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술래인 남자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이제 센다. 하나, 둘, 셋...."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든 날씨는 여전히 한 낮의 기온이 뜨겁다. 맹렬히 쏟아져 내리는 햇볕 아래에서 나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숨을 곳을 찾아 수업이 끝난 학교의 운동장 한 구석에서 사방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가쁜 숨소리와 함께 숨죽인 웃음소리가 가을 하늘 아래로 흩어진다.
숨바꼭질
written by.녀놘
겨우 9살이 된 2학년 시절의 나는 밖에서 정신없이 친구들과 뛰어 놀기가 바빴다. 여름내 까맣게 태웠던 피부를 마저 태워가며 따가운 가을 햇볕 사이를 누빈다.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 유행했던 놀이는 학교의 운동장에서 하는 숨바꼭질로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상천외한 장소를 계속해 만들어 내었다. 그럴수록 술래도 영악해져서 술래와 숨는 아이들 사이의 신경전은 갈수록 치열해져 갔다.
나는 대뜸 운동장 왼쪽 구석의 스탠드 담벼락 밑으로 파고 들어가 그 옆에 쌓여있던 정체모를 구조물들 사이로 기어 올라갔다. 속이 빈 원통형의 커다랗고 무거운 석조 물건들이 제멋대로 쌓여 있는 것이었는데 공사를 하다가 잠시 중단되었던 건지 방치되고 있었던 건지는 기억이 가물하지만 그 당시에는 훌륭하게 매 번 나의 은신처 역할을 해주는 장소였다.
조심조심 발을 디뎌가며 기어오르고 미끄러지고를 그 안에서 하다보면 도저히 찾기 힘들어지는 공간이 나타나게 된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구조물들은 땅 밑에 묻히는 지하수로 같은 것과 비슷했는데 마지막까지 가게 되면 그것 두어 개가 나란히 붙어서 제법 넓은 공간에 그 두 구조물의 맞물린 가운데 틈으로 밖을 엿볼 수도 있는 공간이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들켜본 적이 없는 장소이기에 자신 있게 그리로 미끄러져 내려간 나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한 인영에 흠칫 놀라고야 말았다.
"누... 누구야?"
누군가 먼저 들어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봤기에 당황해 묻자 구석에 조용히 무릎을 끌어안고 쭈그려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다보았다. 잠시 다른 생각에라도 빠져있던 것처럼 초점이 잡히지 않던 눈동자가 이윽고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그제서야 그 눈동자에 당혹 비슷한 감정이 어리는 것이 보였다.
"어....? 아.. 안녕?"
놀라기로써는 매한가지 였는지 당황한 목소리가 인사를 건네오자 나는 살짝 민망한 기분도 없지 않아 들게 되어 버렸다. 그동안 쭉 나만의 비밀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지금은 내가 뒤늦게 침입해 들어온 사람임이 분명하다. 나는 뻘쭘한 마음으로 볼을 긁적이며 애매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래. 안녕?"
내 인사에 여자아이가 알겠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만 내놓은 채 내 눈치를 살핀다. 조금 별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친구들이 입는 옷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하얗고 나풀거리는 옷 하며, 새까맣게 타 있는 나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창백한 상아빛의 피부. 그리고 쭈그려 앉은 몸을 감싸 내리는 칠흑 같은 검고 긴 머리카락까지 도통 어느 한 군데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없다.
분명 성인이 된 지금의 나라면 그 순간 공포심이라던가 위기감이라도 느꼈겠지만 어릴 적의 나는 위험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던 탓인지 그저 조금 유별난 아이구나 하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버리고 넘겨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곧장 아이의 신원파악에 들어갔다.
"너 몇 학년이야?"
"어? 음....2학년."
"2학년?"
"응."
이상하다. 워낙 싸돌아다니기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해서 2학년 아이들이라면 대략 한 번씩은 얼굴이라도 확인했던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런 모습의 여자아이는 기억 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반도 많지 않은 시골학교라 이런 특이한 인상의 여자아이라면 놓쳤을 리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골치 아픈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난 2학년 1반 이미주야. 넌?"
"난.... 서지수."
서지수. 역시나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름을 알게 되자 조금 전과는 다른 친밀감이 금세 생겨났다. 그것은 지수라는 아이도 마찬가지였는지 입으로 몇 번이고 이름을 곱씹어 보다가 우리는 서로를 향해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어찌되었든 몇 마디 말로도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는 나이대였음에는 분명하다.
"근데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미적거리며 대답을 주저하던 지수가 곤란하다는 듯 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은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리로 오고 말았어."
"에...?"
"학교... 잘 못 나오거든. 아파서 보통은 병원에 있어."
"아...."
의문이 조금 사라지는 기분이다. 어쩐지 본 적 없는 얼굴이다 했더니 학교에 자주 나오지 못 하는 아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세세한 남의 반 사정까지야 관심이 없었으니 충분히 모를 만 했다. 그나저나 놀고 싶다면서 이런대로 숨어들어오다니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자 지수도 딱히 뾰족한 대답은 없었는지 그저 어깨만 으쓱인다.
"그런데 미주 너는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 맞다! 나는...."
지수를 만났던 당혹감으로 잊고 있던 숨바꼭질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러고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재빨리 공간의 틈새 사이로 바깥의 상황을 살피던 나는 퍼뜩 좋은 생각이 나서 지수를 돌아보았다.
"너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서 학교에 왔다고 했지?"
"응? 으응."
"나 지금 숨바꼭질 중이거든. 너도 같이 한다고 생각하고 여기 숨어있자. 그리고 다음 판부터 제대로 같이 해."
지금 당장 아이들 앞에 데리고 나가 같이 놀고 싶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지금 하고 있는 판은 끝내야 할 것 같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멀거니 바라보던 지수가 멍청한 목소리로 묻는다.
"근데... 숨바꼭질이 뭐야?"
"에에...?!"
이게 뭐야? 숨바꼭질을 모른다고? 혼란에 빠져든 나는 이 당혹감을 어떻게 해야 되나 방황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지수에게 숨바꼭질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하였다. 아무튼 요지는 술래에게 들키지 않고 숨으면 된다는 거다.
"알아들었어?"
"응. 이해했어."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우리는 한동안 들키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는 멀뚱히 그늘이 드리워진 축축한 석조물의 아래에서 웅크리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가끔씩 틈새 사이로 아이들을 찾아내 쫓아가는 술래의 모습을 염탐하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조금 진이 빠져버렸는지 옆에서 지수의 낮은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는 거야?"
"술래가 포기할 때까지."
"그게 언제인데?"
"글쎄...? 앞으로 10분?"
시간관념이 명확하지 않아 대충 주어 삼키듯 내뱉었더니 역시나 머릿속으로 시간을 가늠해 보려는 듯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던 지수가 이내 또 한숨을 포옥 내쉰다.
"나 지루해."
투정부리듯 내뱉는 소리에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미주라고 한다면 남들 웃기고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에 일종의 타고난 사명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같이 하자고 한 숨바꼭질에 친구가 지루해 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고민하던 내 눈동자에 틈새 사이로 교정 한 켠이 때마침 들어왔다.
"야, 그럼 이리 와서 저기 봐봐. 저기 저 석상 보여?"
"응? 뭔데?"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는 지수의 모습에 나는 교정으로 들어가는 통로 옆 화단에 서 있는 어떤 여자 아이의 하얀 석고상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여자 석상. 저기에 귀신 들려있대. 들었어?"
"뭐? 정말?"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내 목소리에 겁을 먹었는지 지수의 가녀린 몸이 움찔 소스라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더 신이 나서 나는 술술 다음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는지 모르겠는데 2학년 3반에 어떤 저주 받은 여자아이가 있대. 새 학기 시작 때부터 분명 자리는 있는데 선생님이 출석도 부르지 않고 그냥 남겨두고 있는 자리가 있다더라. 그래서 애들이 알아보니까 그 아이 귀신 들려서 저주 받았다는 거야."
"...그래서?"
"근데 어느 날부턴가 그 아이의 원혼이 자꾸 저 여자 아이 석상에 들어가서 지나가는 아이들을 지켜본대. 특히 2학년 애들이 지나가면 책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가 빠르게 휙 쳐다본다는 거야. 학교에 나가지 못 하는 쓸쓸함 때문에 자기 친구들을 잡아가려고 기억해두는 거래."
"야.... 무서워."
거의 울 듯 한 목소리가 되어서 슬금슬금 다가와 내 곁에 꼭 달라붙는 지수를 보고 있으니 뿌듯함과 함께 살짝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아 들어 버렸다. 나도 무서운 이야기라면 그닥 내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수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놀지 못 하기 때문인지 이런 이야기에는 정말로 경험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지루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입 밖에도 못 내고 자꾸만 틈새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여자 아이 석고상만 곁눈질하며 지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생각보다도 꽤나 무서웠던 모양이다. 하기사 이야기를 한 나 자신도 저 여자아이의 석고상 아래에서는 신발을 갈아 신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장 지나치고 마는 게 보통이었다.
"근데 그거 다 정말이야?"
"뭐?"
"방금 그 이야기 말이야..."
계속된 침묵에 어색해지려던 찰나에 지수가 묻는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글쎄? 근데 진짜로 3반에 그런 여자아이가 있긴 있대. 뭐라더라.... 백혈병? 애들이 그러는데 피가 막 하애져서 저 석고상처럼 변해버리는 거라던데."
예전에 소문내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친구 녀석이 해준 말을 떠올리며 얘기해주자 어째서인지 순간 지수가 멈칫 하고 굳어서는 멍하니 틈새 사이로 보이는 여자 아이의 석고상을 바라보았다. 괜찮은 건가? 어쩐지 급격히 기분이 어두워 진 듯 한 지수의 모습에 걱정스레 내려다보는데 앙다물고 있던 작고 창백한 지수의 입술이 떼어지더니 속삭이듯이 입을 달싹이며 물어왔다.
"그 백혈병 걸렸다는 여자아이.... 역시 그 반 친구들이 무서워하고 있어?"
"응?"
조금 이상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크게 개의치 않고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지 않을까? 저주 받은 아이라고도 하고. 피가 하애지는 저주라니 무섭잖아."
"그래? 역시... 그렇겠지? 그런 아이라면 깔끔하게 그냥 그 반에서 사라져 주는 게 더 좋은 일 일지도 몰라."
뭔가 무겁고 절망적으로 가라앉은 지수의 목소리를 듣자니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으로 선뜻 그렇다고 생각 없이 말 할 수가 없어서 나는 묵묵히 침묵을 지키기로 하였다. 불편한 공기의 흐름이 짓누르는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자니 멍하니 있던 지수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내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미주야...."
"으..응?"
"너라면... 너라면 그 아이가 놀자고 하면 같이 놀아 주겠니?"
"에? 그야 뭐...."
어찌 말해야 될지 몰라 대답을 망설이고 있던 때에 불현듯 석조물들의 바깥으로 부스럭 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달싹거리려던 지수의 입을 손으로 가리고는 입가 끝에 검지를 세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지수의 눈을 마주 보았다. 의문과 당혹감에 크게 떠졌던 지수의 눈동자가 이내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긴장하기 시작한다.
바닥에 깔린 모래와 나뭇잎들을 밟으며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발자국 소리는 한참을 이곳저곳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우리를 찾지 못하고 멀어져 갔다. 완전히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고 난 후에야 입을 가리웠던 양 손을 내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 진다. 어째서인지 살짝 상기되어 있던 얼굴의 지수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를 바라다 보았다. 크고 반짝거리는 선하게 생긴 눈망울이 눈앞에 있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 웃어버릴 듯 한 묘한 느낌의 눈동자였다.
"바보 같이. ....두근두근했어."
"뭐?"
"......재미있구나. 숨바꼭질이라는 거."
응? 무슨 소리야...? 그 때 저 멀리서 못 찾겠다고 하는 술래의 노랫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퍼뜩 정신이 들어서는 나는 지수의 손을 끌어당기며 일으켜 세웠다. 얼결에 따라 일어서는 지수에게 나는 방금까지의 고민도 잊고 밝게 웃어 주었다.
"저기... 아까 내가 물어 본 거...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너라면 언제든 같이 놀아줄게."
"응...?"
"같이 놀고 싶다 그랬지? 가자!"
새파란 가을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위로 뻗은 석조물의 구멍 사이를 손으로 가리켰더니 그 손을 따라 시야를 돌리던 지수가 한참을 그 구멍 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따라 미소 지었다.
"...정말이지?"
"응!"
기쁜 듯이 웃고 있는 지수의 모습에 신나서 나는 어서 따라 오라는 손짓을 하며 구멍 위를 기어올랐다. 막혀 있던 공간에서 벗어나 서자 탁 트인 공기가 기분 좋게 폐부로 스며 들어온다. 뒤를 돌아보며 구멍 안을 들여다보자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는 건지 지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수야. 어서 나와."
부르고 조금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살짝 걱정되는 마음에 다시 주르륵 구멍 안을 미끄러지며 타고 내려가자 어째서인지 텅 빈 공간만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수야? 야!"
이해할 수 없는 마음에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그 공간 안을 헤집고 다녀 보았지만 걱정된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 나설 때까지도 나는 끝끝내 그 석조물들 사이에서 지수를 찾아내지 못 하고 말았다.
-
그 후로 때때로 숨바꼭질을 하게 될 때면 나는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는 듯이 의례 지수와 함께 숨어있었던 그 석조물들 사이를 누비며 혹시라도 지수가 돌아오지는 않았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찾아 나섰다. 그러던 것도 시간이 흘러 한 달, 두 달, 계절이 지나서 어느새 나는 3학년으로 한 학년 진급해 있었다. 지수와 숨었던 그 방치된 석조물들은 지난 겨울방학 사이 누군가에 의해 깔끔히 치워졌다. 더 이상은 추억할 장소도 남아있지 않아 지수에 대한 내 기억은 그사이 많이 희석되어 있었다. 그저 때때로 여자아이의 석고상을 보게 된다거나 할 때 오래되어 빛바랜 듯 한 감성이 마음 한 켠에 촉촉이 젖어들고는 하는 게 지수에 대한 내 남은 유일한 감정이었다. 그 아이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이였을까? 어쩌면 그 아이는 나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 보니 지수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면 새학년이 되면서 지수와 얘기를 나눴던 그 저주받은 아이가 같은 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것이 내 옆자리가 되었다. 여전히 학교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 아이는 정말로 소문대로 귀신에 저주 받았던 아이인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백혈병 이란 것이 피가 하얗게 변해 석고상처럼 되어 버리는 저주가 아니라는 것만은 부모님께 물어서 알게 되었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움직임이 조회 시간이 다가오자 서서히 가라앉더니 이내 조금이라도 더 놀겠다고 뒤늦게 뛰어 들어온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정숙해지며 담임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반 한구석에서 제일 늦게 뛰어 들어온 녀석 하나가 전학생 왔나봐 하고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새로운 친구를 한 명 소개시켜 드리겠어요. 그동안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작년에 수술이 잘 끝나서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들어오렴."
선생님의 부름에 한 여자아이가 열린 교실 문 사이로 살며시 걸어 들어온다. 말끔한 옷차림에 단정한 걸음걸이로 걸어 들어온 아이는 조금 부끄러운 건지 쉬이 고개를 들지 못 하고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쳤다.
"서지수!!"
".......?!"
아이의 고개가 들리며 동그랗게 놀란 눈이 나를 바라다본다. 그리고는 이내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미주....?"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모두 나와 지수 사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수의 모습에 눈을 떼지 않고 그 멍한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찾.았.다. 서지수."
내 말에 가볍게 미간을 찡그리며 한참이나 나를 멍청히 바라보던 지수의 입가에 마침내 미소가 걸렸다.
-
비록 내가 기억하던 허리까지도 내려 올 것 같았던 긴 머리의 지수는 아니었지만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도 나는 대번에 지수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버리고 때때로 그 때의 일을 추억삼아 꺼내게 되면 지수는 아직까지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한다.
2학년 당시 가을날. 그 때 지수는 학교 운동장이 아닌 병원에 있었다고 한다. 백혈병 치료의 마지막 수술로, 꽤 큰 수술인데다가 위험한 수술이라 아마도 그 수술의 성공 여하에 따라 생사까지도 달려있었던 모양이다. 어린 나이에도 지수도 그 사실을 막연히 깨닫고 있어서 지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 했던 학교라던가 평범하게 친구들과 뛰어 노는 장면을 상상하며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 어째서인지 처음 보는 공간 안에서 내가 눈앞에 서 있었다고 한다. 언제나 맨들 하게 깎여져 있던 자신의 머리도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풍성하게 자라나 있다. 얼떨떨하지만 기분 좋은 꿈이었다고 한다. 이후의 꿈의 내용은 내가 기억하는 바와 거의 동일하지만 여자아이의 석고상과 백혈병이라는 귀신들린 저주에 걸린 여자아이 이야기에 있어서는 지수는 그 순간 이대로 삶을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었더란다.
어려서부터 줄곧 병원 밖을 벗어나지 못 하고 남들이 평범하게 보내는 일상의 어떤 것도 영위하지 못 했던 아이. 그 괴리감과 소외감에 어린 지수는 좌절하며 역시 자신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힘들게 수술이 성공해서 학교로 돌아간다 하여도 아이들이 귀신들린 아이라고 멀리한다면 그럴 바에야 여기서 편안해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지수는 고민했다.
뭐 결과적으로 말하자면야 결국 병 주고 약 준 격으로 내가 함께 있어준다고 한 말에 지수는 다시 힘을 얻었다. 그 대목을 얘기할 때마다 얼버무리면서 묘하게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유별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 하나 살린 일이라 다행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중이었다.
"미주야. 손 줘 봐."
"응?"
문득 이야기를 끊고 지수가 내 손을 잡아다가 자신의 얼굴 앞에 가져간다. 그러고는 내 검지 손가락을 골라 조용히 자신의 입가에 가져다 댄다. 그 상태로 조용히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대고는 지수는 눈을 감았다.
"야, 뭐 해?"
"쉿. 가만.... 잠깐만 이대로 있자."
뭐 하는 거야? 하고 눈가를 찌푸리고 있는데 눈앞에 마주한 지수의 얼굴에 잔잔히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저 감긴 눈 안으로 2학년 당시 그 때의 우리 모습을 떠올리고 있기라도 한 걸까?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해 하던 나는 졌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따라 눈을 감았다.
눈이 시리도록 높고 파랬던 가을의 하늘. 따갑게 피부 위로 내리 쬐던 햇볕. 석조 건물 밑 축축한 습기의 냄새와 모래의 질감 따위가 빠르게 눈꺼풀 안쪽으로 스쳐 지나간다. 10여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그 때의 그 공간이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때의 그 두근거림도 여전히 들려온다. 귓가가 먹먹해 질 정도로...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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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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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글을 하루 만에 썼습니다. 마감을 코앞에 두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라고 외치며 약속을 어길 수는 없다 라는 일념으로 결국 쓰고 말았어요. 장하다. 대단하다. 멋지다!
10월 1일은 러블리즈 앨범 공개되는 거지요? 10월에는 아마 너무 행복해서 덕통사고로 어디 실려 갈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앨범 활동 뭔가 대박날 거 같은 예감이 드네요. 러블리즈 흥해라! 얍!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