 거야. 아버지는 신이 떠나 버리자 더 이상 점괘를 칠 수 없었지만 그동안 누려왔던 사치스런 생활을 포기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그 때부터 삼류 무당들처럼 연극을 하기 시작하셨지. 물론 그 전처럼 거물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일을 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돈 많고 머리는 빈 부잣집 사모님 정도를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 각 나이대별로 털어놓는 고민이라는 게 사실 다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거든. 아버지는 적당히 때려 맞추고 겁을 주면서 그럭저럭 돈벌이를 이어 가셨지. 그것도 적은 돈은 아니었을 거야. 하지만 아버지는 나에 대한 미움을 털어버릴 수가 없으셨어. 아버지에게서 신을 빼앗아 간 건 비록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더라도 명백히 내 탓이었으니까."


 그 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받느라 바빴던 나는 이후로 성장기 내내 지독한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그 맘 즈음 어머니도 나와 아버지를 놓아두고 어디론가 도망쳐 버리셔서 그 모든 미움은 더 배가 되어 나에게로 쏘아졌다. 아버지의 세상에 대한 모든 분노와 설움은 모두 어린 나에게로 응집되어 향하였고 가뜩이나 신병에 앓아 누워 온갖 헛것들과 열병에 앓던 어린 나는 언제나 나를 노려보던 아버지의 그 원망하던 눈빛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언제나 모든 잘못은 다 나 때문이었어. 내가 저주를 받은 아이어서, 귀신 보는 아이라서 그렇다며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기면 언제나 아이들이 먼저 나부터 찾아와 손가락질을 했지. 그럼 나는 그게 정말인 줄 알고 또 아무 소리도 못 하고 펑펑 서럽게 울기만 했어. 어린 시절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이게 다 너 때문이라며 원망 하시던 말이 귀에서 떠나지를 않고 있었거든. 하지만 나도 점차 커가면서 반항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그리고 아버지와 세상에 대해서도 차츰 적개심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라. 그리고 그런 마음이 생기고 나니까 항상 돈만 밝히고 세속에 찌들어 있는 아버지가 혐오스러워서 나는 그런 무당 같은 것은 되기 싫다고 그 나이가 되도록 악착같이 신내림을 거부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느 날 그 일이 벌어진 거야."


 오랜만에 말을 많이 해서인지 입 안이 까끌하다. 가져왔던 음료를 한 모금 삼키고는 나는 씁쓸한 뒷맛에 인상을 구겼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진짜 바보 같게도 퇴마일 하나가 들어왔는데, 평소처럼 그냥 대충 가서 연기나 좀 하고 부적이나 몇 개 태우고 오면 되는 줄 알고 가셨던 일이 사실은 정말 혹독한 귀신이 씌인 곳이었던 거야. 대번에 원한을 산 아버지는 그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 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었어. 진짜 사람 인생이 허망하기도 하지... 한평생을 떵떵거리고 살 것만 고심하시던 분이 마지막을 그렇게 돌아가 버리셨어. 나는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멍하니 홀로 집안에 앉아 있다가 전화로 그 얘기를 전해 듣게 되었는데 웬일로 그럴리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과 달리 그대로 하염없이 울음이 터져 나오더라. 그래서 몇 시간이고 주저앉아서 내 방에서 울고 있다가 결심을 하고는 신내림을 받아 버린 거야. 신내림이라는 게 얼핏 듣기로는 뭔가 절차도 복잡하고 엄청 까다로운 거라고 그랬는데 무슨 일인지 그냥 이제 거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쑤욱 뭐가 내려앉는 것처럼 몸 안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오더니 한순간 평온해 지더라고. 무슨 조화 속인가 싶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길로 물어 물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그 건물로 찾아가 원혼을 박살내 버렸어. 아주 깔끔하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성불시켜 줬지. 참 우습지 않아? 아버지의 모습이 싫어서 그 오랜 시간을 귀신에 시달리면서도 신내림을 안 받겠다고 버텨 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한 마디에 바로 신내림을 받다니..."


 자조 섞인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아이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피하지 않고 내 눈길을 받아 들여 준다.


 "그래. 사실은 나는 줄곧 아버지에게 다시 사랑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 신이라는 것도 내려 받은 지금에서야 알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저주받은 나쁜 신도 아니더라. 본래 천계의 삼도천에 매 달마다 등불의 불을 지피는 일을 맡은 선녀인데 어느 날 부모님을 만나러 왔다며 찾아 온 한 남자를 딱하게 여겨 육신이 있는 채로 천계에 출입하도록 도운 죄를 후에 발각 당해서 그 벌로 인세로 쫓겨나 천년이라는 시간동안 인간의 몸에 대를 물려가며 갇혀 있도록 벌을 받은 령이래. 그래서 속죄의 의미로 선행을 쌓기를 바라고 있어. 아버지에게서 신이 그렇게나 서둘러 나에게 옮겨오려 한 건 탐욕을 위해 자신의 신력이 사용되는 것을 막고자 했기 때문이었어. 결코 아버지와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야. 내가 평생을 시달려오며 괴로워했던 신병도 결코 이 령의 의도는 아니었어. 나는 어린 시절에 괜한 원망을 이 신에게 하고 있었던 거야. 이제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신을 받아들였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럼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셨을지도 모르지...."


 주절거림이 너무 길었다. 나는 어느새 굳어져 있던 얼굴을 풀고는 미소 지으며 아이를 돌아보았다.


 "그럼 네 이야기도 좀 들어 볼까? 넌 어떻게 마법소녀가 된 거야?"


 내 질문에 방금까지 내 이야기에 푹 빠져있던 아이의 얼굴이 퍼뜩 붉어지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시선을 피한다.


 "마법소녀라니.... 그냥 전 이상한 책 하나를 발견한 것 뿐이에요."

 "책?"

 "저와 지연언니는 같은 독서 동아리에요. 독서 동아리 회원은 주마다 돌아가며 선후배가 짝을 지어서 독서실을 맡아 봐야 하는데 저와 지연언니는 우연히 방과 후에 독서실의 구석에서 한 책을 발견했어요. 겉에 거대한 까마귀 두 마리가 날개를 접고 서로 교차하듯 포개어져 있는 책이에요."

 "까마귀? 그러고 보니 어제 그 날개...!"

 "네. 까마귀의 날개에요. 책을 발견하고 펼쳐든 순간 책에서 눈부신 광채가 피어오르고 신비한 문양들이 사방에 수놓아지는 가 싶더니 저와 지연언니는 그 때부터 책에 기록되어 있던 지식과 힘을 가지고 악령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저희는 각각 후긴과 무닌이라고 해요."


 후긴과 무닌. 거대한 까마귀 두 마리라... 아무튼 말만 들어도 나와는 다르게 참으로 소녀틱하고 만화적인 일이다. 부끄러워하고 있지만 누가 보아도 마법소녀의 전형적인 스토리 아닌가... 저 아이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저렇게 얼굴만 붉히고 있는 거겠지.


 "근데 너, 네가 봉인하고 다니는 령들이 악귀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는 있어?"


 사실 묻고 싶은 진짜 질문이라면 이것이었다. 내 말에 아이도 나를 진지한 눈으로 마주 본다.


 "실은 저도 그것을 묻고 싶어 찾아 왔어요. 정말로 그것은 악령이 아니었나요?"


 되물어 오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에는 거짓이 없다. 그 흔들림 없이 맑은 눈동자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그건 내가 알고 있는 한 절대 악귀가 아니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령들이야."

 "그래요...."


 내 대답에 한동안 아이는 긴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 아이의 인상이 굳어졌다 풀어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굳힌 것 처럼 원래의 정돈된 인상을 되찾는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전 역시 지연언니의 말을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어요."

 "내가 말하는 지연언니라는 게 그 캠코더를 들고 있던 여자애 말하는 것 맞지? 그 아이의 말을 믿겠다니 무슨 소리야?"

 "좀 전에 제가 후긴과 무닌이라고 얘기한 것 들으셨죠? 두 마리의 까마귀는 각각 후긴과 무닌이라고 해서 각자에게 맡은 임무가 있어요. 무닌은 그 예리한 감각으로 악령을 탐지해내고 후긴은 무닌이 찾아낸 악령을 퇴치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죠. 어느 한 쪽만 있어서는 의미를 갖지 못 해요."

 "그러니까... 그 지연이라는 아이가 내게 계속 그 령들을 악령이라고 일러준다는 거구나?"

 "제 무닌은 지연 언니에요. 그러니까 전 지연언니의 말을 믿겠어요."


 내 관점에서 본다면야 수상한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지만 아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나도 여기서 더 딱히 할 말은 없다. 무엇보다도 잠깐 마주했을 뿐이지만 이 아이의 곧은 마음가짐은 쉽게 흔들릴만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야말로 마법소녀로써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아이가 아닐까?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나도 더 이상은 해줄 말이 없어. 다만 이것만은 명심해. 네가 하는 일은 명백히 인과를 거스르는 일이야. 애초에 성불해야 할 인과가 없는 령들을 강제로 그렇게 봉인하다가는 그 인과의 결과에 따라 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리야. 그래도 괜찮겠어?"

 "네. 상관없어요."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 이 아이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모양이다. 나는 질렸다는 듯이 혀를 차며 이맛살을 찌푸리고는 남아있던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럼 맘대로 해. 대신 나도 내 신념이 있으니 앞으로도 네가 하는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막으려 들거야. 각오해 둬."


 내가 퉁명스레 던진 말에 아이는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화사한 웃음을 한 가득 얼굴에 담아내었다.


 "그럼 앞으로도 서로 최선을 다하도록 해요."


 한순간 그 웃음에 취해 정신이 멍해 있었다. 고개를 내저어 정신을 추스르고는 나는 웃고 있는 소녀를 향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흥하니 콧방귀를 뀌어 주고는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그런 내 태도에 잔잔히 미소를 보낸 아이는 감사했다는 인사를 하고는 집을 떠나려 했다. 


 일어서는 아이의 등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나는 발작스레 그 손을 붙들어 잡았다. 놀란 얼굴로 소녀가 돌아보자 나는 뻘줌한 손길로 볼가를 긁적이며 시선을 마주치지 못 하고 방황하다가 허겁지겁 말을 내뱉었다.


 "야, 그냥가지 말고... 저기... 무당집에 왔으니 점이라도 한 번 보고 가."

 ".....네?"

 "사양하지 마. 이래봬도 꽤 신급이 높은 령이라고 했잖아. 잘 맞는다고. 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잡아끄는 데로 순순히 다시 쇼파에 앉는 아이를 보고는 나는 속으로 고개를 쥐어박다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크게 심호흡을 들이 쉬었다.


 "놀라지 마라. 이제부터 신을 빙의할 테니까."


 애초에 점괘나 굿 같은 거에 지식이 없는 나는 할 줄 아는 거라곤 강령술을 통한 물리적인 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괘를 볼 수 있는 한 가지 꼼수가 있다면 신을 있는 그대로 잠시 내 몸에 빌려 쓰게 만들어서 신에게 직접 점괘를 묻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거 내가 선호할 리가 없다. 잠시 내 몸을 빼앗겨 영혼의 심층세계에 의식을 잃고 갇히는 것도 기분 나쁘고 신이 내 몸을 빌려 쓰는 동안은 무슨 일을 했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저 빙의 후 남은 은은한 잔류 사념을 통해서 지레짐작 할 뿐이다. 이제껏 이것을 해 본 것도 딱 두 번 뿐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것까지 내가 하려는 걸까? 이유야 명확하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이 아이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의식을 집중하자 곧이어 신이 내 뜻에 응하여 잠들어 있던 마음의 깊은 곳에서 부유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그 강대한 존재감에 떠밀려 내 의식은 반대로 저 아래로 침전되어 간다. 그에 따라 나의 모습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신이 내 몸을 차지하였을 때의 나는 신격 높은 선녀의 령답게 평소의 기운과는 완전히 다른 고상하고 차분한 기풍을 풍기는 귀부인 같은 자태가 된다고 하였다.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에는 은은한 금안이 촉촉이 빛나고 있다. 아마도 선녀라면 내 앞의 이 아이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말을 반드시 해줄 것 이다. 의식은 침전의 속도를 더욱더 높여 이내 완전히 어둠만이 찾아 왔다.


 정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는 아이가 어쩐지 상기된 얼굴로 가만히 볼을 끌어안고 멍하니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선녀가 뭐라고 그래?"

 "아니에요. 아무것도...."


 어째서인지 아이는 내게 선녀가 해준 말을 전해줄 의향은 없어 보였다. 뭐 상관 없겠지 싶어 일어서자 아이도 따라 일어나 이내 현관까지 자연스레 마중 나가게 되었다. 문을 열어주자 그대로 천천히 문밖을 걸어 나간 아이가 갑자기 빙글 돌아 나를 마주 본다. 그 얼굴을 마주보고 서 있자 아이는 수줍은 듯 내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고마웠어요. 오늘..."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아이는 그대로 여름의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를 향해 그대로 멀어져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더 이상 시야에 소녀가 보이지 않게 되고서야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


 이후로 그 아이와는 몇 번씩이고 마주쳐 령을 두고는 치열하게 맞부딪히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령을 지켜내기도 하고 때로는 소녀가 령을 봉인하기도 하면서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계속해 나간다. 다만 마법소녀라는 까다로운 능력 탓인지 내 방어율은 열 번 중 네 번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밀리는 중이었다. 


 일전의 그 대화들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빈번한 만남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법소녀와는 어느새 이름을 터놓고 부르는 사이까지 갔다. 서로의 신념에 맞게 대립은 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도 같았다. 물론 여전히 마법소녀와 함께 따라 다니는 지연이라는 아이만큼은 쉽게 가까이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 마치 고고히 빛나는 흑요석 같은 여자아이. 오직 수정이에게만 보여주는 그 상냥하고 나긋나긋한 태도를 잊을 수가 없다.


 까마귀 후긴과 무닌. 과연 지연이라는 아이는 도대체 무슨 속셈인 것 일까? 수정이는 지연이라는 아이를 믿는다고 항상 얘기하고 있었지만 처음 느낌 그대로 나는 아직까지도 그 지연이라는 아이에 대하여 의심을 풀지 못 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늦은 점심시간에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일어나서는 또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생각에 쇼파 위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문득 수정이와 지연이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참에 한 번 수정이가 다닌다던 학교에라도 찾아가 볼까 싶은 마음이 든다. 거길 가면 뭐라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는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였다.


 학교까지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학교까지 찾아오긴 했는데 수업시간인지 한산한 교정에 들어서고 보니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난감해져 버렸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독서 동아리라고 했는데...."


 수정이나 지연이를 직접 만나러 가는 건 피하고 싶어서 독서실이 있을 만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 둘이 생활하는 공간을 거닐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감상에 젖어 있다가 생각보다 쉽게 독서실을 찾아내고는 조심히 들어가 보았다. 수업중인지라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에는 꽤 알차게 꾸려진 책장들과 책들로 빽빽하니 채워져 있었다. 풍겨 나오는 기운과 종이 냄새에 괜스레 정숙해져서는 살금거리고 돌아다니며 기웃거리고 있자 한 쪽 벽면에 있는 게시판 같은 곳에서 사진 같은 것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올려다보자 독서 동아리 부원들의 활동사진인 듯 활짝 웃고 있는 학생들의 사진들이 곳곳에 있다. 유심히 들여다보자 어렵지 않게 사진 한 구석에서 수정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반가운 마음에 게시판에 한 발작 더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자 아마 게시판 맨 위에서 부터가 사진의 순서인 듯 첫 사진의 모서리에 이번 년도 초의 날짜가 하얀 펜으로 적혀 있었다. 신입 부원들을 뽑고 찍은 기념사진인 듯 아직 중학생 티를 벗지 못 한 어색한 모습의 수정이가 사진 한 쪽에서 수줍게 웃고 있다. 


 조금 더 고개를 돌려 다음 사진을 바라보자 아직 추운 날씨인 듯 동복을 차려 입은 수정이가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대청소라도 하고 있었던 듯 청소도구들과 쌓아 놓은 책들에 둘러싸인 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후로도 시선을 옮기며 사진들을 살필 때마다 부원들과 함께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수정이의 모습들이 한동안 계속 된다. 학교생활에 정말로 즐거워하고 있는 듯 한 모습이라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고는 한 장 한 장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사진을 기점으로 시선이 잠시 멈춰서고 말았다.


 "이건...."


 미간을 좁히며 유심히 바라본다. 분명 그 전까지의 사진과 다를 바 없는 독서 동아리 부원들의 사진이다. 어느새 날이 더워졌는지 사진 속에서의 아이들은 하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수정이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그 전까지의 사진에서는 부원들과 함께 어울려 무리의 속에 끼어들어 있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유독 이 사진에서만 미묘한 거리를 벌리고 수정이만이 부원들과 홀로 떨어져 찍혀 있다. 혹시나 싶었지만 그 이후의 사진들에서도 계속해 수정이는 얼핏 봐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거리를 두고 무리에서 소외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진의 분위기가 달라진 시점의 두 사진 사이를 번갈아 보며 고민에 빠져 들었다. 내가 아는 여태껏 만난 수정이는 결코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거나 할 만한 아이는 아니었다. 배려심 넘치고 상냥하고 꾸밈없는 아이다. 학기 초의 사진만 봐도 수정이는 부원들과 완전히 동화되어 잘 지내고 있던 것이 보였다. 


 걱정되는 마음에 처음부터 끝까지 유심히 사진을 몇 번이고 훑어보던 나는 한순간 무언가의 사실을 깨닫고는 우뚝 멈춰 서고야 말았다.


 "잠깐..... 지연이는?"


 수정이에 너무 신경 쓰느라 설마 못 보고 지나쳤을까 싶어 다시 한 번 꼼꼼히 사진들을 관찰해 보았지만 여전히 지연이의 모습은 어느 사진에서도 보이지를 않는다. 내가 알기로 지연이는 삼학년이다. 학과 공부로 동아리 활동이 뜸해진 걸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엔 다른 부원들이 전부 모여 찍은 듯 한 단체 사진 등에서도 지연이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수정이의 말을 듣기로는 지연이는 거의 수정이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독서실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부원들이 모두 모여 찍었던 학기초의 사진 한 장을 뜯어내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이건 수정이에게 직접 확인해 봐야될만한 문제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에 돌아서던 찰나에 어느새인지 내 뒤에 서 있던 인영과 정면으로 마주쳐 버리고야 말았다.


 "웬일로 여기서 다 보네요. 무당 언니?"

 "너....."


 새까맣게 내려앉은 윤기 나는 머릿결. 새하얀 얼굴 위로 아기자기하니 박혀 있는 이목구비. 완벽한 반달을 그리며 상냥하게 짓고 있는 미소로 지연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대로 등 뒤로 식은땀이 하나 주르륵 타고 흘러 내렸다. 도대체 어느 틈에.... 이래봬도 싸움이라면 도가 틀 정도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수준에서 치고 박으며 지내온 탓에 상대방의 기척을 알아채는 것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이 아이는....


 "그 주머니에 넣으신 건 뭔가요? 실례에요. 그런 건. 학교의 비품을 함부로 가져가시면 안 되죠."

 "정체가 뭐야...?"

 "무슨 소리시죠?"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수정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제와서는 더 숨길 것도 없다. 악을 쓰며 노려보자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지연이가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마주 본다.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한 웃음이 그 얼굴에 씌워져 있었다. 


 "곤란하게 됐어요..."

 ".........."

 "다음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했죠?"


 순간 지연의 손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것들이 흩어져 나왔다. 놀라 대응할 틈도 없이 그 가루들이 내 위로 덮어져 내린다. 그리고 곧이어 머리가 짓이겨질 정도로 아찔한 두통에 나는 그대로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으윽.... 악!!"


 누군가 내 두개골을 갈라 뇌를 끄집어내고는 바닥에 패대기쳐 마구 짓밟고 있기라도 하는 것 같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와중에 머릿속에서 하나 둘 씩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역겨운 체험이다. 손가락도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기억이 지워지는 것 만큼은 너무도 선명하게 전해진다. 어느새 달달 떨며 침이 새어 나오고 있던 입을 악물고는 있는데로 신력을 끌어 올리며 기함성을 내질렀다. 누가 네 멋대로 하게 둘 줄 알아!!


 무리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끄집어낸 신력이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옥빛으로 온 몸에 불타올랐다가 그대로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을 뒤집어쓰고 있던 반짝이던 가루들까지 산산이 흩어진다. 휘몰아친 신력의 광풍 탓으로 독서실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부들부들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나 서자 조금 놀란 듯 한 표정의 지연이가 나를 흥미롭게 내려다보며 중얼 거렸다.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무당 언니의 신이라는 게 꽤나 강력한 모양이네요. 단세포처럼 치고 박는 거나 할 줄 아는 줄 알았더니..."


 의외라는 듯 바라보는 지연이를 피해 비틀비틀 거리며 독서실 안을 도망쳐 나왔다.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걷고 달렸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건물 밖을 빠져나와 있다. 중간 중간 학생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정면에 그늘막 아래로 수돗가가 있어서 쓰러지듯 달려가 물을 틀고는 그대로 그 안에 머리를 처박아 버렸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가운 물이 세차게 머리를 때리고 있자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온다. 김지연. 이 자식.... 나도 모르게 이가 부드득 갈린다. 다음번에 만나면 나도 사정 봐주지 않겠다. 애꿎은 수돗가에 주먹을 쾅하니 내리치는데 문득 떨어지는 물소리를 뚫고 어디선가 욕설 같은 것들이 들려왔다. 


 물을 잠그고는 고개를 들어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자 여러 명이 모여 있는 듯 소리가 꽤 시끄럽다. 게다가 뭔가 간간이 맞는 소리도 섞여 나오고 있어서 무심결에 그리로 발걸음이 향하고 말았다. 다가가보자 수돗가 근처 움푹 파여 들어간 구석진 자리 안으로 일단의 학생들이 모여서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를 열심히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뭐야... 학교 폭력인가? 딱히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돌아서려 했다.


 "잠깐...."


 무심결에 스친 맞고 있던 학생의 실루엣이 뭔가 낯이 익다. 설마 싶어 다시 바라보자 어지러운 발길질 사이로 꽤 큰 키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되는 발길질에도 작은 신음 소리 한 번 내뱉지 않고 앙다문 입술로 묵묵히 맞고만 있는 아이. 류수정... 쟤가 왜 저기 있는 거야!


 "그만들 못 해!"


 생각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리고야 말았다. 단숨에 달려 들어가 수정이를 밟고 있던 무리들 앞에 나타나자 그것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보면 네까짓 것들이 뭘 할 건데?! 의아함과 반항심이 뒤섞인 십여 개가 넘는 시선들을 마주 둘러보다가 그대로 신령의 기운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보였다. 


 내 몸에서 타고 흘러나오는 강대한 령의 기운이 그대로 압박해 들어가자 단박에 효과가 나타난다. 영기가 없는 일반인인 녀석들은 흔히들 표현하는 일종의 기세라는 것에 눌려서 완전히 육식동물 앞의 먹잇감이라도 된 양 그대로 자리에 굳어 버린 채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개중에 수호신이 붙어 있던 녀석들도 신급의 차원이 다른 내 령의 기운에 지레 겁을 먹고는 벌벌 떨고 있었다.


 "당장 꺼지지 못 해!"


 한껏 공포감에 찌드는 것을 지켜보다가 기운을 방출하며 일갈하자 녀석들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죽어라 도망치기 시작한다. 썰물 빠지듯 내 옆으로 지나치는 학생들 사이로 걸어들어가자 곧 더러운 흙바닥 위로 누워 있는 수정이의 앞에 멈춰 서게 되었다. 아이들의 발길질이 멈춘지 한참 후인데도 어쩐지 수정이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야, 류수정."


 죽은 건 아닌가 불러봤더니 그제야 슬쩍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키만 큰 가냘픈 몸이 느릿느릿하게 일어나 앉는다.


 "안녕하세요."

 "지랄..."


 온 몸이며 얼굴에 흙칠을 한 꼴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화사하리 만치 상냥히 웃어주는 얼굴에 씹어 뱉든 욕지거리가 불쑥 튀어 나왔다. 


 "뭐냐 진짜? 너 정도면 저런 애들 한 주먹 거리도 안 되잖아?"

 "괜찮아요."

 "뭐가 괜찮다는 거야!"

 "조금 맞는다거나 괴롭힘 당하는 거 정도는 상관없어요. 마법 소녀가 되고 나서는 사실 맞아도 아프지도 않고...."


 비칠거리며 일어선 아이가 탁탁 옷에 묻은 흙먼지들을 몇 번 털더니 그대로 나를 지나쳐 수돗가로 걸어간다. 뭐야, 진짜 장난 하자는 거야? 그딴 식으로 괜찮은 게 세상에 어딨다고 그래!


 "야! 너 제대로 말해! 이런 게 괜찮다는 게 말이 돼?"

 "정말로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틀어낸 수정이가 가만히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미소 지으며 말한다. 저 고집불통이 진짜.... 평소 수정이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저 따위로 힘없는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게 무슨 억하심정인지 모르겠다.


 "어이, 거기! 너 1학년이냐? 수업 시작한다. 어서 교실에 들어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입술만 물어뜯고 있는데, 불현듯 수돗가를 지나치면서 한 선생님인 듯 한 사람이 수정이를 보고는 호통을 치고 지나쳤다. 이런! 어찌되었든 들켜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여 몸을 피하고는 잠시 후 눈치를 보며 일어나 서자 어쩐 일인지 수정이가 멍한 태도로 선생님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왜?"

 "네? 아니에요. 아무 것도..."

 "뭔데 그래?"

 "그냥, 저 선생님... 우리 담임선생님이거든요."


 뭐? 순간 황당함에 그 선생님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깐, 그게 말이 돼? 지금은 벌써 여름이 다 지나가려 하는 8월의 막바지 이다. 벌써 한 학년의 절반이 넘게 지나간 시점에 담임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자기 반 학생 얼굴도 못 알아보고 지나쳤다는 건가? 도대체 이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 그럼 이제 들어가 볼게요."


 뭐라 말해주려 하는데 수정이가 먼저 차분한 목소리로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잡을 새도 없이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 가버렸다. 금세도 사라져 버린 수정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고 있다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지 한참이 지나서야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항상 밝게만 보였던 아이었는데 이런 읽을 겪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 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챙기는 게 익숙한 아이이다. 그런 아이가 어째서....


 결국 주머니 속에서는 꺼내보지도 못 한 독서부 단체사진을 손끝으로 매만져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리기로 하였다. 그래... 이건 조금 후에 이야기 해도 괜찮을 거다. 조금만 더 수정이가 괜찮아 졌을 때. 그때... 그때 얘기해 주도록 하자.






-


 "미주야. 미주야...."


 또 이 꿈이다. 지난번처럼 여전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나는 주저앉아 있었다. 무엇이 다가올지 알기에 침착하려 했는데도 꿈속에서의 나는 여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다급한 손놀림이 주위의 어둠을 더듬는다. 그 때 예의 그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쓰윽. 턱. 쓰윽. 턱.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도 없다. 소리가 다가오는 방향에 시선이 붙들린 채로 나는 그것이 내 앞으로 덮쳐올 순간을 기다렸다. 


 "관여하지 말아라!!!"


 피빛 선 눈이 나를 짓누르는 것을 마주하며 나는 기절하듯 그대로 어둠속으로 빠져들었다.


 "헉!"


 눈을 뜨자 어두워진 방 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잠들었던 걸까? 아직까지도 지끈거리고 있는 머리를 부여잡고는 낮은 한숨을 내쉰다. 오늘 낮에 지연이에게 제대로 당한 뒤로 집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아마 한참을 깨어나지 못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입안이 까끌하니 목이 마르다.


 비틀거리고 일어나 부엌에 걸어가서는 컵 안 가득 물을 따라 붓고 단숨에 들이켰다. 꿀꺽 거리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기운에 잠시 갈증을 잊고 있는데 불현듯 그대로 욱하고 토해내고야 말았다.


 "뭐야... 이건?"


 참을 수 없이 밀고 올라오는 메스꺼운 기운에 불안한 눈동자를 창밖으로 향하였다. 저기 멀리서... 기운이 느껴진다. 이 먼 거리에서도 생생히 느껴질 정도로 강한 힘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 아이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다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그대로 집을 뛰쳐나왔다. 조급해하고 있는 탓인지 제대로 컨트롤이 되고 있지 않는 신력을 마구잡이로 끌어올리며 밤거리를 질주한다. 어째서 이렇게 자꾸만 가슴이 쿵쾅되는지 모르겠다. 제발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지 않기를...


 도착한 곳은 한 산사 였다. 푸르스름한 달빛이 인적 없는 산사 위를 가득 차올라 있다. 수정이와 지연이는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마주하고 있는 건 나도 익히 알고 있던 령이었다. 무서운 탈을 뒤집어쓰고 여섯 개의 팔을 위압적으로 벌리고 서 있는 은색 털의 원숭이를 닮은 령의 모습. 확실히, 이 지역의 수호신이다. 


 "류수정! 그만 둬!!"


 달려가며 소리치자 나를 발견한 수정이의 표정이 한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수호신의 앞으로 마법봉을 내밀고는 걸어간다. 저 고집불통! 그건 지금까지 네가 상대한 평범한 령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그만두라고! 그런 걸 봉인했다간 감내하기 힘든 인과의 결과가...!"

 "무당 언니는 좀 조용해 주셔야 겠어요."


 달려들던 내 앞으로 어느새 지연이가 웃는 낯으로 막아섰다. 마치 귀신이라도 된 것처럼 거리감을 완전히 무시한 움직임이다.


 "비켜!!"


 놀라워 할 틈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는 그대로 신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주먹을 내질렀다. 터질 듯이 모여든 신력들이 주변의 공기를 사납게 휘어 갈기며 소용돌이친다. 


 "하여간 단세포라니까..."


 경멸을 담은 시선으로 지연이가 나를 내려다본다. 당장이라도 내 주먹이 그 면상을 찢어발기려던 찰나에 갑자기 주변으로 부터 금빛으로 빛나는 쇠사슬들이 솟구쳐 나왔다. 돌진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터라 피하지도 못 하고 그대로 온 몸이 그대로 쇠사슬에 휩싸여 허공에 붙들린다. 점점 더 조여 오는 쇠사슬들을 신경질 적으로 흔들어 보았다.


 "이거 놔!"

 "꽥꽥 꽥꽥. 진짜 시끄러워 죽겠네요."


 신력을 방출해 끊어내 보려 했지만 여의치가 않다. 주술이나 부적 같은 거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이 아이들이 사용하는 마법들은 파훼법을 알기가 힘들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잠시 그러고 있으세요."

 "어쩌려는 거야...!"


 지금껏 지연이가 마법을 쓰는 것은 보지 못 하였지만 무닌이라고 해서 마법을 못 쓸 리가 없다. 게다가 풍기는 분위기로만 봐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강력할지도 모르겠다. 발버둥 치다가 수정이 쪽을 바라보니 한참 마법봉을 휘두르며 수정이는 수호신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명색이 지역의 수호신인만큼 역시나 만만치 않은 상대였는지 수정이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밤하늘을 온통 수놓으며 나타난 마법진들에서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빛의 향연이 수호신을 향해 쉴 새 없이 쏘아진다. 


 "저 정도 되는 령을 인과를 거스르며 봉인하면 무사하지 못 해! 알면서 수정이에게 저런 일을 시키는 거야?"

 "아이 참... 그냥 잠잠코 계시라고요."


 지연이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수호신과 수정이가 싸우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쏘아지던 포격이 만들어낸 연기를 뚫고서 수호신이 뛰쳐나와 그대로 수정이를 향해 접근한다. 위협적으로 돋아난 여섯 개의 우람한 팔들이 수정이를 움켜잡기 위해서 어지러이 움직였다. 가까스로 그것들의 사이를 피해가며 물러나던 수정이가 이내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손아귀를 마주보며 수정이는 소리쳤다.


 "후긴의 진정한 모습이여. 이곳에 드러나라!"


 주문의 영창과 동시에 눈부신 빛과 광풍이 휘몰아치며 수정이의 등에서 후긴의 날개가 돋아 나왔다. 그 힘의 방출에 수호신이 잠시 주춤하며 물러난 틈을 타서 수정이는 눈 깜짝할 새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수호신을 향해 내뻗은 수정이의 지팡이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의 파동이 모여 들어왔다.


 어리둥절한 수호신이 밤하늘의 수정이를 향해 고개를 올려다 본 순간 하늘을 뒤덮으며 새까만 깃털 모양의 기운이 맹렬히 쏘아져 내려왔다. 마치 한순간 암흑이 찾아 온 것처럼 온통 시야를 가린 불길한 검은 기운들이 소름끼치는 파공성을 만들어내며 박히는 소리가 계속해 들려온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적막해진 사원의 마당에 불길한 검은 깃털들이 흔들리며 빼곡히 박혀들어 있었다. 그 가운데 수호신이 온 몸에 구멍이 꿰뚫린 채로 미약한 기운을 뿜어내며 쓰러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것을 묵묵히 내려다보던 수정이가 하늘에서 수호신을 향해 지팡이를 내뻗었다.


 "여기 후긴의 이름으로 명한다. 봉...."

 "그만둬!!!"


 막 영창을 끝마치려던 수정이가 내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멈칫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내 절박한 얼굴을 바라보며 불안히 흔들리고 있는 눈동자. 바보야. 이제 제발 그만 두란 말이야.... 막 뭐라 더 말하려던 찰나에 지연이가 그런 나와 수정이 사이로 끼어들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정아. 뭐 하는 거야? 어서 하던 일을 끝내야지."

 "지연언니...."

 "잊었어? 너의 무닌은 나야. 어서 령을 봉인해."

 ".........알았어."


 마지막으로 나를 한 번 더 쳐다 본 수정이가 이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쓰러진 수호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정이가 내뻗은 지팡이에서 빛이 빠르게 모여든다.


 "후긴이 명한다! 봉인!"


 수정이의 주문과 함께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며 수호신이 빛으로 화하여 지팡이의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눈을 뜨기 힘든 빛무리들이 지나가고 수정이는 어느새 날개를 접으며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는 자괴감이 나를 잠식한다.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나를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들 속에서 발버둥치며 지연이를 노려보는데 불현듯 수정이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방금까지 아기자기한 모양을 하고 있던 수정이의 지팡이가 꿈틀거리며 거미줄처럼 뻗어져 나와 무방비 상태인 수정이를 휘감으며 뒤덮고 있었다.


 "수정아!!"


 내 외침이 닿기도 전에 순식간에 수정이를 뒤덮어 버린 지팡이는 그대로 빛을 내뿜더니 사라져 버렸다. 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눈앞에 서 있던 수정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혼란에 빠진 눈동자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저 끔찍하리만치 예쁜 미소를 흘리고 있는 얼굴이 빤히 나를 마주 본다.


 "너.... 대체 수정이를 어떻게 한 거야!!!"

 "이제 모든 게 다 잘 되었어요."

 "뭐?"


 내 얼이 빠진 듯 한 목소리에 지연이가 실소를 흘린다. 그리고는 빙글 몸을 돌려 밤하늘에 가득 차 있는 푸른 달을 올려다보고는 마치 꿈에 젖은 듯 무언가에 홀린 듯 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이제 수정이는 저와 영원히 행복해질 거예요."

 "뭐라고 하는 거야... 똑바로 말해!"


 지연이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분노에 일렁이는 내 눈을 마주 들여다본다. 천천히 음밀하게... 매혹적인 웃음을 입가에 띠고는 하얀 얼굴이 미소 짓는다.


 "잠시 옛날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옛날이야기?"

 "마계에서의 이야기에요. 옛날 마계에는 까마귀의 자매들이라는 마녀 집단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교육받던 어린 마녀들 중에는 유난히 힘없고 유약한 한 아이가 있었지요. 또래의 마녀들로부터 언제나 조롱받고 심하게 괴롭힘 당하던 아이는 어느 날 극심한 마법의 부상을 당하고 우연히 인간계로 흘러들어가 버렸답니다. 상처 입은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 괴로이 몸부림치던 그 아이에게 다가온 것이 바로 어린 나이의 수정이에요."

 "너... 그 이야기....?"


 자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럼 지연이가 마녀라는 거야? 까마귀의 자매들이라니... 수정이가 펼치던 까마귀의 날개와 후긴과 무닌이라는 까마귀들의 명칭이 떠오른다. 마법소녀라는 것도 처음부터 모든 게 다 이 아이의 계획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린 시절에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인간세계에서조차 불길한 새라며 다들 꺼려하던 까마귀를 끝까지 숨기고 보호해주었던 것이 수정이었어요. 어른들이 심하게 꾸중을 늘어놓으실 때도, 동네 장난꾸러기들이 몰려와 험악하게 장난을 치려할 때도 언제나 수정이가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받아주었지요. 천성이 그런 아이에요. 어려운 처지에 처한 것이 있으면 쉽사리 지나치지 못 하죠. 어린 수정이가 정성을 다해 보살펴 준 탓인지 까마귀는 결국 예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반드시 다시 이 아이 앞에 나타날 것을 다짐하며 마녀들이 기다리는 마계로 돌아갔죠.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어요. 돌아간 까마귀는 언젠가 다시 소녀의 앞에 나타날 것을 되뇌이며 무섭도록 마법에 열중했고 어느새 성장하였을 때는 또래에서 적수가 없을 만큼 강한 마녀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까마귀가 너라는 소리지?"

 "맞아요. 의외로 이해력이 있네요. 무당 언니."

 "그런데 어째서 네가 수정이에게 저런 일을 시킨 거야? 응?!"


 은혜 갚은 까마귀가 되지는 못 할 망정 인과를 반복해 거스르게 한 것은 도대체 무슨 억하심정 인 걸까? 얼핏 일견하기에도 지연이가 내비치는 수정이에 대한 마음은 결코 가볍지가 않았다. 그렇게 아끼는 존재이면서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거야?!


 "사람들은 참 이상하죠...? 제가 처음 인간계로 돌아와 목격한 건 반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괴롭힘 당하는 수정이의 모습이었어요. 전 충격에 빠졌죠. 수정이는 여전히 착하고 순수했어요. 그런 것이 인간계에서는 따돌림 당하는 이유가 되는 걸까 잠시 의문에 빠졌죠. 알고 보니 수정이는 반에서 왕따 당하고 있던 어떤 아이를 지켜주려고 했다가 도리어 표적이 되었던 거였어요. 학교의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수정이가 새로운 놀잇감이 된 것을 받아들였죠. 심지어 수정이가 지켜주려 했던 아이조차도 수정이를 모른 체 했어요. 그런데도 수정이는 그것을 묵묵히 감내하기로 했죠. 자기는 강하니까 차라리 자신이 당하는 편이 다른 아이들이 왕따 당하며 괴롭힘 당하는 것보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어차피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별 일이 아닌 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텨내고 있었어요."

 "그게.... 사실이야?"


 누구도 학교에서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수정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을 짓밟던 또래들의 무수한 발길질이 끝난 이후에도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나 웃어넘기던 아이의 얼굴... 그게 전부 그래서 그런 거였어?


 "뭔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했죠. 어째서 선행의 결과로 수정이는 그런 괴로움을 감내해야 되는 처지에 내몰렸을까요? 분명 제가 인간이라는 생물에 대해 지금껏 잘못 알아왔던 걸지도 몰라요. 전 날개를 펼치고 까마귀가 되어 인간들의 삶을 잠시 지켜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이 세계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거예요. 이곳에서는 누군가를 도와줘봤자 돌아오는 것은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 뿐이에요. 오히려 가해자로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더군요. 기이하죠. 인과가 맞지 않는 세계에요."

 "그건....."


 반박의 말을 찾아보려 했지만 선뜻 말을 내뱉을 수 가 없었다. 확실히 그것은 일정부분 사실임이 틀림없다. 마녀인 지연이에게도 혼란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현재는 기이한 사회 구조가 펼쳐지고 있다.


 "전 마법으로 수정이가 소속되어 있던 독서부의 고3 선배라는 허상의 인물을 만들어 냈어요.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최면을 걸고서 그 인물을 연기하며 지냈죠. 최소한 저와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수정이가 안식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왕따가 된 이후로 언제나 무리의 시선 때문에 우물쭈물 거리며 끼어들지 못 하고 조금 동떨어져 있던 수정이었기 때문에 그럴 때면 언제나 제가 이끌고 곁에 머물게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저는 결심하게 되었지요. 이런 세계니까 수정이가 불행한 거라고. 그렇다면 수정이만을 위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주자고 말이에요."

 "뭐...? 세계를 창조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무리 강대한 마녀라 해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리 없다. 세계를 창조하다니 제정신이야?


 "물론 모든 개개인의 령들이 모여 있는 이런 거대한 세계를 다시 창조한다는 건 저 같은 일개 마녀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단 한 명의 세계를 재창조 시키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죠."


 지연이의 말에 순간 뇌리에 무언가 번뜩 스치고 지나친다. 잠깐... 설마?


 "너... 수정이를 이 세계로부터 떼어놓을 속셈이었던 거냐?"

 "어라? 놀랍네요. 무당언니가 그런 것 까지 생각할 수 있을 줄이야....."


 부정 안 해? 진심인 거야?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이건 심각한 일이 된다. 뭔가 목구멍을 타고 어느새 뜨거운 것이 흘러 넘쳐 온다.


 "너!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수정이는 세계로부터 소멸되어 버린 거라고!"

 "맞아요."


 지연이가 기쁜 듯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웃음을 터트린다.


 "사실 인간들은 모두 하나의 세계에서 생활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모두 각자의 독립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다만 현실이라는 거대한 규칙 속에서 제약을 당한 채 어우러져 있는 것 뿐이죠. 그런데 그 현실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죠? 그 우주적 규칙은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해서 개개인이 어떻게 해볼 만 한 것이 아니에요. 바꾸려면 자신의 세계를 바꾸어야죠. 현실이라는 규칙에서 자신의 세계를 도려내어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규칙에 제약받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를 재창조하는 거죠."

 "너...."

 "무당언니 말이 맞아요. 나는 수정이에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후긴의 지팡이를 쥐어 주고는 인과를 거스르는 일을 하도록 수없이 부추겼어요. 그것들의 대가가 쌓여 결국 수정이가 이 세계에서 소멸해 버리도록.... 하지만 소멸이란 것은 이 현실에서 잊혀졌다는 것 뿐이에요. 개인으로써의 소멸의 의미는 오롯이 자신만의 세계로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뜻하죠. 이제 수정이는 영원히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이상향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그딴 걸로 정말 수정이가 행복할 것 같아? 영원히 혼자가 되는 거란 말이야!"


 오늘 오후에 수정이를 알아보지 못 하던 담임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이해된다. 수정이는 이미 차츰차츰 이 세계에서 잊혀지고 있었던 거다. 내 울음 섞인 외침에 지연이는 조용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고 있던 얼굴이 이내 고개를 가로 젓는다.


 "아니요. 수정이는 저와 함께 할 거예요."

 "뭐?"

 "전 까마귀죠. 어느 세계든 마음껏 날아갈 수 있는 영혼의 인도자에요. 수정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의 인물들 속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 하고 영원히 반복되는 행복한 꿈을 계속해 꿀 거예요. 그 옆에는 제가 언제까지고 함께 있을 테고요."


 미쳤다. 단단히 미쳐 버린 게 틀림없었다. 절망적인 마음에 마치 물에 젖은 솜이라도 된 마냥 몸이 무거웠다. 이대로 수정이는 정말로 소멸되어 버리는 걸까? 그런 게... 그런 게 정말로 행복이라 일컬을 수 있는 거야?


 "너는 틀렸어."

 "네?"

 "네가 수정이의 옆에서 해줘야 됐던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렇게 도망만 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아니었단 말이야! 가까스로 버텨가며 힘들어하던 그 아이에게 너는 잘못 되지 않았다고, 너의 행동은 옳은 거였다고 위로해 주었어야지! 그 필사적이던 아이에게 너는 누구보다 용기 있고 따뜻한 사람이니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갖지 말라고 곁에서 힘이 되어 주어야 했어. 그런 식으로 현실을 버리고 도망치도록 한다면 그 아이가 잘못 되었다고 말해주는 것 밖에 되지 않잖아!"


 기함성과 함께 온 몸의 신력을 돋우며 심령의 밑바닥을 향해 의식을 집중하였다. 곧 내 부름에 응하여 강대한 기운이 솟구쳐 올라 내 몸을 감싸 안는다. 뿜어져 나온 옥빛의 기운은 단숨에 나를 옭아매고 있던 쇠사슬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렸다.


 "이건....?"


 바람에 잔잔히 흩날리며 길게 내려앉은 흑발. 고혹적이고 정갈한 자태. 촉촉하게 젖은 금안의 눈을 빛내며 삼도천의 선녀로 화한 내가 지연을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지연이도 주춤 뒤로 물러서며 긴장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애초에 싸울 생각은 없었다. 내가 선녀를 불러 낸 건 다른 생각이 있어서다. 아직까지 의식의 심층부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이를 악물고 의식의 표면 속에 버티고 있던 나는 선녀를 향해 외쳤다.


 "저를 수정이의 세계로 보내 주세요!"

 "무슨 소리니. 아이야?"


 온기를 가득담은 자상한 목소리가 의문을 갖고는 내게 묻는다. 나는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결심을 굳히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수정이를 데리고 오겠어요. 저를 그 아이의 세계로 보내주세요."


 선녀는 삼도천을 관리하던 신이다. 세계와 세계를 잇는 강을 관리하고 출입을 감시한다. 선녀의 능력이라면 까마귀인 지연이가 그랬듯이 나를 수정이의 세계로 보내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안 될 소리다. 그건 너를 예측하기 힘든 위험에 빠트릴 것이야. 그래도 괜찮다는 소리니?"

 "네. 상관없어요."


 내 말에 선녀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뗀다.


 "내 결심이 그러하다면 그래 좋다. 내 너를 인도하마. 너는 곧 육신에서 분리되어 살아있는 생령으로 그 아이의 세계에 가게 될 것이다. 다만 나도 너를 잃을 수는 없는 법이니 내가 불렀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여라."

 "알겠어요."


 생령이 되어 육신을 빠져나가게 되면 자칫 잘못하다가는 그대로 영영 돌아오지 못 하고 떠도는 원귀가 되었다가 소멸해 버릴 위험이 크다. 그제야 불현듯 꿈에서 아버지가 관여하지 말라고 소리치던 것이 기억났다. 내가 위험해지는 것을 막고자 하셨던 걸까? 하지만 이제와 그런 것은 어쩔 수 없다. 선녀는 한 때 인간을 딱하게 여겨 청을 들어 주었다가 천년의 세월을 인세로 쫓겨나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선녀는 또 한 번 나를 도울 생각이었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수정이를 되찾아 와야만 한다.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여라."


 선녀의 말에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자 이내 온 몸이 둥실 떠오르는 가 싶더니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은 듯 한 허무함과 함께 그대로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눈을 떠 보자 상상키 힘든 빛의 무리들 속을 헤엄치며 내 몸이 어딘가로 이끌려 가고 있다. 그 때 누군가의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찮은 무당 주제에....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


 돌아보자 거대한 날개를 펼친 까마귀가 빛무리를 꿰뚫고 날카로운 부리를 빛내며 내게 날아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나를 덮치는 악몽 같은 그림자의 모습이었다. 


 "헉!"


 벌떡 일어나 아직까지 헐떡대고 있던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망할... 요새 도대체 왜 꿈이란 꿈은 다 이 모양이지?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자 내 소리에 돌아본 반 아이들이 곧 웃음을 터트렸다. 


 한가로운 오후의 햇살이 자리한 교실. 내려다보자 교복을 차려 입은 내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잠들었던 걸까? 교탁을 바라보니 칠판 가득 필기가 한 가득인 채로 윤리 선생님이 나를 돌아보고는 못 마땅한 듯 고개를 가로 젓고 있었다. 벌써 5교시인건가...? 어지간히도 오래 잠들었다는 생각에 혀를 차며 돌아보자 웃고 있는 반 아이들 사이로 나란히 책상을 두고 앉은 수정이와 지연이의 모습도 보였다. 나와 살짝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미소 짓는 수정이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음을 지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에 살짝 볼을 꼬집어보자 아니나 다를까 아프다. 뭐야. 지금까지 다 꿈이었나....?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가 가볍게 웃어 버렸다. 방금까지 뭔가 지독한 꿈을 꾸었던 거 같은데 머릿속에 잡히는 것이 없다. 뭐 그런 거야 상관없겠지.


 쉬는 시간이 되자 내 옆으로 친구 몇몇이 다가와 무슨 꿈을 꾼 거냐고 놀리듯 물어 보았다. 그 말에 웃음으로 넘기며 슬쩍 고개를 돌려보자 저만치서 반 아이들에 둘러 싸인 채로 즐겁게 웃고 있는 수정이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로 행복한 모습이다. 어째서인지 나도 모르게 흐뭇한 기분에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윽....!"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에 곁에 있던 친구들이 당황해 괜찮냐고 걱정한다. 뭐야... 이 두통은? 머릿속에서 아리도록 지끈거리는 기분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데 자꾸만 희미한 환청 같은 것이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뭐라고? 도대체 뭐라고 그러는 거야?!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에 괴로워하며 비틀거리고 있자 한순간 또렷하게 뇌리에 낯익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시간이 없어. 빨리 돌아오렴!


 누구...? 잠시의 의문이 이윽고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상기시켜 준다.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수정이의 주위로 모여들어 있던 반 아이들을 밀쳐 내고는 수정이의 앞에 섰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란 수정이가 나를 올려다본다.


 "미주야....?"


 의문 섞인 수정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대로 와락 수정이를 일으켜 감싸 안아 주었다. 당황해 동그랗게 뜬 눈만 깜박이고 있는 아이를 더욱 품안에 세게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류수정. 네가 잘못 된 게 아냐. 넌 누구보다 상냥하고 따뜻한 아이야. 그 마음에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도망치지마. 넌 충분히 가치 있는 아이야...."


 나의 말에 어찌할 줄을 몰라 하고 있던 수정이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 든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듯이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그 말... 언젠가 들었던 거 같아. 눈동자가 금빛으로 밝게 빛나던 여인이 말해 주었어..."


 갈피를 잡지 못 한 수정이의 눈동자가 이내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에 지연이가 수정이의 손을 강하게 잡아 채 손에 쥔다.


 "가지마. 넌 여기서 행복하잖아. 수정아."


 감싸 안은 나와 자신의 손을 잡아 쥔 지연이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수정이는 방황하던 눈을 감아내고는 이내 조용히 미소 지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사이로 한 줄기 눈물방울이 주르륵 수정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 기억났어. 미안해..... 그리고, 모두 고마워."


 맺혀 있던 수정이의 눈물이 바닥 위로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눈부신 빛이 우리 모두를 휩싸아 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시 달빛으로 가득찬 산사의 한 구석이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둘러보자 저만치 쓰러져 있는 수정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달려가 안아들자 수정이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다본다. 다행이다. 무사히 돌아왔구나.


 "어서 와. 잘 돌아왔어."


 빙긋이 미소지어 주자 나를 따라 수정이의 입가에도 미소가 띄어진다. 누군가 우리의 등 뒤로 조용히 내려앉아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며 돌아보았다. 푸르스름한 달빛을 배경삼아 김지연이 걸어오고 있다. 온 몸에 검은 까마귀의 깃털이 돋아난 채로 흉측스럽게 돋아난 날개를 늘어트린 지연이 우리의 앞에 멈춰서 내 품에 안겨 있던 수정이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


 어떠한 말도 없이 그저 수정이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지연이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날개를 펼치고는 그대로 밤하늘로 날아올라 멀어져 갔다. 그 모습에 꿈틀대며 필사적으로 내 품을 뿌리치고 뛰쳐나간 수정이가 지연이가 사라진 밤하늘의 달을 향해 달려 나갔다.


 "기다려요! 기다려! 지연언니!"


 한참이나 숨이 차도록 달려 나간 수정이가 결국 차가운 산사의 돌바닥 위로 쓰러져서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가냘픈 등을 따라 흐느낌이 흘러나온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수정이의 울음소리만이 퍼져 나가는 적막한 산사 위로 유난히 쓸쓸한 푸른 달이 무심히 걸려 있었다.....






-


 오랜 시간 현실의 규칙 속에 구성되어 있던 개인의 세계는 쉽게 분리되기 힘들다.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인력에 이끌려 다시 현실로 돌아온 수정이만 봐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만한 인과를 필요로 하는 것이였다. 인과를 거슬렀던 대가로 소멸된 만큼 그만한 것을 내어놓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돌아오기 위한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모습을 하지 못 하고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수정이를 조용히 응시하던 지연이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 무식한 마녀가 끝까지 자기고집을 피운 게 틀림없다.


 수정이는 그 일 이후로 조금은 더 자신을 아낄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수정이를 기다리기 위해 학교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 이윽고 몇 몇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있는 수정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곧 나를 발견한 수정이가 밝은 얼굴로 다가온다.


 "학교생활은 괜찮아?"

 "........"


 은근슬쩍 묻자 그저 조용히 웃는다. 뭐... 자기의 일이니 어떻게든 알아서 해결해 나가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지금은 그저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나의 일일 것이다. 찌뿌둥한 몸을 괜스레 쭈욱 잡아 빼며 기지개를 피면서 나는 터덜대며 길을 걸어 나갔다. 그 뒤를 수정이도 말없이 뒤따르고 있다.


 "그럼 오늘도 한 번 찾으러 다녀 볼까?"


 뒤돌아보며 묻자 동그란 얼굴이 이내 화사히 웃으며 힘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떠나간 까마귀 찾기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었다.


 이제 막바지로 치달아가는 여름의 햇살사이로 우리의 발걸음이 바삐 이어져 간다.


 .


 .


 .


 .......마법소녀 류수정~★ (fin)






 와아~ 8월의 글을 끝냈습니다. 이번 달은 정말 못 쓰겠구나 생각하고 있던 것이 마지막 벼락치기로 어떻게든 다 쓰고야 말았어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으로 그동안의 신념도 져버리고 올홈에서 뛰쳐나왔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마법소녀물도 써보고 액션물도 써봐야 되지 않겠냐?! 라는 생각에 시작한 글입니다만.... (수정이 미자일 때 마지막 마법소녀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했고....) 요즘 고민 중이기도 한 과연 위험에 처한 사람을 요즘 같은 시대에 구해주어야만 하는 걸까 라는 개인적인 도덕적 고민도 묻어 있는 글입니다.

 세계관은 어느 정도 '오늘부터 란파루루~' 와 이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개인이라는 세계와 현실이라는 규칙. 근본적인 세계관의 틀을 공유하는 만큼 비슷한 내용의 갈등도 있습니다만 란파루루 세계관에서는 제약받고 있는 개인의 세계에서 현실의 규칙을 깨고 다른 사람의 세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이번엔 좀 더 확고하게 자신의 세계를 규정하는, 이른바 현실이라는 규칙에서 완전히 자신의 세계를 이탈시켜 독립된 세계로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뭐, 별로 이해하실 필요는 없는 내용입니다.

 마법소녀물은 웬만하면 후속편을 꼭 써야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번에도 지연이의 뒷이야기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되지 않나 고민에 빠지고 있습니다. 그럼 너무 이야기가 또 방대해 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걱정되기도 하고... 사실 이거 한 편으로 이야기를 끝마치는 게 가장 깔끔해 보이기는 합니다.

 워낙 다양한 소재가 뒤섞여 있던 내용이라 사실 이번만큼은 3인칭으로 써야 되나 고민도 했었습니다. 미주의 시점으로만 쓰기에는 마법소녀인 수정이 쪽의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고 수정이의 시점으로만 쓰자니 미주에 대해서 설명하기 힘들었거든요. 고민 고민 하다가 결국 아직까지 미주로 써 본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미주의 일인칭 시점으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마법소녀라는 소재는 상당히 묻혀 버린 거 같네요.

 아무튼 이제 러블리즈 컴백도 얼마 안 남았어요. 이번에는 무려 'Lovelyz8' 입니다. 지수양의 컴백이 기다려져요. 저번에 올홈에서 얘기 듣고 공카 가봤다가 놀라긴 했지만 뭐... 덕질 9년 인생에 공카는 암 걸리는 곳 이라는 게 어느 팬덤이든 해당되는 것 이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어차피 이쪽은 홀로 덕질 인생이라 신경도 안 쓰이고 그럽니다. 주말에도 일하고 있는 울림. 오늘 12시에는 누구 티저인 거죠?! 

 부족한 글인데다가 취향이 잔뜩 갈리는 내용이라 더 읽기 힘들었을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면서 읽어주신 분들에게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행복한 덕질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