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31일 토요일

[미지수] 기다림의 사막


















 머리끝이 메마른 바람에 휘감겨 눈가를 간질인다.
 어른거리는 시야 너머로는 조금 전부터 검은 뇌운이 뻑뻑이 몰려오고 있었다.
 열기로 타버린 사막에 먹구름이라...
 희미하게 귓가를 울리는 천둥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누런 모래벌판 위로 쓰러져 내렸다.
 사막에 발을 들인지 오늘로 세 번째 태양.
 죽음 직전에 이르러 나는 거대한 신기루와 마주하고 있었다.









  경계의 끝 너머...

    기다림의 사막
                       written by. 녀놘
                       



 내가 태어난 좁고 더러운 항구마을은 미군기지와 인접한 쓰레기 처리소였다. 검둥이부터 엿 먹을 백인 놈들까지 모든 종류의 쓰레기가 모여든 세상의 끝자락과도 같은 세계. 온종일 살육과 총성으로만 점칠된 그곳에서도 매 년 4월이 되면 그 끔찍한 소음들이 사라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마고-르'. 어머니의 부름이라는 뜻을 가진 거대한 태풍이 모든 소음을 집어 삼키며 삼일 밤낮으로 항구를 덮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자식들을, 어미 신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다.


 마고-르가 불어 닥치는 기간이면 나는 언제나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집안의 침대 위에서 이불을 둘러싸고 웅크려 앉아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나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있으면 어느 순간, 강인한 바람이 낡은 창을 떼어갈듯 뒤흔드는 소리가 다 낡은 얇은 이불 밖으로 들려온다. 왔다! 그것은 어쩐지 나에게는 매우 신비롭고 성스러운 소리로 들려왔기에 나는 언제나 소녀처럼 숨죽여 그 소리를 엿듣곤 했다.


 소리에 심취해 있다 보면, 짭조름한 바다향이 코끝을 자극해 온다. 악취와 오물에 뒤덮인 항구에서는 도저히 맡을 수 없었던 소금기 가득한 냄새. 먼 이국의 바다에서부터 밀려 온 듯 한 그 상쾌한 바람에 나는 두 눈을 감고 상상한다. 펼쳐진 모래사장. 내리 쬐는 금빛 햇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해변가를 뛰어노는 어린 나.


 마고-르가 지나치고 다시 집 밖으로 나섰을 때, 나는 지옥에 남겨진 자신을 발견할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리워 할 것 따위 없을 줄 알았는데...."


 멀리서 다가오는 신기루의 태풍을 바라보며 나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 돌아 볼 것 없는 고향. 모든 것을 잊고만 싶었던 과거였는데 이제사 죽음의 끝에 다다라 보고 있는 것이, 고향의 마고-르 라니...


 먼 기억의 저편에서 불어오는 듯 한 상쾌한 바다내음에 몸을 떨며 나는 서서히 눈을 감아 내었다. 희미해지는 의식의 한 켠에서 나는, 태풍을 등 진채 나에게 걸어오는 한 인영을 보았던 것도 같다. 나의 삶이자, 나의 죽음. 내가 바라볼 마지막 그림자. 그녀의 비릿한 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쳐 갔다.




 _

 낯선 침대 위에서 일어나 앉았다. 방금까지 무언가에 쫓긴 듯 한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있었던 것 만 같다. 거칠게 몰아 내쉬어 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식은땀을 닦아내고 있자, 옆에서 불쑥 작은 손 하나가 튀어 나와 젖은 수건으로 내 이마를 매만져 준다.


 "안 깨어날 줄 알았어."


 작고 새침한 얼굴이 나를 들여다보고 말한다. 허둥대며 일어서려 하는데 제법 매서운 손길로 내 어깨를 때린다. 아야! 작게 인상을 찡그리며 노려보자, 콧소리가 섞인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나를 도로 침대 위에 끌어내려 눕힌다.


 "당분간은 누워 있는 게 좋아. 상태가 꽤 심각했어. 열사병에 영양실조에, 사막 한 가운데서 여행자가 걸릴 수 있는 병이란 병은 다 걸린 것 같던데 도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무슨 일...? 글쎄.... 내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그녀도 딱히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지 물통과 수건들을 정리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솜씨 좋게 수건을 개어 물통의 가장자리에 얹는 모습이 보기보다 다부져 보였다.


 "여긴 어디에요..?"

 "어? 뭐야, 말 할 줄 아는 거였어? 다행이다! 음... 여긴 '아홉 구릉의 굴'이야."

 "아홉 구릉의 굴?"

 "다른 이름으로 마지막 주막으로도 불려. 이 사막에 남아있는 유일한 여관이야."


 또는 술집. 가볍게 웃으며 농담조로 웃어 보인 여자는, 채 다른 것을 묻기도 전에 그대로 방을 빠져 나가 버렸다. 한 순간에 홀로 남겨져 버린 나는 맥 빠진 한숨과 함께 가라앉듯 침대보 위로 몸을 뉘었다. 얼떨떨한 심정이다.


 침대 옆으로 조그맣게 나 있는 채광창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살이 신경이 쓰였다. 열사의 강렬한 햇빛. 일 년의 대부분이 짙은 안개에 둘러 쌓여 있던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겐 너무도 자극적인 태양이다.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자, 피부를 간질이며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따뜻한 열기가, 피부의 털 한 올 한 올까지 들고 일어날 것 만 같았다. 그 온 몸이 각성되어 일으켜지는 기분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 살아 있구나..."


 나는 살아있다. 이것이 저주인지 축복인지도 불확실 한 채 나는 또, 살아 버렸다.




 -

 꼼짝없이 침대에 누운 채로 며칠이 지나갔다. 조금 전 그녀가 나갔던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김지연. 그녀는 알 수 없는 구석이 많다. 어려 보이는데도 행동에는 원숙미가 묻어 있고 상냥하고 스스럼없어 보이는 태도 뒤에는 냉정하고 관찰자 적인 모습이 숨어 있다.


 조금씩 손을 쥐었다 펴 보았다. 얇은 피부 속으로 혈관이 꿈틀하며, 이제는 제법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지연씨는 조금 더 누워 있으라고 말했지만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나는 이것 이상으로 건강해 본 기억이 없다.


 자리를 걷고 조심히 일어나 앉자 삐이- 하는 이명과 함께 눈앞이 흐려져 왔다. 나는 침착하게 그 어둠이 사라지길 기다렸다가 서두르지 않고 좁은 걸음으로 방 안을 빠져 나왔다. 낡은 나무문을 밀고 나온 곳은 석조로 다듬어진 작고 소박한 복도였다. 내가 나온 방과 비슷해 보이는 나무문들이 양 옆으로 줄지어 두 개씩 붙어 있는 넓지 않은 크기다. 이곳에 있던 며칠 동안 그녀와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의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으니, 필시 모두 빈 방일 것 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삐걱거리는 회전 계단을 밟아 내려가자 몇 개의 테이블과 함께 주방겸 바를 겸업하는 듯 한 간소한 펍이 나타났다. 그 중 한 테이블 위에 감자 같은 것이 한 가득 담겨 있는 바구니가 올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지연씨는 그 앞에서 작은 칼로 그것들을 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내려오는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부지런히 놀리던 손을 멈춘 채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어정쩡하게 멈춰 버린 내 모습을 본 그녀는 그 커다란 눈을 솜씨 좋게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났어. 아직 더 쉬어야 한 다니까."


 뭐라 변명하지 못 하고 서 있자, 투덜거리며 다가온 그녀가 나를 부축해 의자에 앉혀 주었다. 조금 더 꾸중이 이어질 것도 같았는데 그녀는 일상적인 태도로 다시 바구니 속의 내용물을 다듬는 데만 정신을 쏟았다. 하나하나 깎아져 내리는 껍질들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그제서야 그녀도 나를 흘깃 거리고 쳐다보았다.


 "지수씨, 머릿결 좀 어떻게 해야겠다."


 그녀의 말에 머쓱한 손을 들어 어깨 뒤로 늘어져 있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어 들여다보았다. 강렬한 햇볕에 의해 메마르고 구불구불해져 퇴색되어 있다. 손 안에서 바스러질 듯 버석거리는 감촉에 체념하듯 놓아 버렸다.


 "이곳은 원래 손님이 별로 없나요?"

 "응? 그야 뭐.. 이런 곳 까지 찾아 올 여행객들은 많지 않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 '아그-문트'가 지나는 시기인걸."

 "그건 뭐죠?"

 "뭐? 아그-문트가 뭔지도 몰라?"

 "......"


 질렸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지연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매년 이 맘 때쯤이면 불어오는 강한 모래 폭풍이야. 괜히 겁 없이 밖에 나섰다가, 운 나쁘게 그런 것에 휘말리기라도 하면 바로 사망이라고. 진짜 그런 것도 모르고 지수씨는 사막을 건너고 있던 거야?"

 "네...."

 "....무슨 사연 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분간은 그런 무모한 짓 하지 말아줘. 귀찮아 진다고. 내가."


 무엇이 귀찮아 진다는 걸까. 그녀의 손에서 작고 땅딸막한 감자가 하얗게 깎아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그럼 언제쯤 다시 돌아다닐 수 있게 되죠?"

 "왜? 또 멋도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나에게 업혀오고 싶어서? 앞으로 한 달 이상은 절대 안 돼. 들쭉날쭉 하긴 하지만 아그-문트는 아직 첫 번째 구릉 밖에 안 지나갔어."

 "첫 번째 구릉이요?"

 "그래. 아그-문트란 건 이 지방말로 '황금빛 용'이라는 뜻 이야. 옛날 사람들은 마을을 강타하는 모래폭풍을 보고 모래로 이루어진 황금빛용이 지나간다고 생각했었거든. 보석 같은 붉은 눈을 번뜩이고 온 몸에 황금빛을 두른 사막의 용. 우리 부족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야. 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무서웠다고. 그 길이가 너무 거대해서 그 굽이치는 몸뚱이가 꼭 아홉 개의 구릉이 이어진 것 같다고 하셨어."

 "그럼 이 여관의 이름도..."


 문가 위에 정갈한 글씨로 새겨져 있는 글자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아홉 구릉의 굴이란 것도 거기서 따온 거야. 뭐, 실상은 아홉 번 이어지는 모래 폭풍일 뿐이지만."

 "그럼 앞으로 여덟 번 더 모래 폭풍이 오는 건가요?"

 "그래. 주기는 들쭉날쭉 하지만 매년 이맘 때,딱 아홉 번의 모래폭풍이 불어오거든. 신기하지 않아? 아무튼 그러니까 당분간은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야 해."


 얌전히 있으라는 듯 강하게 날 바라보며 웃던 그녀는, 다 깎은 감자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받아 들어 입안에 넣고 조심히 깨물어 보자, 쌉싸름하면서도 달큰한 즙이 흘러나온다.


 "유그르 라고, 여기서 제법 떨어져 있는 도시에서 나오는 특산품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상인들이 찾아오는데 며칠 전에 사 놨어. 구하기 힘든 거라고. 그거."


 그런가...? 처음엔 감자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나 보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씹게 된 이빨이 금세 피로함을 호소한다. 한 조각 정도를 간신히 목구멍으로 삼킨 채 도로 내려놓자 지연씨의 눈가가 매서워 졌다.


 "구하기 힘든 거라니까? 이리내. 차라리 죽으로 끓여 줄 테니까. 그러게 음식도 하나 못 씹어 먹으면서 뭐 하러 내려왔어."

 "전 원래 많이 못 먹어요."

 "아무튼 이리 줘. 그대로 두면 못 먹게 변해 버리니까."


 내 손에서 유구르를 뺏어든 지연씨는 바 안쪽의 조리대로 들어가 버렸다. 뭐라 더 변명할 새도 없이 이어지는 식기들의 소리에 나는 잠잠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몇 번 달그락 거렸을 뿐인데 벌써부터 맛있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녀가 털고 일어났던 자리에는 깎아내어진 유그르의 두꺼운 껍질들과 함께 방금까지 그녀가 사용했던 상아빛 칼이 놓여져 있었다. 항구의 창고지기들이 심심풀이로 고래의 뼈를 가지고 세공하던 조각품들과도 닮았다. 그리 날카로워 보이지 않는 날을 따라 내려가자 아홉 번 굽이치는 몸뚱이의 용이 자루로 양각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주셨어."

 "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그녀가 바 위로 턱을 괸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부족은 아그-문트를 숭상해 왔거든. 그래서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는 거야. 내가 어렸을 적 들은 이야기 중에 아그-문트와 관련된 재밌는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 볼래?"


 긍정에 의미로 침묵하고 있자,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아직 첫 번째 위대한 마녀의 별이 떠 있던 오랜 옛적에 쉬-주에 라는 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었대. 그런데 그 아이는 매우 장난꾸러기라서 어느 날 아그-문트가 지나는 시기에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갔던 거야."

 "아그-문트란 건 이 지방에서 굉장히 오래 전 부터 존재 했었나 보군요."

 "그래. 그리고 장난꾸러기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존재하고."


 희미한 눈웃음과 함께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던 지연씨는 다시 꿈꾸듯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쉬-주에는 아그-문트가 겁나지 않았어. 그래서 씩씩하게 나아갔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 뜨는 시간이 되자 갑자기 저 멀리서 부터 굉장한 모래 폭풍이 일어났어. 아그-문트가 나타난 거야. 쉬-주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웅크렸어. 아그-문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이 매우 눈부셨거든."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에 맞춰, 눈부신 황금빛에 눈을 가리며 웅크리고 주저앉는 어린 아이를 상상해 보았다. 주변엔 정신없이 모래 폭풍이 휘몰아치고 눈조차 뜨지 못 할 강한 바람 너머로는 포악한 용의 포효 소리가 들려온다.


 "쉬-주에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아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빛의 사막에 홀로 서 있었어. 쉬-주에는 소리쳤지. '역시 아그-문트 따위 별 거 아니야!' 용감한 쉬-주에는 집을 찾아서 사막을 가로 질러 갔어. 몇 번이고 거대한 구릉을 타고 넘었지. 구릉 뒤에는 언제나 사악한 괴물이 지키고 서있었는데, 쉬-주에는 그 때마다 재치 있게 괴물을 놀려주고는 빠져 나갔어. 쉬-주에가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 구릉을 타고 넘자, 드디어 눈앞에 그립던 집이 나타났어. 쉬-주에는 기쁨에 겨워 집으로 달려갔지. 하지만 웬일인지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어. 사실은 이미 쉬-주에가 집 문을 열고 나간 지 몇 백 년이 흘렀던 거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쉬-주에는 주저앉아 슬피 울었어. 그 때 귓가를 울리는 포효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지. 쉬-주에가 돌아보자 그 곳에는 황금빛의 아그-문트가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어. .....쉬-주에는 결국 용의 등 위를 계속해 걷고 있었던 거야. 몇 백 년의 시간동안, 어렸을 적 집을 떠나기 전 그 모습 그대로. 어때? 재밌는 이야기지?"

 "그럼... 그 후에 쉬-주에는 어떻게 되었어요?"

 "글쎄...? 이야기의 주인공이니까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지 않았을까? 나야 모르지 그건."

 "그런가요..."


 불쑥, 기억 속 심연의 저 편에서 메마르고 거칠게 일어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살지도, 죽지도 못 해.' 아마도 쉬-주에는 그 후에 행복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 이야기에서 따로 신경 쓰이는 점이 있어."

 "신경 쓰이는 점이요?"

 "이야기 속의 쉬-주에가 사실은 불로불사의 몸이 되어 돌아왔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거야. 이야기에서는 두리 뭉실하게 쉬-주에가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몇 백 년이 지난 후에 돌아왔다고 하지만, 진짜는 쉬-주에가 아그-문트의 등 위에서 나이도 죽음도 잊은 신체를 얻게 되어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모두가 죽고 그 혼자 몇 백 년이 흐르도록 남아있게 되었다는 내용은 아니었을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내 질문에 지연씨는 그때껏 내 앞에 얌전히 놓여있던 상아빛 칼을 가리켜 보였다.


 "그 칼에 새겨진 아그문트의 아홉 번째 등 뒤 꼬리에는 커다란 구슬 하나가 들려 있어. 난 그게 아마도 불로불사의 힘을 비유적으로 새겨 넣은 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 구슬의 이름은 '아난-쥬'. 지수씨가 알고 있는 단어로는, 아마도.... '영생'이야."


 영생....? 그녀의 말대로 용이 새겨진 칼자루의 끝에는 구슬 하나가 옅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영생? 그렇다면 쉬-주에는 아홉 구릉을 넘은 끝에 결국 마지막으로 이 구슬의 힘을 얻게 되었던 걸까?


 "이야기는 바뀌어 버렸지만, 원래 내용은 내가 말한 대로였을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굉장하지 않아? 영원히 늙지 않고 살 수 있다니. 지수씨는 관심 없어?"

 "저는..."


 말끝을 삼켰다. 갑자기 목구멍 안쪽으로 쓴 물이 넘어오는 것 같았다. 잊고 싶었던 과거. 나는 알고 있다. 그건 영원히 경계에 서서 방황하는 저주란 걸. 삶도, 죽음도,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 하는 길. 영생이란... 허무하다.


 "관심 없어요. 그런 건..."

 "그래...? 에이~ 참 재미없는 사람이네. 지수씨는."


 짓궂게 웃어 보인 지연씨는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지연씨의 관심을 잃고 남겨진 나는 피로해진 고개를 까슬한 테이블 위로 뉘었다. 눈을 감자 작은 미열의 온기처럼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메마르고 향긋한 낯선 냄새에 움찔대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둠에 덮인 시야에는 잔상처럼 조금 전 지연씨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지수씨는 관심 없어?' 농같은 질문을 던져 놓고 히죽하며 웃고 있다. 거부감을 느낄 수 없는 친근한 미소. 그 눈가에 귀엽게 접힌 주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 담긴, 번뜩임을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 지 이틀째가 된 밤이었다.


 유난히 추운 밤 기온에 나는 이불에 둘러싸인 채로 혼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온 건 벌써 새벽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방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뜨자, 방문이 급하게 열리며 지연씨가 뛰어 들어 왔다.


 "지수씨, 빨리 일어나서 나 좀 도와줘! 오고 있어!"

 "뭐가 와요?"

 "질문은 나중에 하고, 어서!"


 지연씨의 팔에 붙잡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침대 위에서 일으켜 세워진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허둥댔다.


 "덧창들을 전부 닫아야 돼. 시간이 없어!"


 다시 허겁지겁 방을 빠져 나가며 지연씨가 소리친 말에, 그제서야 나는 내 방의 창가로 달려갔다. 바깥의 덧창을 닫기 위해 무심코 창문을 열자 심상치 않은 바람이 손등을 쳐 낸다. 설마... 불길한 기분에 서둘러 덧창을 걸어 잠근 나는 지연씨의 발소리가 분주한 복도로 뛰어 나갔다. 내가 나오는 것을 발견한 지연씨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내게 맞은편 방을 가리켰다.


 "난 1층에 있는 덧창들을 닫으러 갈게. 지수씨는 여기 좀 어떻게 해줘."

 "알았어요."


 지연씨의 말에 따라 각 방의 덧창들을 닫으러 들어갔다. 빠진 곳이 없나 꼼꼼히 확인해 가며 일을 끝마친 나는 서둘러 1층으로 향하는 회전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이미 지진과 비슷한 떨림이 몸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1층에 내려가자, 아직까지 지연씨는 덧창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도우려고 다가가자 지연씨는 그제서야 날 발견했는지 내 손을 이끌어 벽 한 쪽으로 나를 앉혀 놓았다. 그리고는 놓여져 있던 테이블 중 하나를 능숙한 솜씨로 끙끙거리며 내 앞까지 끌고 와서는, 그것을 마치 방패 삼듯 우리 앞에 기대어 세웠다.


 "이렇게 까지 해야 되는 거예요?"

 "겪어 보면 알아. 특히나 올해는 왠지 심상ㅊ..."


 순간 쾅- 하는 강한 충격음이 지연씨의 목소리를 삼켜 버렸다. 거대한 바위라도 날아와 집을 강타한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자, 놀란 내 얼굴을 본 것인지 지연씨가 내 손을 살며시 쥐어 주었다.


 "걱정하지 마. 침착하게만 기다리면 별 일 없어."

 "난... 괜찮아요. 사실 어느 정도는 익숙해요. 내 고향에서도 이런 것과 비슷한 것이 있었거든요."

 "정말이야? 그게 뭐 였는데?"

 "태풍이에요. 모든 것을 다 쓸어 가 버릴 것처럼 강렬한 태풍. 우린 그걸 마고-르 라고 불렀어요."


 집 안은 마치 거대한 종의 안쪽이라도 된 것 마냥 위압적인 소리로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덜그럭 거리며 선반의 물건들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잇달아 들려온다. 진정시키기 어려운 강한 진동에 온 몸을 떨며 나는 눈을 감아 내었다.


 "마고-르가 올 때면 난 항상 이렇게 눈을 감고 있었어요. 그럼 어느 순간 내가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 마냥 황홀한 꿈이 눈앞에 펼쳐져요. 그곳에서 있을 때만이 전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 그럼 지금도 그렇게 해.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괜찮을 거야."


 작은 어깨 위로 내 머리를 끌어당기며 다독이는 지연씨의 말에 불쑥 최면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 부드럽고 따듯한 체온에 고개를 묻은 채로 나는 귓가를 쫑긋 거리며 급격한 꿈에 빠져들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오랜 습관처럼 주변의 소리가 나에게 스며들어 온다.


 낡은 석조 벽면을 수없이 두들기는 모래의 가는 소리. 마고-르의 소금기 대신 자리한, 거칠고 메마른 열사의 바람.


 강렬하게 내리쬐는 낯선 햇볕 아래 선 나는, 끝없이 펼쳐진 황금의 사막 위에 있었다.


 "역시 아그-문트 따위 별 거 아니야."


 어째서인지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소년의 목소리로 불쑥 내 목구멍을 타고 나온다.


 "용감한 소년이여. 너에게 영생의 힘을 주마."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돌아보자 거대한 황금빛 몸체가 등 뒤로 꿈틀거리며 떠 있었다. 아그-문트? 시야를 조금 더 위로 올리자, 그 머리에는 그리운 미주씨의 얼굴이 뽀얗게 매달려 있다. 미주씨의 뇌쇄적인 선홍빛 입술이 달싹이며 내게 계속해 속삭였다. 영생을 주마. 영생을 주마. 나의 귀여운 웨어울프...


 "그건 내가 가져갈래요."


 어디선가 들려온 귀엽고 당돌한 목소리와 함께, 문득 무언가 솟구쳐 오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탁 막혀 갇혀 있던 곳에서 힘차게 해방되어 나가는 듯 한 상쾌한 울림이다. 눈가로는 점점이 붉은 방울들이 흩어지듯 떨어져 내렸다. 붉디붉은, 붉고 붉은. 점점이 겹쳐져 더욱더 붉어지는 선명한 액체들.


 미주씨의 가른 가슴에서 심장을 뽑아든 지연씨는 나를 돌아보며 새하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깨어날 시간이야. 지수씨."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 낮의 태양이 이글거리며 떠올라 있었다.


 밤 새어 시달린 펍안의 풍경은 어젯밤의 소동을 증명이라도 하 듯 엉망으로 흩어져 있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니... 어쩌면 내가 며칠 전 사막을 헤메이다 보았던 신기루는 사실 아그-문트의 첫 번째 구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마어마한 모래폭풍은 지쳐있던 내게는 익숙한 고향의 마고-르와 겹쳐 보였으리라...


 부스스한 눈을 비비우며 몸을 움직이자 굳어있던 근육들이 가볍게 비명을 지른다. 아마도 자고 있는 동안 지연씨가 덮어주었을 붉은 빛깔의 담요를 추스리며 일어서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테이블 앞에 지연씨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좋은, 아침인가요...?"


 텁텁하니 아파오는 목을 매만지며 다가서자, 지연씨는 진중하게 눈을 감고 있던 자세 그대로 나에게 입술 끝에 손가락 하나를 갖다 대어 보였다. 조용히 하라는 신호이다. 어쩐지 실수한 듯 한 느낌이라서, 소심히 움츠러들게 되었다.


 얼마간 테이블 위에 작고 하얗게 빛나는 것들을 놓아둔 채 집중하던 지연씨는 어느 순간 긴 한숨과 함께 굳어있던 자세를 바로 했다. 그와 함께 바짝 긴장되어 있던 펍안의 분위기가 한결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깜빡이듯 눈을 뜬 지연씨는 나를 돌아보며 밝게 웃어 보였다.


 "역시 내가 맞았어."

 "네?"

 "밤사이에 힘이 더 다가왔어. 이대로만 가면 틀림없을 거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즐거워하던 지연씨는 테이블 위로 흩어져 있던 것들을 조그만 푸른 가죽주머니 속으로 모아 담았다. 가까이 다가가 살피니 그것은 특이한 모양으로 양각된 뼈 세공품들 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그녀의 본 나이프(Bone knife)가 떠올랐다.


 "우리 부족은 중요한 일들이 있거나 할 때, 이것으로 점을 치거든. 오늘은 점괘가 좋았어."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요?"

 "아니. 그건 곤란해. 그렇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특별히 맛있는 아침밥을 차려 줄께. 기대해도 좋아."


 잔뜩 들뜬 콧소리와 함께 바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지연씨의 뒷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좋은 일...?


 그 때 문득, 밤 새어 꾸었던 꿈의 잔상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도 보고 싶던 미주씨의 얼굴... 스며드는 오한에 몸을 떨며 나는 창가로 다가가 섰다. 먼눈으로 내다 본 창밖은, 어젯밤의 소동이 꿈이었다는 듯이 엄숙하게 이글거리는 광활한 사막이다. 나는 그 끝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의 너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저 멀리로부터 나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나는 그것을 어쩐 일인지 직감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차곡차곡, 그것은 나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

 불길한 예감은 쉽사리 그 정체를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것이 나에게 더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그-문트의 여섯째 구릉이 불어올 때에는 이미 나도 이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있던 상태였다. 무척이나 강렬했던 두 번째 구릉 이후에는 아그-문트의 기세도 한층 약해져 있었고, 이제는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의 미약한 변동만으로도 아그-문트가 언제쯤 다가올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느긋해진 태도로 맞이한 여섯째 구릉이 지나간 오후에, 나는 지연씨와 마주한 테이블 앞에서 매끈한 찻잔을 어루만지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 폭풍이 지나자마자 서두르며 점괘를 보았던 지연씨는 지금은 기분 좋은 얼굴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의 커버를 슬쩍 훔쳐보았지만 그곳에는 처음 보는 문자만이 나열되어 있었다.


 "오늘 점괘도 좋았던 거예요?"

 "응? 응! 점점 좋아지고 있어. 아무래도 멀지 않은 시일에 좋은 일이 생기려나봐."


 보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며 날 돌아 본 지연씨는 어린아이 같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젠가 왜 폭풍이 지나갈 때마다 점을 보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어. 너무 궁금해서 못 참겠는 걸!' 이라는 엉뚱한 대답을 해주었다. 언제나 어른스럽고 사무적인 성격임에도, 이럴 때는 꼭 철없는 아이 같아 보인다. 그녀는 종잡을 수 없는 바닷바람을 닮았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아... 아니에요."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던 걸까? 황급히 고개를 도리질 하며 물러선 나는, 어색한 헛기침과 함께 지연씨가 들고 있던 책을 가리켰다.


 "무슨 내용이에요? 그 책?"

 "이거? 음... 비밀인데? 말하기 곤란해."


 버젓이 눈앞에서 개의치 않고 읽고 있으면서도 비밀이라고 잡아뗀다. 날 놀리는 게 재밌는 걸까, 이 사람? 장난스럽게 짓고 있는 반달모양의 눈가를 흘겨보았다. 상관없다. 찻잔을 끌어당기며 몸을 틀어 외면하여 버렸다.


 "어? 뭐야. 지수씨 삐쳤어?"

 "아닙니다."

 "근데 왜 갑자기 날 외면해? 삐친 거 맞잖아. 아님 다시 고개 돌려봐."


 곁눈질로 슬쩍 보니 지연씨의 입이 벌써 한 자나 나와 있다. 지금 저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 사람은 원래는 나였어야 할 텐데... 어쩐지 지연씨 앞에서는 모든 일이 다 뒤죽박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과해야 되는 건 나다.


 "아니에요. 정말 별 뜻 없었습니다. 자, 돌았어요. 됐죠? 오해했다면 미안해요."

 "헤... 아무튼, 참 지수씨는 사람이 깨끗해서 재미가 없어."


 곤란하다는 얼굴로 악담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하던 지연씨가 내 앞으로 펼쳐들고 있던 책을 내밀어 주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지연씨의 얼굴을 살피다 시선을 내려 봤지만, 책에 적혀 있는 건 역시나 알 수 없는 문자들이다. 두꺼운 양피질 위로 흐르듯 써져 있는 기묘한 문자의 나열이 마치 사막의 모래 바람과도 같았다.


 "이건 어머니의 어머니를 따라서 대대로 부족의 여인들에게 되물림 되는 책이거든."


 내 옆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은 지연씨가 책장을 짚어가며 말한다. 몇 세기를 거치며 여인들의 손에서 읽혀졌을 그 손때 묻은 낡은 책을 지연씨는 익숙한 솜씨로 넘겨냈다. 마치 그것이 그녀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 나와 있는 내용들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우리 부족의 지식과 지혜들이야. 은빛 회색 여우의 후손이자, 첫 번째 위대한 마녀의 자녀들로써 우리들은 17살이 되는 해에 어머니로 부터 이것을 물려받게 돼."

 "그건, 마치 성인식 같은 거군요."

 "성인식? 응.. 맞아. 그런 것과 비슷해."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눈빛이 따듯하게 젖어 있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 여전히 책장은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넘어가고 있지만, 그녀의 정신이 이미 그녀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침전하여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지연씨의 가족들은 어떤 사람이에요?"

 "........응?"

 "지연씨의 가족이요. 어떤 분들이세요?"


 이제서야 깨어난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지연씨가, 뒤늦게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그녀의 표정은 평소의 그 희미하게 장난기 섞인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그냥, 부모님 두 분 다 좋은 분들이셔. 사막의 유랑 부족답게 강인하시고, 열기를 닮은 따스한 애정을 지니고 계시지. 부모님은 언제나 달이 차가운 밤에 따스하게 모닥불이 피워진 텐트 안에서 나를 재우시며 말해 주셨어. '덥거나 춥다고 말하지 마라. 배고프다고 말하지 마라. 힘들다고도 말하지 마라. 그것들은 너의 삶의 일부이다.' 어렸던 나는 항상 그 말을 마음에 새기며 잠이 들었었어."

 "부럽네요..."

 "칭찬이야? 고마워. 정말 좋은 분들이시거든."


 애정도 미움도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담백한 목소리로 웃으며 지연씨는 말했다. 그 웃음에 옅은 미소를 따라 지으며 나는 상상했다. 아마도 그녀는 유년시절 동안 부모님 아래서, 문제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얌전히 자라왔을 것이다. 분명 부모님에 대해서 과한 사랑 표현도 없었을 테고 심하게 반발한 적도 적었을 테지. 하지만 나는 지연씨가 정말로 그녀의 가족을 아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태도이다. 언제나 드러나는 감정 표현은 없지만 그녀는 변치 않는 마음으로 묵묵히 누군가의 곁에 있어 주는 것으로써 그 누군가에게 그녀의 마음을 전한다. 그녀의 부모님이 가르친 데로, 그녀는 메마르지만 광활한 사막과도 닮게 자라 있었다.


 "지금은 다들 어디에 계세요?"

 "글쎄... 부족은 몇 해 전 뿔뿔이 흩어졌어. 이 사막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 나뿐이야. 부모님이 어디로 가셨을 지는 짐작할 수 있지만, 이곳을 버리지 않는 한 찾아가기엔 너무도 먼 곳으로 가셨을 거라 생각해."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지연씨를 바라보며 왜 가족을 따라가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없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만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다. 게다가 그녀는 내게 어떤 것도 물은 적이 없다.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까지도. 더 이상의 질문은 그녀에게 반칙일거라 생각했다.


 "아무튼 오늘도 고생했어. 이제 지수씨도 우리 부족 사람이 다 된 것만 같아."


 책장을 덮으며 일어선 지연씨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그녀의 방 문 앞으로 걸어갔다. 창밖으로는 이제 막 날이 저물고 있는 사막의 미열이 따스하다. 눈을 감아내자, 온 시야가 노랗게 물들어 있는 그 사막처럼, 펍 안에 가득차 있는 온후한 체온들이 피부에 닿아 느껴져 왔다. 그 포근한 기분에 잠겨,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가족의 따스함이란 것이 있다면, 혹시 이것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 언제까지 이곳에 남아 있을 수 있죠?"


 닫히려던 문이 내 질문에 움찔 거리듯 멈춰 섰다. 살며시 고개를 내비친 지연씨의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조그만 선홍빛 입술이 문 안 쪽에서 달싹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그-문트의 구릉은 이제 세 번 남았어..."


 중얼거림과도 같은 그 미약한 소리만을 남긴 채 문은 닫혀 버렸다.


 "....아그-문트의 구릉은 이제 세 번."


 그녀는...


 그녀는 언제나 내게 수수께끼만을 던져준다.




 -

 아침부터 그녀는 들떠 있었다. 습관처럼 늦은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지연씨는 이미 집 안을 모두 정리한 상태였다. 덧창들은 전부 닫혀 있고 떨어질 물건들은 미리 안전하게 치워 놓았다. 펍 안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음식을 조리하던 그녀는 계단을 내려오는 나를 보며 보기 드문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내려오는 거야? 다행이다. 안 그래도 이쯤이면 지수씨가 일어날 것 같아서 음식을 만들고 있던 참이었거든."

 "........"


 말없이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1층의 펍 안도 모두 정리가 되어 있었다. 남아있는 건 오직 내가 늦은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연씨가 남겨둔 테이블 하나와 몇 가지 조리기구들 뿐이다.


 "오늘 아그-문트가 오는 건가요?"

 "응? 그래. 오후쯤에는 아마 틀림없이 불어올 거야. 이번이 마지막이야. 아홉 번째 구릉이라고."


 묘하게 달뜬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때 늦은 아침 식사를 내려놓으며 얘기 했다. 그렇게 되었다. 벌써... 아홉 번째. 그녀와의 동거도 벌써 한 달을 넘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아홉 번째 구릉이 지나갔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할까. 사실 내가 그녀와 함께 더 지내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지연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시작부터 서로 자유스러운 관계였고 그것은 지금에 와서도 다를 바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는 미주씨가 떠올라 왔다. 병들고 공허하던 내 삶에 파문을 일으키고 떠나간,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뱀파이어.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따위 애초에 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그녀를 쫓아 이 곳 사막까지 다다랐다. 그것이 지금의 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끈이자 죽음으로의 남은 여정이 될 것이다. 이제사 그 안에 무언가를 더 채워넣고 싶어 한 들, 나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어찌할 줄 모르고 마냥 상기된 표정으로 발만 동동 구르는 지연씨의 곁에서 묵묵히 식사를 해 나갔다. 그 날 오후. 그녀의 말대로 심상치 않은 바람이 덧창을 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미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우리는 평소와 같이 테이블 뒤에 몸을 가린 채 폭풍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멀리서 부터 울려오는 듯 한 거대한 바위 덩이들의 충돌 소리가 펍 안에 들려왔다.


 "조심해 지수씨. 평소보다 많이 거셀 거야. 마지막 아그-문트는 가장 난폭하거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몇 차례 충돌음들이 집 안을 강타했다. 귀청을 찢는 소음과 뽀얗게 내려앉는 먼지들 속에서 나는 웅크리고 있던 다리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기분이 이상하다. 그렇게 여러 번 아그-문트를 겪어 놓고도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다르다. 타는 듯 한 불안감에 허덕이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연씨도 내 불안함을 느낀 것인지, 말없이 언젠가 맨 처음 내가 아그-문트에 불안해 하던 그 때처럼 내 어깨를 끌어안아 주었다. 그녀의 품과 가까워진 그 곳에서 나는 그녀의 미약하게 가파진 숨소리와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기분 좋은 환상에 빠져들어 나는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주위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아그-문트의 포효소리는 바야흐로 절정에 가까웠고 온통 새까맣게 어두워진 펍 안은 으스스한 한기로 가라앉아 있었다.


 천장 위로 대롱거리며 흔들리는 불 꺼진 등불이 눈앞을 어질 인다. 어떻게 된 것일까? 깨질 듯 아려오는 머리를 내저으며 일어나보려 했지만 손발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질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자 손목 위로 차갑게 아려오는 둥근 사슬이 무감각하게 감싸져 있는 것이 보였다.


 "깨어난 거야, 지수씨?"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아 시선을 내려 보자 어둠 속에 하얗게 떠 있는 지연씨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희미하게 미소를 띤 채이다.


 "어떻게 된 거에요?"


 손끝을 차갑게 애리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묻자, 지연씨는 내가 묶여 있는 테이블 앞으로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으며 미간을 찡그려 보였다.


 "정말... 지수씨는 재미가 없어. 왜 놀라지도 않는 거야?"


 투정부리듯 중얼거리며 앉은 지연씨가 차가워진 내 손을 감싸 쥐어 준다. 그녀가 나를 결박하였음이 분명함에도 지금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다. 이상하기로는 나나 그녀나 마찬가지다.


 "언젠가 내가 말했지? 아그-문트의 아홉 번째 구릉에는 분명 영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것 말이야. 나, 그거 정말 믿고 있거든. 그래서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지수씨가 찾아 올 때 까지."

 "어째서..?"

 "점을 봤어. 나는 마녀야. 이 사막에 남아있는 유일한 마녀."

 "지연씨가 말한 마녀의 자손들이란 건, 그 말 그대로였던 거예요?"

 "그래. 믿지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 맞아. 우리 부족의 여인들은 모두 오래된 지식과 지혜를 물려받아. 저번에 보여준 책 기억나?"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평소처럼 습관대로 아그-문트의 첫 번째 구릉이 다가오기 전에 점을 봤어. 그런데 뜻밖에도, 정말로 내가 그간 고대해 오고 있던 예시(豫示)가 나와 버린 거야. '누군가 찾아 올 것 이다. 그녀는 첫 번째 구릉에 나타나고, 아홉 번째 구릉이 지나는 때가 되면 내게 영생을 주게 될 것이다.' 라고..."

 "점괘는 맞았나요?"

 "글쎄... 난 솔직히 조금 혼란스러웠어. 너무 흥분한 바람에 점괘를 잘못 읽었는지도 몰랐거든. 하지만 첫 번째 구릉이 지나는 날, 위험을 무릅쓰고 사막으로 나갔을 때, 거의 확신할 수 있게 됐어. 난 쓰러져 있는 지수씨를 발견했으니까. 그 때는 뒤에선 아그-문트가 몰려 오고 있었고,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어. 아마 점괘가 맞지 않았다면 난 지수씨를 발견할 수 없었을 거야. 그랬다면 지금쯤 지수씨는 여기에 없었을 거고."


 기억이 난다. 어렴풋하게 꺼져가던 시선의 끝에 날 향해 다가오던 한 인영의 모습이. 그것은 역시 미주씨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시큼한 감정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와 입맛을 쓰게 했다.


 "지수씨도 봤지만 난 그 후에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점을 봤어. 그리고 그 때마다 더더욱 확신은 커져 갔지. 영생의 기운이, 그 힘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거든. 게다가 지수씨의 그 언제나 묘한 태도가 날 더욱 확신 시켰어."

 "내 태도요...?"

 "그래. 지수씨는 뭘 해도 다 관심을 주질 않잖아. 심지어 내 질문에 지수씨는 영생마저도 관심 없다고 했어. 그 때의 그 공허하던 지수씨의 눈을 기억해. 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이가 아니라면 분명 그럴 수는 없어."


 지금껏 잡아주고 있던 손을 놓으며 그녀는 품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것은 스스로 빛을 발하듯 새하얗게 빛났다. 그녀의 본 나이프. 이제사 그것이 마녀들의 특별한 물건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 물건으로 지연씨는 유그르를 깎고 있었구나. 새삼 그녀의 인간적이고 태평스러운 매력이 스미듯 느껴진다.


 "그럼 이제 나를 어떻게 할 거에요?"

 "으음... 미안하지만 아마도 지수씨가 갖고 있을 영생의 힘을 얻기 위해선 지수씨의 심장이 필요할 것 같아. 보통 누군가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을 쓰잖아?"


 나이프의 날을 확인하며 그녀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마... 그녀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부터 진실을 속일 마음 같은 건 없었을 것이다. 언제라도 내가 물었더라면 그녀는 이 날이 올 것임을 스스럼없이 얘기 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 그녀의 무뚝뚝함이 음흉하고 불친절해 보인다고 할 지 모르나, 그것은 그저 모든 것에 공평한 지연씨의 천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장 오래도록 그 무뚝뚝한 모습으로 한결같이 아끼는 이를 반겨줄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부모가 가르친 데로. 또 그녀가 서 있는 사막의 모습 그대로.


 지금은 다만 그녀가 추구하던 목표에 내가 운 나쁘게 걸려들었을 뿐이다. 그 누가 인정하지 않는데도 혼자 말없이 걸어갔을 그 길에, 운이 없게도...


 "아홉 번째 구릉이 다 지나가기 전에 나는 의식을 마쳐야만 해. 그러니까 사실 시간이 별로 없어. 이런 건 처음이니까 헤맬지도 모르겠거든. 아무튼 용서해 달라고는 안 할게. 지수씨는 그 영생에 별로 미련이 없는 것 같으니까 내가 받아서 열심히 사용할 거야. 그건 약속해 줄 수 있어."


 그녀가 양 손으로 말아 쥔 나이프가 내 가슴 위에서 높이 치켜져 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느릿느릿하게... 어째서 나는 마지막 순간 까지도 그녀에게 이 모든 것이 오해라는 말을 내뱉지 않고 있는 것 일까...? 그것이 그녀를 실망시킬 것이 분명하기에...?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그렇지 않아. 나는 죽음을 바라고 있다. 그것은 평생을 따라다닌 나의 동경이었고 나의 삶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변화된 지금에 와서도 그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 순간에,


 그.녀.가 내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연씨의 나이프가 언제부터인가 푸른빛을 띠며 울고 있었다. 허공에 매달린 채로 격렬히 진동하는 그 검신을 지연씨는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쥔 가녀리고 억센, 어둠속에 떠오른 새하얀 손이었다.


 "미안하지만, 누구도 나의 허락 없이 그녀를 죽일 수 없어."


 메마른 채 선명하게 울려오는 그리웠던 목소리. 부스스한 모래 내음과 함께 풍기는 비릿한 향기에, 나는 경련을 일으키듯 코끝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새하얀 손을 타고 어둠속에서 그녀의 실루엣이 아른거리고 있다. 그녀! 나에게 삶을 주었고, 그랬기에 언젠가 내게 그것을 다시 되 찾아갈 나의 사신(死神). 나의 밤의 맹수. 내 죽음의 그림자. 미주씨가 그 곳에 서 있었다.


 "당신 뭐야! 암계(暗界)의 주민이야? 왜 방해하는 거지?!"

 "방해받고 있는 건 나야. 이 여자의 죽음은 오롯이 나로 이루어 질 것 이다. 그녀의 죽음에 관여하지 마라. 어린 마녀."


 뭐라 더 말을 잇기도 전에, 귀찮다는 듯이 뿌리친 미주씨의 손에 의해 지연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펍의 한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우습다는 듯이 그 꼴을 바라보던 미주씨는 내 손목에 감겨 있던 사슬을 힘껏 잡아 당겼다. 우드득하는 쇳소리와 함께 굵직한 사슬이 힘없이 끊어져 내린다. 아려오는 팔의 통증을 느끼며 나는 멍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매끈하게 내리 뻗은 섬세한 곡선을 타고 정말로 그녀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꿈... 아닌 거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얼빠진 소리 하지 말고, 일어나기나 해."


 가뿐히 날 안아 든 미주씨는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펍 안을 가로질러 갔다. 문 밖으로 바깥은 아직도 아그-문트의 기세가 매섭다. 곰팡내가 나는 그녀의 눅눅한 망토로 나를 감싸주며, 미주씨는 펍의 문을 부수듯 박차 버렸다. 내 얼굴 가까이 입을 가져다댄 미주씨는 악을 쓰듯 말을 내뱉었다.


 "폭풍 바깥에는 아직 태양이 지기까지 시간이 남았어! 난 잠시동안 이 폭풍 속에서 안전한 길을 따라 가야만 해. 괜찮겠지?"


 벌써부터 고막을 찢는 진공음과 모래바람에 미주씨의 목소리가 흩어지듯 멀게 들려온다. 눈 뜨기도 힘든 풍압에 망토를 더 힘껏 죄이며 나는 긍정의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


 그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자 펍의 안쪽에서 비틀대며 지연씨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본 나이프가 폭발할 듯 푸른빛을 띤 채 격렬히 진동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어디에도 못 가! 나는 지금껏 이 날만을 기다려 왔어. 내가 쉽게 보내줄 것 같아?!"


 그녀의 입술 끝에서 속삭이듯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마치 하늘거리는 바람 소리처럼. 사구에 미끄러져 내리는 모래 결처럼 나와 미주씨를 감싸며 펍 안을 가득 메웠다.


  "어린 마녀여. 어리석은 짓 하지 마라. 이런다 해도 내가 얻고자 하는 건 얻어낼 수 없어."

 "거짓말 하지 마! 나는 분명 예언을 들었어. 지수씨는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야. 그녀가 영생을 갖고 있다고!!"


 지연씨의 속삭임이 멎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거짓말처럼 모든 소음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망토를 젖히며 주위를 둘러보자 방금 전 까지 존재했던 어둠도, 아그-문트의 포효소리도 없다. 그저 평소와 같이 평온한 펍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쓴 웃음을 지어 보이던 미주씨는 아까 분명 부숴 버렸음이 분명한 펍의 문을 돌아보았다. 그곳엔 당연한 것처럼 그 낡은 문이 우둑히 서 있다.


 "가둔 건가?"

 "그래. 이제 내 허락 없인 누구도 여기서 못 나가."


 지연씨의 말에 진절머리를 치며 미주씨는 짜증스럽게 다시 펍의 문을 박차 버렸다. 부서져 내리는 파편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미주씨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미주씨가 걸어 나온 곳은 여전히 펍의 안쪽이었다.


 "말 했잖아. 이제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어. 그러니 어서 지수씨를 내게 돌려줘."

 "으르렁 되게 하지 마! 이런 건 어때? 내가 이 자리에서 당장 너를 죽여 버리면?"

 "그럼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될 거야. 너에게 선택권은 없어."


 죽일 듯 노려보는 미주씨를 무시하며 지연씨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미주씨의 품에 안긴 채로 나는 그런 지연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안아든 미주씨의 냉기 섞인 비릿한 체온과 닿음이 없었다면, 방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이 그저 한 낮의 꿈이었을 것만 같다. 익숙한 모습으로 지연씨는 바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엔 이미 아까전 상처와 먼지를 뒤집어쓴 초췌한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그곳엔 그저 평소의 그녀가 서 있을 뿐이었다. 애정과 미움을 숨긴, 무뚝뚝한 표정의 얼굴을 지은 채.


 "지연씨."


 만류하는 미주씨의 손을 거둔 채 품 안에서 꿈틀거리듯 내려온 나는, 그녀가 요리하는 그 바의 오래된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익숙한 감상으로 보글거리며 피어오르는 향긋한 향의 연기. 손끝에 느껴지는 거칠고 메마른 테이블의 나뭇결에서는 지난 한 달간의 기억이 스미듯 매만져 진다. 따스했던, 내 생애 다시없던 새하얀 기억들.


 "지연씨. 나 할 말이 있어요."


 묵묵히 요리를 하는 그녀의 가녀린 등은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소리를 내어 보려 하는 목안이 따끔거리듯 아파왔다.


 "일찍 말하지 못 해서 미안해요."

 "........."

 "나... 영생 같은 거 갖고 있지 않아요."


 멈추었다. 달그락 거리던 소리도. 보글거리며 피어오르던 연기도.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깨져 버린 것 같다. 움찔 거리듯 멈춰 선 그녀의 등을 지켜보며 나는 불안한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 어디선가 작은 균열 하나가 깨어져 나갔다.


 "정말... 이야?"


 무너져 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 본 지연씨의 눈이 애타게 흔들리고 있다.


 "어째...서? 지수씨는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잖아. 그런데 왜 갖고 있지 않은 거야...? 왜?!"

 "....미안해요."

 "믿을 수 없어. 분명 점괘가... 점괘가!"


 내 어깨를 붙들고 설명해 달란 듯 흔드는 지연씨의 팔을, 다가온 미주씨가 매정하게 뿌리쳐 냈다. 달려들듯 웅크린 지연씨를 향해 미주씨는 사납게 이빨을 들이 내어 보였다.


 "네 년의 점괘가 틀린 거야! 넌 이 여자에게 영생을 보았다지만, 그건 이 여자가 아니었어! 네가 본 건 단순히 이 여자의 그림자였을 뿐이다. 죽음과 허무에 빠진 그림자. 넌 나를 보았던 거야!"

 "비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나는 너 따위 암계의 주민 따위를 원하는 게 아냐! 내가 원하는 건 영생.."

 "그래! 바로 내가 영생이다!! 그리고 너에게 영생을 주겠다는 점괘 따위 애초에 없었어! 기껏해야 영생의 실체가 무엇인지, 네 년들의 그 잘난 신이 너를 딱히 여겨 알려 주려고 했을 따름이겠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찡그린 지연씨의 얼굴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머리를 감싸 쥔 채 그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펍이,


 사막이,


 세계가,


 ....깨어져 산산이 부수어 진다.





 고개를 들었을 때, 세찬 모래 바람이 내 뺨을 할퀴며 스쳐 갔다. 돌아보자 부서진 펍 문의 바깥으로 아그-문트의 폭풍이 무섭게 내몰아 치고 있다.


 머리를 털며 일어난 미주씨는 아직도 귓가가 울리는 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품 아래 쓰러진 채로, 나는 힘없는 고개를 돌려내 펍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오래되었지만 단정하고 아늑했던 펍은, 들이친 아그-문트의 바람에 이미 수습할 수 없을 지경으로 망가져 있었다. 마치 방금 전 부서져 버린 지연씨의 세계와도 닮았다.


 씁쓸하게 혀를 한 번 찬 미주씨는 주저 않고 나를 들어 안은 채 몸을 돌렸다.


 "저주할거야..."


 뛰어 나가려던 미주씨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찬찬히 몸을 틀자, 펍의 어둠 속에서 갈라진 지연씨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너를 저주 할 거야. 평생 행복하지 못 하도록, 평생 안식하지 못 하도록 저주 하겠어."


 그 메마른 목소리에 화답하듯 미주씨는 새하얀 그녀의 송곳니를 크게 드러내 보이며 미소 지었다.


 "내가 곧 저주요 불행이요 허무이노라. 네가 얻고자 하는 영생이란 이런 것이다. 어린 마녀. 너의 증오 하나 덧 붙는다 한 들... 달라질 것은 없어."


 그 말을 끝으로 미주씨는 날 감싸 안은 채 아그-문트의 속으로 뛰어 들었다.


 남겨진 펍안에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는 미주씨의 광소와 지연씨의 오열은 아홉 구릉을 타고, 오래도록 사막을 맴돌았다.




 -

 밤이 깊어서야 우리는 사막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불티를 내며 빨갛게 타들어가는 모닥불 옆에 앉아 나는 오후 내내 시달렸던 폭풍의 후유증으로 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불가를 피해 저만치 떨어진 나무 곁으로 물러 앉아 있던 미주씨는 그런 내가 신경이 쓰이는지 곤란한 표정이었다.


 "역시 너에겐 무리였던 걸까.. 괜찮겠어, 작은 늑대?"


 그녀가 안절부절 못 해하며 내 곁으로 다가오려 했기에 나는 급히 손을 내저어 그녀를 다가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녀와 같이 지냈던 짧은 기간 동안 나는 그녀가 얼마나 불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었다. 그 때는 하루 종일 방 안에 작은 초 하나 만을 켜 놓고 지내왔었다. 이렇게 커다란 모닥불이라면... 그녀는 지금 심한 불쾌감을 억지로 참고 있을 것이다.


 "전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는 지금 어디에요?"


 내 손짓에 멈춰 선 미주씨는 불가 주위의 어둠을 맴돌며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본능적인 혐오감의 표정이다. 그녀는 잠시 타오르는 모닥불을 노려보다가 별이 내려앉은 어두운 숲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아까와는 또 다른 미묘한 불쾌감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마들림'이야. 우린 이미 관문을 넘었어."

 "관문이요..?"

 "그래. 관문."


 그녀는 숲의 끝자락에 보이고 있는, 달빛에 드러난 푸른 사막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게 관문이야. 저 사막이 지금껏 관문의 역할을 해 왔어. 암계와 인간계를 잇는, 철창이자 다리... 사막 마녀(Desert witch)들이 지금껏 그걸 수호해 온 거야."

 "지연씨를 말하는 거예요?"

 "그 어린 마녀? 그녀도 부족의 어린 자매이긴 하겠지. 그녀들은 환상과 혼란을 능숙하게 만들어내는 오랜 지혜가 있어. 얼마 전까지는 그들 자체가 거대한 사막의 신기루가 되어 관문을 지켜왔지. 하지만 이제 마녀들은 떠나고 없어. 저건 이제 평범한 사막에 지나지 않을 거야."


 미주씨가 가리키고 있던 사막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침전하듯 펼쳐진 광활한 모래의 사원. 저 너머에 지연씨가 있을 것 이다. 떠나간 부족을 추억하던 그녀의 멈춰버린 눈동자가 떠올라 왔다.


 "지연씨의 부족은... 왜 이 사막을 떠난 거죠?"

 "....빛이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야."

 "빛?"

 "인간들이 만들어낸 빛. 그게 세계에 퍼져 있던 암계의 주민들을 이 곳 마들림으로 몰아내고 있어."


 앙 다문 미주씨의 입새에서 그르렁 되는 소리가 거칠게 새어 나온다. 수풀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멀리 떨어진 나무의 가지 위로 미주씨는 올라타 있었다. 그 위에서 모아 앉은 무릎 위로 턱을 받치며, 그녀는 사막의 푸름한 달을 올려다보았다.


 "예전부터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했어. 인간들이 주위에 숨어서 그것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지.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기쁨, 환희, 공포와 절망 따위를 받아먹으며 그것들은 태어나고 자라나며 소멸하는 것을 반복했어. 이변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 그랬던 것이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급격하게 변화 된 거야. 인간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고, 그들의 오만한 지식은 세상의 어둠을 그냥 두고 보질 못 했어. 끊임없이 파헤치고, 발가벗기고, 진실이라는 이름 앞에 모든 것을 정의 내려. 이제 세상엔 더 이상 신화나 전설 따위는 존재하질 못 해. 오래된 무서운 이야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해 이곳으로 도망 올 수 밖에 없어."


 달빛 아래 그녀의 눈이 푸른빛을 띤 채 번뜩였다. 이 어두운 숲 속에서 그녀는 한층 더 야성의 맹수 같아 보인다.


 "그동안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오던 사막 마녀들은 몇 십 년 새에 급작스레 밀려들어오게 된 어둠을 결국 감당하질 못 했어. 이제 모든 환상은 깨졌고, 관문은 무너져 내렸지. 사막 마녀들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직감했어. 그녀들의 임무가 잠시 동안 끝나게 된 것을 안 거야. 그러니 아직까지 사막에 남아있는 건, 그 멍청한 어린 마녀가 전부야."


 희미하게 분노가 느껴지는 미주씨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지평선을 따라 광활히 펼쳐진 사막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힘을.. 영생의 힘. 아니 영생의 힘으로 비유될 만한 그 강력한 힘을 얻고자 했던 지연씨. 그녀는 버릴 수 없었을 것 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이 사막을 사랑하고 있었고, 위대한 첫 번째 마녀를 동경하고 있었다. 그녀라면... 부족을 버리고서라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아그-문트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이 열사의 사막. 손끝에 익을 정도로 헤지게 보았던 오래된 책. 황금빛용의 옛날이야기를 즐겁게 얘기하던 그녀의 얼굴. 그녀가 나고 자란 모든 것이 그곳에 있고 그녀가 꿈꾸는 모든 것이 그 속에 담겨 있다. 그녀는 사막의 여자이다.


 "지연씨는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무슨 소리야?"

 "이번 일 정도로 지연씨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녀는 강한 여자에요. 그녀는 영생을 가질 권한이 없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은 언젠가 꼭 찾아낼 거예요."

 "흥... 어쩐지, 그 어린 마녀에 대해서 잘 아는 눈치네."


 콧방귀를 끼며 관심 없다는 듯 미주씨는 솜씨 좋게 그 얼마 안 되는 가지 위에서 돌아누웠다.


 따닥 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의 온기는 숲속의 추위를 그 속에 녹여 낸다. 불길에 멍하니 시선을 두던 나는 미주씨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녀가 미주씨에게 물어달라고 했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어요?"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녀의 본 나이프가 울어 대는 거 못 봤어? 사막 마녀들은 애초에 암계의 주민들과는 불편한 이웃친척이야. 그런 여자, 환영해 줄 마음 따위 없어."

 "그래도 만약에 물었다면....?"

 "뭘 묻고 싶은 거야? 너도 이미 다 알고 있잖아. 그녀는 영생을 가질 수 없어. 그녀에겐 상실할 고통이 너무 많아. 그런 사람이 영생...?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 만약 그녀가 영생의 저주를 짊어 진 다면 그 순간이 그녀의 소멸을 의미 할 거야.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런 건."

 "역시 그런가요... 그럼 나는 어때요?"


 흠칫 거리며 일어나 앉은 미주씨가 벌레라도 씹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져 내린다.


 "잊었어..? 난 너를 물어줄 수 없어."

 "어째서?"

 "날 시험하지 마, 작은 늑대. 넌 이미 내게서 가져간 것이 너무 많아."


 사막에서 불어온 마른 바람은 숲의 습기를 흡수하며 무겁게 가라앉는다. 어둠 속에 스며든 숲은 존재하지 않는 듯 전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시야도, 소리도, 냄새도, 촉감도, 미각도, 모든 것이 마비 된 세계 안에 내가 앉아 있다. 그곳에 오직 달빛 아래 앉은 미주씨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마들림. 모든 버림 받은 어둠이 모여드는 곳. 그리고 나의 고향이기도 한 곳. 나는 지금 그 곳에 가야만 해."


 그녀를 닮은 공허한 목소리가 어둠을 타고 내게와 닿는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어 내밀었다.


 "당신의 죽음이... 이번엔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



 두 번 다시,


 그녀를 기다리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을 것 이다.



 .


 .


 .



 기다림의 사막 (fin)








-

 '경계의 끝에서...' 의 다음 이야기 입니다. 전편이 기존에 쓰던 분위기에서 조금 벗어났던 글이라면 이 후속작은 '내맘대로 쓰자!' 라는 식이었기 때문에 상당부분 제가 쓰던 글 분위기가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이라고 한다면 전작이 조금 더 호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마음 놓고 썼던 어두운 분위기의 글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 반해 이 글은 뭔가 좀더 판타지 스러운 글입니다. 분위기도 조금 더 유해졌고... 이국적인 낯선 냄새가 풍기는 글이기를 바라고 썼습니다.

 전작에서 그랬 듯, 이번에도 '죽음이란 상실의 고통이다.'라는 과격한 정의를 내세우며 돌진하는 글입니다. 지연씨와 지수의 대립은 모두 그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영생을 놓고 벌이는 그녀들의 아웅다웅한 생각의 차이는, 초중반쯤 잠깐 얘기하고 지나간 '아그-문트'의 옛날 이야기에 대한 각자의 감상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글에서 가끔 가다 나오는 해괴망측한 단어들은, 사실 진짜 실제하는 단어들을 차용한 것 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쉬-주에' = '환상', '마들림' = '어둠' 등 입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들을 발음 그대로 옮겨 적었더니 느낌이 괜찮아서 쓰게 되었습니다. 쓰는 입장에서는 소소한 재미거리가 되더군요.

 10월에는 러블리즈 아이들 컴백하고 덕통사고 당해서 한동안 정신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글은 안 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9월부터 계속 쓰려고 했던 어떤 글이 자꾸 난항에 부딪히면서 거의 포기 수준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더 의욕이 안 났어요. 그런고로 리네이밍 글로 대충 떼우고 있습니다만 사실 올홈에는 한 번 올렸었던 리네이밍입니다. 블로그에는 이미 원본이 올라와 있으므로 건너띄긴 했지만요. 사실 리네이밍이라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위주인데 그 아이들을 생각하고 썼던 글을 다른 아이로 바꾼다는 게 왠지 예의가 아닌 거 같달까... 뭐 그런 결벽증 같은 얘기 입니다. 그런데도 유독 지금까지 썼던 그 많은 글 중에 이 글만 간혹 리네이밍 하는 것은 '경계의 끝에서...' 에 아이들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과 처음 썼을 때 원본자체가 제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커플링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써놓고 혼자서 맘에 들어하고 있었는데 정작 원본을 올렸던 곳에서는 반응을 못 받아서 정말 그렇게 이상한 글이었나? 하고 슬픈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리퀘 드렸던 분께는 언제나 죄송해하는 마음입니다. 이해할거야... ㅠ 나한테 강제로 시켰었잖아! ㅠㅠㅠ 그렇다고는 해도 리네이밍 한 걸로는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이번이 두 번째 입니다. 괜찮을 거ㅇㅑ.....

 그럼 모두 Happy Halloween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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