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 대청마루 위를 뒹굴 거리며 별 도움이 못 되는 손부채질만 연신 해대고 있다. 7월의 막바지. 때는 여름이 깊어가 본격적인 무더위가 몇 주간 연속되고 있었다. 책상 앞에 있었지만 도저히 공부에 집중되질 않아 넌더리를 치고는 방을 빠져 나온 나는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을 찾다가 이렇게 대청마루 위로 널브러져 버렸다. 옆에서는 낡아서 고개가 자꾸만 절로 내려가 버리는 선풍기 한 대만이 삐걱삐걱 거리며 더운 바람을 불어오고 있다. 나오면 바람이라도 한 점 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놈의 날씨는 어찌된 게 미풍조차도 없다.
이대로 조금만 더 있으면 대청마루 위로 몸이 눌어붙어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던 찰나에 마당 너머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띵동띵동 거리는 소리가 발작적으로 끊임없이 울려댄다. 으으... 일어나기 싫어. 이대로 꼼짝하기도 싫다. 나 좀 그만 내버려 두란 말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대문을 바라보지만 초인종 소리는 끊기지 않는다. 끄응 하는 신음성을 뱉어내며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지는 달궈진 마당을 폴짝거리며 달려가 초인종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누구야! 진짜! 별 거 아닌 거라면 가만두지 않겠어!
"수정아...."
"미주 언니..... 그 꼴이 도대체 무슨...?"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굳어 버렸다. 문 바깥에 서 있는 건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미주 언니였다. 비칠거리며 안색이 파리한 얼굴로 있던 언니는 내 얼굴을 보더니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언니!! 괜찮아요? 괜찮...."
쓰러져 내리는 몸을 얼른 품에 안아들고는 정신을 잃은 듯 한 언니의 얼굴을 걱정스레 내려다보니 감겨있던 눈이 파르르 떨며 힘겹게 떠 나를 올려다본다. 언니의 메마른 입술은 이윽고 달싹이며 무언가 속삭여 대었다.
"네? 잘 안 들려요. 뭐라고요?"
"바.... 바압...."
"에...?"
"밥..."
고개를 갸웃거리며 언니의 입가에 가까이 가져갔던 고개를 들어 언니를 다시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전 언니가 겪었던 일들이 회상처럼 눈앞에 보인다. 무더운 여름에 도저히 자신의 후덥지근한 자취방에 머물 수 없던 언니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한 끼 식사를 위해 없는 돈을 탈탈 털어가며 햄버거 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는 생각보다 전혀 시원하지 않은 실내의 온도에 격분해 그 부조리함을 알리기 위해 식탁을 쾅하니 내려쳤다가 시켜놨던 햄버거 세트가 뒤집어져 필요이상으로 받아왔던 케첩을 온 몸에 줄줄 쏟아 버리고 말았다.
"잊지 않겠다. 고발해 버리겠어! 그 햄버거 가게!"
"고발해 버릴 건 언니의 머리통이야!!!!"
이제 보니 온 몸에 케첩을 줄줄 묻힌 채로 있던 언니를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쳐 버리고는 대문을 쾅하니 닫고 돌아섰다.
"어휴... 덥다! 더워!!"
밥2
written by. 녀놘
"이거나 먹어요!!"
툭하니 차가운 우유에 말은 시리얼 그릇을 내려다 놓으니 어느새 선풍기를 몽땅 차지하고는 끌어안고 있던 미주 언니가 씩하니 웃고는 얼른 가져간다. 그 곁에 다가가 대청마루 끝에 앉아서는 마루 밖으로 두 발을 까닥거리며 있었다. 정말 짐덩어리가 따로 없는 언니다. 도대체 뭐냐고!!
"그래서 햄버거도 못 먹게 되었고 배고프다고 이리로 쪼르르 달려온 거예요?"
"그렇지 뭐."
"그런다고 죽는 연기를 하냐? 제정신이에요?!"
내가 씩씩거리건 말건 언니는 별 신경 안 쓴다는 듯 오물오물거리며 시리얼 그릇을 비워내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자니 어째 더 덥다. 그러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언니가 선풍기 앞을 딱 버티고 서서 바람을 막고 있는 통에 그나마 불어오던 더운 바람조차도 못 쐬고 있다. 아니, 뭐지? 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부조리함은?
"저기.... 언니. 그나저나 그 선풍기 바람 저도 쐬야 하는데요?"
"응? 아, 역시 선풍기 보다는 에어컨이 좋지?"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이 언니야! 지금 내가 한 말이랑 언니 말 사이에 뭔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응? 잠깐? 그거냐? 선풍기? 선풍기라는 단어가 관계되었다거나 그런 거? 이건 끝말잇기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저도 덥다고....."
"뭐,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선풍기라는 건 조금 구식이긴 하지. 에어컨에 비해 시원함의 레벨이 다르달까? 그렇다고 꼭 선풍기가 나쁘다는 건 아냐. 클래식한 맛도 있고 그리고 뭣 보다 이 앞에다가 대고 이렇게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면...."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소리를 전력으로 내며 즐거워하는 언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불끈 이마 가운데 힘줄이 솟아오른다. 이 사람아!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으란 말야!!
"언니네 자취방에도 선풍기는 있잖아! 그런 거 하려면 집에 가서나 하란 말이에요!"
"아? 역시 수정이 너도 그거냐? 선풍기보다는 에어컨을 사야겠다는 그런 거? 역시 에어컨이 좋은 거지? 그렇지? 응? 아아아아아~"
잠깐... 이 인간 설마 이거...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에어컨을 구입해 놓으란 그런 소리인가? 그게 뭔 소리야!! 난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떼를 쓸 거면 적당한 사람을 붙들고 쓰란 말이야!! 물론 나도 에어컨이 있었다면 하고 바라지 않는 건 아니다. 애초에 부모님이 그런 거에는 돈을 쓰지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심두멸각하면 불도 얼음이나니....' 같은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으신단 말이지!!
"망할 에어컨 같으니...!!"
속에 열불이 나서 에라 모르겠다 같은 심정으로 소리치며 그냥 대청마루 위로 털푸덕 드러누워 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주 언니는 무슨 생각인지 나를 따라 또 그대로 자기도 몸을 마루 위로 뉘어 버린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고개가만 맞닿아서는 멍하니 처가지붕 끝자락 너머 보이는 여름의 새파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들에 등가의 옷이 축축하니 살결에 들러붙는다. 미약하게 불어오는 더운 선풍기 바람이 머릿결을 간지럽히고 스쳐갔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지 않냐?"
"뭐가요?"
불쑥 물어오는 미주 언니의 말에 또 방금까지 화냈던 것도 까맣게 잊고 되물었다. 그러자 미주 언니가 짐짓 심각한 어조로 말한다.
"분명 사람이 살라고 있는 자연 환경에서 이렇게 당장 죽을 것처럼 더운 날씨가 있다는 건 말이 안 돼."
그거 너무 인간중심적인 사고 아니냐는 듯 진지충 모드로 돌아서려다가 포기하고는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 언니의 정신세계는 쉽게 범접하기 힘들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있었더니 한동안 고심하고 있는 듯 하던 언니가 불쑥 소리친다.
"그래!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의 음모가 분명해!!"
"에? 에엑?"
그게 어떻게 그렇게 연결 되냐고 물으려 하는데 언니가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고 물어 온다.
"매년 여름이 더 더워질수록 이득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일 것 같냐?"
"네? 그거야 뭐...."
"그래! 에어컨 회사지!!"
잠깐... 언니야.... 또 에어컨이냐? 뭔데 그 물릴 줄 모르는 에어컨에 대한 집착은!! 알았어!! 오늘 아빠, 엄마 집에 오면 에어컨 사달라고 졸라 볼 게!! 됐냐? 됐어?!!
"너 에어컨 회사 SS가 뭐에 약자인지 알고 있냐?"
"그야.... Sam Seong?"
"아니... 그건 Sun Sun 이야."
"............"
이쯤이면 이제 정말 걱정되기까지 한다. 왠지 곁에 있는 것이 부끄러워져서 살짝 떨어져 누우며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래서 여름마다 날씨를 더 덥게 만들어서 강제적으로 에어컨을 사게 만든다는 거죠?"
"그렇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날이 덥다는 건 설명이 안 돼!"
"그럼 그 Sun Sun에 보복하기 위해서라도 에어컨을 불매해야 겠네요!!"
"그래! 그렇.... 어?"
기분 좋게 맞장구치던 언니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멈칫 말을 흐리고는 멍한 소리를 낸다. 하여간 앞뒤 생각 않는 사람이다. 그 모습에 슬쩍 웃음이 새어 나와서 입가를 가려 웃었다. 귀여운 사람. 어찌되었든 저 사차원 같은 행동들에 일일이 장단 맞춰 주는 건 나뿐일 거다.
"실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일어나 봐요."
나는 널브러져 있던 언니를 일으켜 세우고는 종종 걸음으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이내 커다란 대아에 차가운 물과 얼음을 왕창 가져와서는 내려놓았다. 물 위로 얼음을 쏟아 붓고는 대청마루 밑에 내려놓고 그 앞에 걸터 앉아서는 살짝 발을 먼저 담가 보았다. 발끝을 따라 짜릿할 정도로 차가운 한기가 온 몸을 타고 올라온다. 어느새 다가온 미주 언니도 나를 따라 발을 담가 보더니 옹 몸을 부르르 떨고는 깜짝 놀란 듯 나를 돌아보고는 웃는다.
"당분간은 에어컨 없어도 되겠다."
"그렇죠?"
우리는 웃으며 대청마루의 끝에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쨍쨍한 여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과 겨울에 태어난 언니와 나에게는 너무도 더운 여름이지만 그 강렬한 햇살은 그만큼이나 강렬한 빛으로 반짝이며 세상을 선명한 색상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선풍기의 회전 소리에 맞추어 여름날은 그렇게 더 무르익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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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2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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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글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번 달을 맞이하여 한 달에 한 편씩 쓰자던 계획도 1주년이 되었고 그 기념으로 한 달은 좀 쉬자라는 생각이었거든요. 다만 마감 날이 다가오니 자연스레 생각이 나는데다가 어쩐지 이번 달을 쉬어 버리면 다음 달도 글을 쓰기는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뭐라도 좋으니 짧게라도 써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혹시 짧게라도 쓸 게 뭐 없나 살펴보다가 예전 귤연으로 썼던 '밥'이 떠올랐습니다. 정말로 초단편이었지만 여름날의 그런 분위기를 좋아했기에 이번에는 주류주로 다시 한 번 써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무엇보다도 짧은 글이라는 것이 맘에 들었고....
이런 짧은 글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쉬어가는 것 같은 기분으로 가볍게 쓰고 볼 수 있는 시리즈는 좋습니다. 마치 만화 같은 것에 중간 중간 등장하는 4컷 만화 같은 거요. 아무튼 그래서 정말로 간단히 금세 써버렸습니다. 짱이네요. 매 달 마감이 이렇게만 됐으면 좋겠다.... 흑흑흑. 그리고 사담인데 매 번 글을 쓰고는 한글로 맞춤법 수정을 돌리는데 이게 은근히 부정확해서 제대로 쓴 것도 틀려질 때도 있고 막 그렇습니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제대로 된 글은 안 되는 듯...
아무튼 수정이는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마지막 미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므로 이번 년도까지는 죽어라고 미자인 수정이를 써 볼 생각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글을 쓸 때 스무 살을 넘기지 않은 나이로 올해는 계속해 쓸 생각이라는... 예전에 양민48을 덕질할 때는 일본덕후들이 스무살 넘어가는 아이돌을 제대로 된 아이돌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의아해 했는데 지금은 많은 부분 공감하는 바입니다.... (한숨)
그러니까 올해가 지나기 전에 빨리 울림은 러블리즈 활동을 더 늘려주시죠!! 컴백 이꾸욧!!! 빨리 좀 나와줘!! 흑흑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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